2010년 8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에내가 있던 장소를 정확히 기억한다. 탐라교육원.교사 4년 차였으니 나는 분명 그곳에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대한민국의 모든 초등 교사는 교직 3년을 채우는 순간, 이젠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받아들이며 1급 정교사 연수(이하 일정 연수)를 받는다.(이 바닥에는 이 직업이 나랑 안 맞는다고 느끼면 3년 안에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3년이 넘어가면 떠나야 할 이유보다 '어떻게든 버텨야 할 이유'가 점점 많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나는 한량이었다. 지금이야 의외로 생각 깊은 한량이란 평가를 받지만, 그땐 그냥 한량이었다. 선생님들도20대 청춘을 벌써부터 한량 모드로 살아가는 내가 걱정되긴 했나 보다. 연수가 시작되기도 전에 조언을 가장한 각종 잔소리가 내 귀로 예약 배송되었다.마치 '그동안은 무슨 조언을 해줘도 씨알도 안 먹혀서 너의 일정 연수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쌤, 지금은 나이가 어려서 지금처럼 뒷일 생각 안 하고 살아도 좋은데 일정 연수는 달라. 지금 일정 연수 점수 못 받으면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날이 올 거야”
"지금 나이부터 승진 준비할 필요는 없지만, 일정 점수는 무조건 잘 받아둬. 그러지 않으면 그 점수가 거머리처럼 들러붙어서평생 선생님 가는 곳마다 발목을 붙잡을 거야."
하도 이런 식의 조언을 많이 듣다 보니 일정 연수가 정말 중요한 연수긴 한가보다,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보자는, 나답지 않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공부 못하는 친구들의 공통점은 공부 외적인 부분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나는 출퇴근 거리가 마음에 걸렸다. 서귀포 집에서 연수원으로 차를 타고 출근하면 45분이 걸렸다. 출퇴근 시간 왕복 한 시간 반이 아까워서
제주시에 숙소를 구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아낀 한 시간 반동안 공부할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제주시에 숙소를 구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혼자 한달살이를 하기엔 월세가부담되어 서귀포에 사는 친구 K를 꼬드겼다. (이 친구는 교대에 들어올 때는 남자 수석으로 입학했는데, 나를 친구로 잘못 만나는 바람에 졸업할 때는 나보다 조금 앞에서 졸업했다. 친구는 9등급, 나는 10등급)K가 내 제안을 수락하자 집을 구하는 건 내가 책임지기로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부동산 거래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다. 때마침 제대 근처에 한 달 살이를 조건으로 내건 숙소가 저렴한 가격에 올라왔다. 글쓴이는 제주대학교 학생이었는데, 방학 기간에 육지에 올라가게 돼서 자기가 사는 집이 빈다며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월세를 내놓았다.
이게 웬 횡재냐. 집을 보러 가기로 한 날, 나에게 급한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친구 K가 집을 대신 보러 갔다. 친구는 흔쾌히 내 부탁을 수락했다가 봉변을 당하게 되는데... 사연인즉슨, 친구가 그 집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집주인이 난처해하더니 "하아... 남자분이시군요. 동거는 어렵습니다" 하며 문전박대를 했다는 것이다. 숫기 없는 친구는 영문도 모르고 닫힌 문 앞에서 "죄송합니다" 하고 나왔다며(니가 죄송할 건 또 뭐냐), 나에게 우리가 남자인 걸 말 안 했냐고 했다.
나는 분명히 성별에 대한 제한조건은 없었다고 말했다. 도대체 무슨 오해가 있었던 걸까. 월세 거래 사이트에 내가 올린 글을 보고 나서야 어찌 된 영문인지 알게 됐는데, 월세 거래 사이트에는 내가 올린 글이 내 본명(한빛)으로 올라와있었고, 집주인은 이름만 보고 나를 여자로 알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여자 룸메커플인 줄 알고 집을 보러 오라고 했는데, 웬 남자가 찾아왔으니 집주인도 당황했던 것.
싸면서 좋은 숙소를 찾는 건 역시나 어려웠고, 우리는 결국 제주시 관덕정 근처의 게스트하우스를 빌렸다. 당시 우리가 묵었던 숙소의 월세가30만 원이었으니, 시설은 굳이 설명 안 해도 사이즈가 나올 것이다. 방에는 테레비(이건 텔레비전이라 불러선 안된다. 테레비가 맞다)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그 테레비는 90년대 초반에나 볼 수 있던 14인치 브라운관 테레비였고, 이곳이 혹시 백남준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설치 미술 작품 전시실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잠깐 했다.
진짜 이런 테레비였다ㅎㄷㄷ
사실 숙소의 시설은 중요치 않았다. 연수가 끝나자마자 숙소 근처의 도서관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숙소에서는 잠만 자기로 친구랑 약속했으니까. (실제로는 연수가 끝나자마자 근처 당구장에서 열심히 당구 공부를 하고, 숙소에서는 잠만 잤다. 숙소에서 잠만 자기로 한 약속은 지켰으니 약속의 절반은 지킨 셈이다.)
