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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Jul 13. 2021

산장에서 있었던 일

<미운 아가 오리> -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5년 전 겨울이었어. 알프스 근처 국경의 산장에서 있었던 일이야.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아니 그렇게 많이 쌓이지 않았다면 나와 내 친구 미애는 오후에라도 그곳을 떠날 계획이었는데 산장 주인이 고개를 저었어. 숙박비는 받지 않을 테니, 눈을 치워 길을 만들 때까지 하루 더 묵고 내일 아침에 떠나라고. 통나무 산장은 아늑했고, 주인아저씨의 요리 솜씨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하루 더 묵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지. 미애는 내 귀에 대고 말했어.

“나 여기 좋았는데 잘됐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산장 거실에 모여 앉았어. 그 산장에는 모두 다섯 명이 있었어. 주인아저씨 외에 덴마크에서 온 청년 한스, 프랑스 청년 그레고리와 함께 말이야. 모두 짧은 영어지만 그런대로 간단한 대화는 주고받을 수 있어서 그 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았어.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손에 쥐고 모두 후후 불어가며 마시고 있을 때, 문득 주인아저씨가 말을 꺼냈어.

“오늘 저녁 먹은 고기 요리가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     






의외의 질문이었어. 나는 당연히 닭고기로 알고 먹었거든. 닭고기의 그 부드러운 질감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닭고기였잖아요. 닭고기 크림스튜...”

나보다 먼저 미애가 답했어. 그런데 한스와 그레고리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거야. 마치 ‘정말 모르고 있다는 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이야. 한스가 미애에게 물었어.

“혹시 <미운 아가 오리>라는 이야기 알고 있어?”

“당연히 알고 있지.”

미애는 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장담했어. 안데르센 명작동화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맨 처음 접하는 동화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한스가 그러는 거야.

“그 이야기 뒤에 숨은 진짜 이야기를 사람들은 대부분 몰라. 덴마크에서도 그 사실은 쉬쉬하고 있어. ”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검색해보았지. 하지만 <미운 아가 오리>가 실화라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어. 다만 안데르센이 부잣집에 초대받아 갔다가 연못에서 헤엄치는 멋진 백조와 그 옆의 못생긴 어린 백조를 보고 떠올린 이야기라는 내용은 찾을 수 있었어. 나는 그 얘기를 해주었는데, 한스는 역시나 고개를 저었어.

“아이들이 상처 입을까 봐, 그렇게 둘러댄 거지.”

성미 급한 미애가 물었어.

“아저씨, 그럼 우리가 먹은 게 오리였다는 거예요? 못생긴 아가 오리?”

주인아저씨는 고개를 저었어. 그리고는 갑자기 일어나서 커피를 더 가져오겠다며 주방으로 가더니 돌아오지 않았어.   

   




나는 한스에게 얘기를 마저 해달라고 졸랐어. 한스가 말했어.

“원래 어린 안데르센의 집에서 오리를 기르고 있었고 어미 오리가 알을 낳고 품었는데 그중 한 마리가 못생긴 회색 오리였던 거야. 오리들이 회색 오리를 구박하는 걸 보고 안데르센은 특별히 그 오리를 돌봐주었지. 이름도 붙여주고… 세바스찬이었어. 세바스찬은 안데르센의 손길에 아주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었어.”

미애는 이미 불길한 예상과 함께 인상을 잔뜩 찌푸렸어. 나는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한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안데르센이 집에서 나가보니 그 못난이 회색 오리, 세바스찬이 근사한 백조로 성장한 거야. 안데르센은 너무 기뻤지. 어미 오리도 아름다운 세바스찬을 보고는 눈부셔하는 것 같았다지?”

그레고리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어.

“그런데 어느 날 학교가 끝날 무렵, 부모님이 안데르센을 찾아 학교로 오신 거야. 마을 귀족이 우리 모두를 초대했으니 같이 가자고. 안데르센은 부모님을 따라 그 귀족의 집으로 갔어. 화려한 정원과 거대한 저택에 입을 딱 벌렸는데, 식당에는 그보다 더 멋진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어. 그런데 자리에 앉아 고개를 든 안데르센은 식탁 정중앙에서 믿을 수 없는 것을 보고 말았어.”

미애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했어. 그레고리는 스마트폰으로 구글에서 뭔가를 검색하더니 ‘cygne roti’라고 하며 어떤 사진을 보여주었어.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어. 

“너무해, 너무해! 어떻게 그럴 수가….”

동화 속 이야기 뒤에는 종종 무서운 현실이 숨겨져 있다더니, <미운 아가 오리>에도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가 있었구나. 안데르센의 부모님이 예쁘게 성장한 백조를 귀족에게 진상했던 거구나. 갑자기 저녁에 먹은 그 고기가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백조를 먹은 거야?      






그때 주방에서 주인아저씨가 백조 모양의 하얀 케이크를 들고 오셨어.

“다들 잘 속았나? 자, 백조는 지금 먹을 거야.”

그제야 심각한 척 인상 쓰고 있던 한스와 그레고리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어. 우리가 먹은 건 평범한 닭고기 스튜였다고. 주인아저씨가 이 산장의 백조 케이크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레퍼토리라며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스는 천국에서 안데르센 아저씨를 만나면 이 거짓말에 대해 꼭 사죄할 거라고도 했어. 

그랬구나, 그랬어. 케이크가 정말 맛있었기에 우리도 웃고 넘어갔어. 백조 케이크의 기다란 백조 목은 우리들의 포크질 몇 번에 똑 하고 부러졌고 잠시 후 접시 위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모두에게 잘 지내라는 메모를 남기고 일찌감치 산장을 빠져나왔어. 우리의 여행은 계속 이어졌어, 별다른 사건도 사고도 없이. 하지만 문득 안데르센에게 진짜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혼자 생각에 잠기곤 했어. 내가 너무 때 묻은 인간이 되어서인 걸까?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려서일까.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들어버린 후, 나의 부질없는 상상력은 끝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어. 나야말로 먼 훗날 천국에서 안데르센 아저씨를 만나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어. <미운 아가 오리>의 진짜 비하인드 스토리를 그리고 어른으로 자란 백조는 정말 백조로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는지를 말이야.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누군가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한다면 나는 말해줄거야. 그 백조는 그냥 백조가 아니라 지구 위 수억만 명의 가슴 속에 사는 마지막 희망 같은 백조이기 때문이라고.  특히 나처럼 외롭고 쓸쓸했던, 진짜 미운 아가 오리였던 사람에게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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