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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Jan 30. 2022

채식으로 갑니다

살기위해서요

"가슴 쪽이 따끔따끔해."

한 달 전 아침 출근길 남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나 역시 가끔 몸 여기저기가 따끔거리던 적이 있었으니까.  1월초에는 남편이 일찍 퇴근하여 집으로 왔다.

"무슨 일이야?"

"등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

그는 심장 바로 뒷쪽인 등이 아프다며 아무래도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음날 병원으로 갔고 의사는 '심전도 검사 결과 이상 소견이 보인다'며 보다 큰 병원으로 가라'며 소견서를 작성해주었다. 큰병원에서는 그리 심각해보이진 않는다며 그저 환자와 가족의 안심을 위해 정밀한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트래드밀 검사와 심장초음파 검사. 검사 결과, 협심증 판정이 나왔다. 의사는 '환자가 너무 초연해서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며 '일단 2주 간 약을 복용해보고 그래도 상황이 나쁘다면 혈관을 뚫어주는 시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뒤돌아서서 절대로 시술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약을 매일 제때 먹는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식단이었다. 내 머릿속으로 그동안 방만했던 우리의 식생활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중국음식으로는 라조기, 탕수육 한국음식으로는 족발, 패스트푸드로는 햄버거, 라면 간식으로는 도넛,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을 거의 하루 걸러 매일 먹어왔다. 우리가 이러한 음식을 소화해내는 것이 오히려 건강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콜라는 박스째 사놓고 있었다. 다른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의사도 콜라나 스프라이트는 이제 그만 마시라고 했는데.  

남편처럼 뚜렷한 증상이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체중 증가와 고지혈증에 대한 경고는 받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함께 '채식'으로 가야 했다. 남편은 그래도 샐러드나 채소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문제는 나였다. 현미? 채소? 그런 걸 왜 굳이 입에 넣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평생 품고 살아왔다. 그런 건 정말 맛이 없다는 신념.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바뀌어야 했고 나는 현미를 샀다. 생애 처음. 그런데 반전이 벌어졌다. 현미밥은 맛있는 음식이었다. 귀리를 넣으니 더욱 고소하고 쫄깃쫄깃했다. 채소도 그 종류와 요리방법에 따라서는 단순한 튀김 요리나 중국음식보다 맛있었다. 2주 후 다시 병원을 찾았고 남편의 혈압은 119-79로 정상이 되었다. 의사는 한 달 간 더 약을 복용해보자고 했다. 혈관을 뚫는 시술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마음이 편해졌는지 의사가 참 좋은 사람 같다며, 경계심을 풀었다. 병원을 나오며 우리는 옆에 있던 쉑쉑버거에서 햄버거 하나씩을 먹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남편은 고기 패티를 버터에 구운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든 음식의 뒷면을 읽으며 트랜스지방, 설탕, 소금, 콜레스테롤을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 식탁에는 이제 천혜향, 바나나, 망고, 아보카도가 쌓여 있고, 매일 식사의 기본은 샐러드다.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오일을 섞은 드레싱, 레몬, 올리브오일, 머스터드를 섞은 드레싱, 키위, 양파, 올리브오일, 꿀을 넣은 드레싱 등 드레싱만 바꿔도 맛이 있고, 샐러드 재료로 들어가는 채소나 단백질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다채롭고 풍성한 느낌이 든다. 냉동실 안에 묵혀두었던 병아리콩을 꺼내 후무스도 만들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왜 못했을까. 곤드레 무침, 시금치 나물, 샐러드, 현미밥, 가자미 미역국 한 그릇이면 푸짐하고도 맛있는 식사가 된다. 

"고기는 없어?"

남편의 불만스러웠던 목소리는 더이상 없다. 식사후엔 더욱 풍성한 디저트 차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천혜향, 아몬드, 바나나....쉬는 날에는 무조건 둘이 함께 밖으로 나간다. 소파는 고양이에게 양보하고.  


불길하고 슬픈 소식 같았던 남편의 협심증 진단은 큰 변화를 몰고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이렇듯 완벽한 변화는 불가능했을 테니까. 특히 나처럼 채소싫어병, 샐러드왜주문해병, 흰밥에다른것들어간것정말싫어병이 심각했던 인간의 변화는 스스로 생각해도 놀랍다. 


인간에겐 늘 새로운 경험과 시도가 필요하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것이다. 이러다간 언젠가 매일 운동까지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 같아 가슴이 설렌다. 미래에서 나를 기다릴, 낯선 나....안녕? 그때까지 우리 서로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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