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회사 사원증을 목에 걸다
한가한 오후 시간,
잠깐 여유가 생겨 창 밖을 보았더니 이른바 취업용 슈트를 입은 학생이 보였다.
취업 활동이라는 게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이 나라의 취업용 슈트.
오늘은 면접일까? 필기시험일까? 어쨌든 파이팅! 이라며
알지도 못하는 학생을 마음속으로 응원해주다가,
문득, 그러고 보니 나는, 외국에서 일을 한 지 몇 년정도 되었지? 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본에서 대학을 나왔고 그대로 일본에서 취업 활동을 했다.
특별히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건 아니었지만
일단 일본 회사에 취직하고 싶었다.
누군가 함께 준비할 수 있는 친구가 없을까, 찾아봤지만
주변 유학생들은 대부분 취업 활동을 모국 중심으로 했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준비부터가 달랐고,
학교 친구들, 선배들, 선생님들, 취업 담당자는 모두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유학생 입장에서의 취업 활동과는 또 거리가 있었다.
이 나라의 사정을 모르는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기에,
당연하게도 나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내야만 했다.
일본은 신졸(新졸업생)을 뽑기 위한 채용이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신졸 채용이 제일 규모가 큰 듯하다)
시기적으로는 대학교 3학년 후반기부터 응모가 가능한데 이 제도의 좋은 점은
3학년 때 떨어졌다면 4학년 때 또다시 응모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신졸(新졸업생) 학생이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고 졸업 후 취업 준비생이 될 경우,
제2 졸업생, 줄여서 제2졸이라고 불리며 '제2졸 대상의' 채용에 응모가 가능하다.
('제2졸'에 대해선 일본 내에서도 의식 차이가 있는데, 보통은 졸업 후 2년 동안 취업 경험이 없는 사람,
혹은 신졸로 취업 후 2년 안에 퇴사하여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대부분은 신졸/제2졸을 함께 채용하지만,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라도 뼈가 굵은 회사의 경우 조건에서 이미 '신졸'만 응모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신졸'만 뽑는 기업은 채용이 1년에 한 번뿐이거나 매년 채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꼭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선발 과정은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1. 심사가 시작되지 않은/ 심사가 시작된/ 회사 설명회부터 시작되는 채용
2. 엔트리 시트*를 작성하기 위해 회사 채용 홈페이지에 가입하는 걸로 시작되는 채용
*엔트리 시트란 회사별로 지정되어 있는 1차 제출 서류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합쳐져 있다.
첫 시작이 다를 뿐, 그 후의 선발 과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1. 설명회 -> 서류 심사* -> 필기시험* -> 1차 면접 -> 2차 면접 -> 3차 면접 -> 결과 통보
2. 엔트리 시트 작성 -> 서류 심사* -> 필기시험* -> 1차 면접 -> 2차 면접 -> 3차 면접 -> 결과 통보
*서류 심사는 보통 웹으로 가능하지만, 회사에 따라 지정된 서류를 인쇄해서 손으로 적은 후 우편으로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필기시험은 보통 SPI(적성 검사)라고 불리는 시험을 이용하지만 회사에 따라 없기도 하고,
그 회사만의 시험이 있기도 하고, 2차로 또 다른 시험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일본은 특이하게도, 취업 활동용 슈트가 따로 있다.
취업 활동용 슈트, 아우터, 가방, 구두, 벨트, 넥타이 까지.
왜인지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거의 모든 취업 활동에서 이 슈트를 입어야 하고 모두가 입는다.
면접 시 취업 활동용 슈트를 입고 올 것.이라고 적힌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반대로 복장 자유,라고 적힌 회사는 종종 있었다.)
심지어 심사가 시작되지도 않은 회사 설명회마저도 모두가 이 복장으로 온다.
(암묵적 룰이라는 게 이렇게나 무섭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돈 없는 가난한 유학생이었고,
처음부터 취업 활동용 슈트를 입는 것에 크나큰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돈이 없어서 과제도 맘껏 못하고 있는데,
일부러 돈 들여 슈트까지 사서, 그것도 남들과 똑같이 피에로처럼,
그러려고 내가 유학을 왔나, 싶은 마음에 끝까지 슈트는 사지 않았다.
그렇게 이상한 고집을 부려가며 취업 활동을 계속해 보았지만,
결국 성과 없이 4학년이 지나갔다.
성과 없이 4학년이 지나갔다, 라는 말은
3월의 졸업식이 끝나고 4월부터 다들 회사로 출근할 때,
나만은 갈 곳이 없었다는 것을 뜻하는 말로,
숨은 뜻으로는 지긋지긋한 취업 활동을 일 년 더 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외국인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 없이 취업 활동을 하려면 특별 비자를 받아야 했다.
특별 비자를 받은 나는,
'제2졸 외국인'으로서 일 년 간 취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때 제일 부러웠던 건 역시 사원증을 목에 건 주변 친구들이었다.
대학 시절,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던 나는
그들과 함께하며 4년 동안 국적, 출신을 잊고 지냈었는데,
서로가 서로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하고 있고 좋은 일이었지만
나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잊고 지냈던 것은,
그 시절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였고, 좋지 않은 일이었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외국인이 아니었고, 비교적 취업이 쉬웠다.
그런 내가 그들과 같은 정도로 준비를 했을 때,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돌아보면 학생 때의 나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코피를 흘릴 정도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
아직 눈 앞에 닥치지 않은 미래가 무섭지 않았고, 절박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나태하게 지냈는지 뼈가 저리도록 느꼈을 땐 이미 출발지점이 달랐다.
이렇게 될 때까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싶어 뒤돌아본 적도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목적 없는 이유 찾기가 시작되었지만,
그 끝은 항상, '결국 나의 나태함이 뿌린 결과'라는
허망한 후회로 끝을 맺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싶다가도
영향을 너무 받기만 했나, 싶어 지면 또다시 우울해졌다.
하지만 우울한 감정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런저런 변명거리를 찾아본들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는 없는 법,
지금 현재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상당한 수의 이력서를 쓰고, 보내고,
또 쓰고 보내고 하면서 육 개월을 보냈다.
졸업하고 하는 취업활동은 학생 때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직업에 대해 넓은 범위와 가능성을 놓고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렇게 다시 찾아보니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회사들과 직업군이 존재하고 있었다.
피에로 슈트를 입지 않아도 되는 회사들도 종종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서류가 통과하는 일도 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자전거를 타고 초고속으로 우체국에 달려가 원서를 보내던 날들.
돌아오는 길은 왜인지 너무나도 길게 느껴지던 그 날들.
기를 쓰고 세 번을, 삼 년을 도전했지만 끝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던 제1 지망들.
남들과 똑같은 취업 패션이 너무 싫어서 고집스럽게 유지했던 나만의 취업활동 패션들.
그때, 남들과 똑같이 머리 묶고 똑같은 슈트 입고 똑같은 가방 메고 똑같은 구두 신고 갔으면,
나는 원하던 그 회사에 붙을 수 있었을까?
가끔은 남들과 똑같아야만 하는 순간도 있다는 걸 안 건 그 때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첫 단추의 위치를 그렇게 제대로 못 찾고 헤매던 중,
육 개월 만에 취직을 했고 고대하던 사원증을 목에 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