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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Jan 08. 2022

정리의 끝


작가님 글을 못 본 지 무려.. 150일이 지났어요 ㅠ_ㅠ 작가님 글이 그립네요.. 오랜만에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글을 보여주시겠어요     


브런치 메시지를 받고서야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를 열었다. 150일간이면 무려 5개월, 뭘 하느라 그리 바빴을까. 돌아보니 꽤 오랫동안 공간과 씨름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덜어내고, 바꾸고, 버리고, 팔고…. 

오늘 그 마지막 마무리 작업으로서 알라딘 중고매장에 다녀왔다. 이제 당분간 이 집안에서 더 덜어낼 것은 없을 것 같다.      



시작은 싱크대 아래에 있던 돌솥과 돌판이었다. 문득 눈이 갔다. 안 쓴 지 10여 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 몰랐다. 고민하다가 구청 홈페이지에서 발행하는 폐기물 스티커를 구매하여 대형폐기물로 내놓을 수 있었다. 덕분에 주방에 여유가 생겼고, 그 공간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주방 수납장을 정리했고, 연달아 거실 서랍 3칸도 정리했다. 영수증, 지로용지를 비롯한 종이 쓰레기가 꽤 나왔다.      



종이 쓰레기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으로 가득한 책방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사거나, 책이 생기면 무심하게 그 안에 던져놓고 정리는 포기했던 공간이었다. 책을 이중으로 꽂은 것은 물론, 바닥에도 가득 쌓여 있었다. 이 지경일지라도 책을 함부로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책뿐만 아니라 선풍기 두 대, 유선 청소기도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어서 언제부터인가 잠깐 들어와서 필요한 것만 찾아서 들고 나갈 뿐, 절대로 오래 머물지 못했다. 여기를 정리해야 했다. 그게 한 달이 넘게 걸렸다.     



1. 일단 소장하고 싶은 책과 아닌 것을 분류했다. 낡고 오래된 책을 우선으로 정리할 생각이었으나 거의 삭았음에도 너무 소중한 책은 비닐로 포장해서 보관하기로 했다. 

2. 소장하기 싫은 책 중 다시 중고매장에 팔 수 있는 책과 팔 수 없는 책을 분류했다. 

3. 팔 수 없는 책 즉 너무 오래되었거나, 낡았거나, 밑줄이 많이 그어져 있고, 남에게 주기도 민망한 책은 고민하지 않고 일요일 재활용 수거할 때 내놓았다. 그런데, 이 분량이 너무 많아 노끈으로 묶은 묶음을 양손으로 들어 날랐는데 10번을 오르고 내렸다. 그렇다고 한 번에 다 내놓으면 전체 쓰레기 무게가 너무 무거워질까 봐 비슷한 분량의 책 묶음을 그대로 놔둔 채 한 주를 더 기다렸다가 다시 10번을 오르고 내리며 재활용 수거장에 내놓았다.

4. 중고매장에 팔 수 있는 책들은 한군데 모아놓고 오며 가며 다시 확인했다. 혹시나 마음이 바뀔까 봐. 

5. 한 번에 열권씩 들고 매장에 방문해서 팔았다. 4번, 두 군데를 나눠서 방문, 판매했다. 집에서 택배를 보낼 수도 있지만, 택배기사와 시간 맞추는 게 번거로워서 내가 나갈 수 있을 때 들고 나가 판매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 마지막 방문이 오늘이었다.     



책 정리하는 가운데 앨범과 일기도 오랜만에 꺼내 보았다. 원래는 일기장을 다 버릴 생각이었다. 사과 상자 한 개 분량, 무겁기도 하고 거기서 벌레가 생성될 것 같았다. 하지만 몇 장 읽어보니 전혀 기억나지 않는 내용이 태반이라 이마저도 버리면 내 과거는 완전히 미궁에 빠질 게 분명해서 참았다. 60세가 되는 해에 다시 한번 결정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 오래된 소파가 너무 꿀렁꿀렁해서 앉으면 멀미가 나서 소파를 바꾸었고, 에어컨 실외기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하여 20년 만에 에어컨을 교체했다.      



딱 보면 그다지 변한 게 없고, 여전한 공간이다. 특히 가지고 있던 책들의 절반 이상을 비웠음에도 여전히 책장들이 빽빽하다. 하지만 그전과 다른 점은 이제 무엇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존재와 상태가 다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정리하는 게 지칠 때면 TVN에서 방송되었던 <신박한 정리>를 보면서 힘을 냈다. 소중한 것만 남기고 필요 없는 것은 흘려보내는 일이 정리라고 한다. 방송 속 미니멀리스트의 공간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지만, 다 흘려보내지는 못했지만, 길고 길었던 정리가 끝나니 이제 진짜 내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짓말처럼 4년 넘게 무겁고 아팠던 어깨도 가벼워졌다. 가볍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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