일정 연수 첫날, 친구의 마티즈를 타고 연수원으로 출근하며 우리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숙소에서 연수원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은데, 차가 막히는 시내를 가로질러 가야 하다 보니 35분이 걸렸다. 10분을 아끼려고 지금껏 이 고생을 했단 말인가. 시작이 좋지 않았다. 끝은 더 안 좋았다. 연수는 지루했다. 정말 지루했다.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 그곳에서 가장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그게 바로 나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도망가면 내년엔 또 들어야 하니 한 달후면 잊어버릴 교육학 용어들을 단기 기억 저장소에 억지로 욱여넣었다.
하필 그때 나를 일생일대의 갈등에 빠뜨리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으니 이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일정 연수 기간에 지산 락페스티벌이 열리는데 헤드라이너가 무려 뮤즈(MUSE)라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지금이야 전 세계의 락 씬이 죽고 죽어 관짝에 대못질할 일만 남은 상황이지만, 당시는 뮤즈를 비롯한 브릿팝 밴드들이 꺼져가는 락의 불씨에 부채질을 해가며 생명 연장의 꿈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 따위 연수 때문에 뮤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서글펐다.
나도 뮤즈의 스타라이트를 들으며 수만 명의 락페 동지들과 함께 '1-2-1-3' 떼박수를 치고 싶은데... 이렇게 아름다운 날, 나는 연수나 받고 있는데 누군가는 별빛 쏟아지는 밤에 MUSE의 <Starliht>를 라이브로 들으며 황홀한 밤을 보내겠구나 생각하니 배가 아팠다. 연수가 조금이나마 의미 있었다면 아쉬움이 조금은 덜했을까? 연수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그럼 의미라도 있어야 하는데, 의미도 없었다.
이 햇살 좋은 날, 연수원 맨 뒤에 앉아 인생에 전혀 도움 안 되는 강의를 듣던 한량 1이딴생각에 닿게 되는 건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잠깐! 일정 연수는 점수를 못 받아도 언젠가 바로 잡을 기회가 있을 거야. 그런데 뮤즈가 우리나라에 또 온다는 보장이 있나? 없지! 그럼 지금 뭘 해야 해? 튀자.
여기까지가 어느 금요일 오후, 연수원에서 함께 일정 연수를 듣던 여학우를 꼬드겨주반도주(?)를 하게 된 사연이다. 금요일 오후, 우리 둘은 강의실을 유유히 빠져나와 락페스티벌로 향했다. 그것은 이 경쟁에서 우리 둘은 빠지겠다는 무언의 선언이었다. 그렇게 나는 '일정 연수 튀고 락페 간 넘'이라는 전설을 남기며, 오전에는 제주도라는 섬에서 일정 연수를 받다가 오후에는 유라시아 대륙의 끄트머리 '지산'에서 뮤즈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뮤즈를 영접한 대가로 일정연수로 돌아왔을 땐 일정 출석 점수에서 이틀이 까여있었다. 내 일정 연수는 딱 거기까지였다. 최종 성적은 80.5점. 얼핏 보면 준수한 점수 같은데 일정은 100점이 일등이고, 80점이 꼴등이니 얼추 어느 정도 성적인지 감은 잡힐 것 같고, 다만 나는 궁금하다. 내 밑에 있는 사람들은 일정 연수를 어떻게 받은 거야?(한 명은 누군지 알겠다. 연수 때마다 수업을 5분 듣다가 강의장 밖으로 나가 산책하던 형님이 한 분 계셨다. 동지, 그럴 거면 나랑 같이 락페나 가지 그랬어요.)
그래서 그 결정을 후회하냐고? 전혀. 그날 밤 나는 꿈에 그리던 장면, 그러니까 뮤즈의 Starlight 전주에 맞춰 1-2-1-3 박수를,3만 명의 형제, 자매(그 장면은 흡사 종교부흥회를 연상케 했으니 나는 감히 그들을 형제, 자매라 부르겠다)들과 함께 치는 장면을 현실로 옮기고 있었고, 심지어 내 옆에는 나와 함께라면 일정 점수를 포기하겠다는 아름다운 여인이 함께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때의 황홀감은 내가 일정 연수를 제끼고 이 자리에 와있다는 현실을 덮어버리기에 충분했고, 어쩌면 이 순간이 내 인생의 클라이맥스일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이 좋았다. 마냥 좋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나 때론 사소한 결정 하나로 소소한 것(일정 연수 성적)을 잃고 나머지 모든 것을 얻을 수도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날 나와 함께 음악이 신(Muse )이 들려주는 반주(Starlight)에 맞춰 내 옆에서1-2-3-1 박수를 치던 여인은 1년 후, 나의 아내가 되었다. 결혼식 BGM은 내가 담당했다. 신랑 입장곡은 Queen의 <I was bron to love you>, 신부 입장곡은 Glen Hansard의 <Fallen from the sky>로 결정했다. 퇴장 BGM은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 연주곡을 썼다. (콜드플레이의 원곡을 쓰려다가 가사가 어울리지 않아서 연주곡 버전으로 바꿨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Starlight>의 가사와 그날 밤의 의미를 생각해 보니, MUSE의 <Starlight>을 퇴장 BGM으로 썼어도 꽤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사]
Far away
저 멀리
This ship has taken me far away
날 태운 이 배는 저 멀리
Far away from the memories of the people who care it I live or die
나의 생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저 멀리 떠나가고
Starlight
별빛
I will be chasing the starlight until the end of my li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