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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Aug 22. 2020

고정관념

멋대로 들어와 있는 손님이에요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벗어나기 힘든 고정관념(stereotype)이 있다. 어떤 단어를 보거나 들었을 때 곧바로 떠오르는 것, 그것이 고정관념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이 아니라 사회화의 과정에서 습득되므로 그 사회의 특성이기도 하다. 특히 여성에 대한, 또 남성에 대한 인식이 고정관념으로 발현된다. 그래서일까. 한동안 이런 퀴즈가 떠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교통사고가 나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죽고 아들은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이를 본 의사가 ‘이 환자는 내 아들이야’라며 절규했다. 그럼 이 의사와 환자는 과연 어떤 관계인가?” 

아버지는 이미 죽었는데 왜 또 아버지가 등장했지? 라는 의문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이 퀴즈는 끝까지 미스터리다.      


최근 발표된 몇몇 소설을 보면 연인관계로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당연히 ‘남녀’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비틀어 ‘남남’ 또는 ‘여여’로 설정되는 때가 있다. 작가는 동성애도 사랑이에요, 동성애란 이런 것이에요, 하고 변명하거나 가르치지 않는다. ‘그딴 성별 따위가 뭐가 중요해? 사랑이 중요하지’ 하는 태도로 가볍게 그 부분을 넘어간다. 

으레 청춘남녀가 주인공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주는 소설도 있었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독자가 한참을 읽다가 후반에서야 그렇지 않음을 깨닫고 처음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등장인물의 나이를 초반에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작가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다만 자신들이 그토록 철저한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다는 것에 깜짝 놀랄 따름이었다.      

그러고 보면 고정관념은 우리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인식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현실을 왜곡하는 일그러진 안경에 불과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여전히 고정관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고정관념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정보, 사전 지식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딱히 노력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거부감이나 고민의 과정 없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배여 있다. 고정관념은 종종 상식의 옷을 입고 등장한다. 그 정도는 상식이지. 그것도 몰라? 전통의 옷을 입기도 한다.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그게 맞겠지. 자기 경험의 한계를 드러내는 역할도 한다. 내가 겪은 적 없었으니까. 내가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 밖의  일은 있을 수 없어!     


예전에 나는 회사 남자 동료와 함께 지방에 내려가다가 휴게실에 들러 방향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내비게이션 없이 메모로만 경유지를 적어서 이동하고 있었기에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확인하려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 질문을 받은 촌로께서는 내가 아닌 남자 동료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가서 저렇게 가면 된다’고 설명을 했다. 그분은 남자와 여자가 있으면 당연히 남자가 운전하겠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화가 나는 대신,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갔었다. 어쩌면 내 안에도 그런 식의 고정관념이 남아 있었기에 그분을 이해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어떤 남녀가 내게 와서 길을 물었다면 나 역시 남자가 운전할 것이라고 ‘쉽게’ ‘간주하고’ 남자에게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을까. 누가 운전하시는데요? 라고 묻는 대신 나름 눈치 빠른 척하면서. 고정관념을 사용하려는 유혹에 넘어갔을 것 같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고정관념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일단 고정관념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스며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판단하고 인정해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부지불식간에 들어온 것임을, 그래서 제거하는 데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을 일단 ‘아닐 수도 있잖아?’라고 생각하는 데서 시작해보자. 흔히 ‘마음을 연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마음을 비워 둔다’로 표현하고 싶다.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 있는 마음을 비워두고 미처 내가 생각지 못했던 진짜 현실이 나의 지각 활동 아래 드러나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하면서.      

나이가 들면서 종종 삶이 지루하고 심심해진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세상을 오직 고정관념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뻔한 생각으로 세상을 대하는데 어찌 신기하고 새롭고 놀라운 게 있을까. 다양한 영화, 소설, 미술 작품을 접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머물렀던 좁은 세계의 벽을 깨보라.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모든 게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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