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강 Apr 04. 2023

돌아보니 해피엔딩

나흘간의 입원기

그쪽에서 뭐라고 말을 했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119를 누르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부터 이미 내 가슴은 콩닥거렸고 입술은 벌렸으나 어, 어, 하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네 침착하시고 천천히 말씀해주세요."

나같은 사람들을 많이 겪었는지 그녀는 천천히 얘기하라고, 침착하라고 되뇌였다.

이런 상황에서 주소를 먼저 얘기하는 게 나을지, 환자의 상태를 먼저 말하는 게 나을지 몰라 나는 "남편이 침대에 앉아서 못일어나는데요, 그런데 여기는 **아파트인데요, 그런데 남편이 아침부터 아프다고 했는데요.." 하며 횡설수설했다. 수많은 다큐멘터리를 보았고 한국 것도 모자라 전 세계의 모든 위급 상황 장면을 익숙하게 접했던 나였는데도 실전에서는 이렇게 서툴렀다. 다행히 상황이 접수되었고 약 9분만에 우리집 대문은 활짝 열렸다. 3명의 구급대원과 나는 함께 남편을 들것에 옮겨 들고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119를 부를 정도로 위급하게 느껴졌던 것과 달리 의사는 '걸을 수 있어요? 그럼 집에 가셔도 되는데.'라고 했다. 허리 약한 사람들이 종종 이런 상황을 겪는 듯 했다.  작년에 내시경 수술을 했던 남편은 수술 후 방심했고 운동도 절식도 과감히 거부하여 과체중을 한참 넘어선 상태였다. 걷는다고 해도 이대로 집에 가면 며칠 가지 않아 또 같은 증상이 반복될 것 같았다. 

"그래도 너무 아파하는데 어떻게 가요?"

소심한 절규를 지속하던 내게 결국 의사는 '그럼 일단 입원하실까요?' 라고 했다. 바로 '네!' 하고 답변 했다. 5인실. 보호자가 간병해야 하는 시스템. 그리하여 나흘간 우리 부부는 함께 병동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집에 두고 온 고양이들을 그리워하며 나는 보호자용 간이 침대에서 이불 대신 남편의 롱패딩을 덮고 눈을 감았다. 불편하다거나 서글프다거나 하는 감정보다는 그냥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남의 인생에 잠시 들어가서 대리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 한번도 예상하거나 짐작하지 못했던 상황. 좋다, 나쁘다, 싫다, 너무한다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조차 어색했던 순간. 


"식사 왔습니다."

그 말과 함께 아침이 시작되었다. 환자용 식판과 보호자용 식판이 공평하게 배달되었는데 진하고 기름진 식사에 길들여져 있던 우리에게 병원식은 그야말로 손 갈 데가 없었다. 거의 새것 그대로 반납했고 점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불평은 의미가 없었다. 평소 먹는 것에 가장 진심이던 남편은 화장실에 걸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집중하고 있었고 몸을 가눌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해진 상태였다. 어쨌거나 다른 치료나 검사 없이 종일 근육 이완제를 맞는 정도로도 서서히 나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병원식 역시 시간이 갈수록 더 나아졌다. 혹시 첫 아침식사를 우리처럼 손도 대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던 걸까? 남편의 최애 반찬인 잡채가 나왔을 땐 남편보다 내가 먼저 환호를 질렀다. 


"어떠세요? MRI는.....내일 상태 더 보고 결정할까요?"

회진을 온 의사는 여전히 남편의 상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남편의 증상을 하찮게 여기는 게 얼마나 고맙고 기뻤던지. 

"네, 그렇게 할게요."

디스크 증상은 앉아 있는 게 제일 안 좋고 서 있거나, 누워 있는 게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별다른 처치가 없더라도 병원 침대에서 누워 지내는 게 제일 좋은 처방일 것 같았다. 하루 더 있어도 된다, 야호!

어느덧 우리는 빈둥거리고 있으면 하루 세끼가 저절로 배달되는 병원 시스템에 적응하고 있었다. 밥도 점점 맛있어져서 어느새 우리는 반 정도를 비워내고 있었다. 


"혼자 걸어서 화장실에 가신다구요? 그럼 내일은 퇴원하셔도 되겠네요."

제주도로 세미나를 간다는 담당의사는 정말 너무 반가운 소리를 남기고 떠났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 5인이 풀이던 방은 이제 2인이 빠져나가고 1인이 새로 들어와 4인인 상태였고 내일이면 다시 3인이 될 터였다. 

처음 119 버튼을 누르던 때, 나는 마치 아득한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 같은 기분으로 공포에 젖어들었다. 내 입으로 습관처럼 '건강이 젤 중요하다'고 했으면서 그 중요한 건강을 놓쳐버리고나니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덕분에 우리가 그동안 무엇을 잘못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묵직한 교훈을 얻어낸 셈이었다.


가장 큰 샘플은 첫 아침식사! 손 갈 곳 없는 풀의 모듬으로 밥상 차리기! 가벼운 몸을 만들고 나면 그 다음은 더 쉬워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채식으로 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