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입니다 13
이 차장은 지윤이 그만두고 그 한 달이 지옥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박상무와 뭔가 쑥덕대는 것 같던 지윤이 엉엉 울며 나와 바로 짐을 쌌고, 수경이 다시 출근하기 전까지 혼자 그 뒤치다꺼리를 다 했다고도 전했다. 박상무는 어떻게든 버티라고만 할 뿐, 새로 사람을 뽑아 주지도 않았고 자초지종 설명도 없었다. 짜증 난 이 차장은 수경에게 카톡으로 전화로, 이런저런 불만을 터뜨리며 하루라도 빨리 출근하도록 수경을 닦달했다.
그렇게 모두가 기다리던 수경이 드디어 출근했다.
그리고 두 달여 짧았던 지윤의 존재는 잊혔다. 더 이상 남직원들의 비서실 방문도 없었고, 사무실에 쌓여가던 커피도 간식도 모두 끝이 났다. 어수선했던 기운도 사그라들었고, 사장의 큰소리와 박상무의 능구렁이 소리와 이 차장의 궁시렁만 가득했다. 법적 출산휴가만 딱 채우고 나온 수경은 육아의 홀가분함을 느낀 것도 잠시, 또다시 시작된 업무의 반복에 벌써부터 시들어갔다.
하지만 며칠 후, 모두를 다시 긴장하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사장의 이메일 몇 개가 엉뚱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그 첫 번째는 영업실적이 좋지 않은 윤전무에 대한 인사팀의 보고 메일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장이 수신한 그 메일이 전무 본인에게 전달되었다. 윤전무는 벌게진 얼굴로 박상무를 찾아와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고 큰소리쳤다. 따지고 보면 윤전무가 화를 내야 할 사람은 사장이겠지만, 민망한 상황에 박상무에게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 박상무는 인사팀의 정기 보고일 뿐이라며 사태를 무마하려 하며, 씩씩대는 그를 데리고 몇 날 며칠 밥을 사고 술을 사며 달랬다.
하지만 이런 이메일 오전달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건 곧 밝혀졌다. 박상무 자신도 사장과 지윤이 주고받은 이메일을 하나 전달받았다. 사장이 그가 조찬에 오지 않은 이유를 지윤에게 캐묻는 내용이었다. 그는 첨부파일을 열어보고 그야말로 혈압이 솟구치는 걸 느꼈고 자동으로 뒷목을 잡았다. 그날 지윤이 전화 너머로 녹음한 자신과 아내의 소란이 그 녹음파일에 그대로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 차장도 문제의 메일을 하나 전달받았다. 사장이 이 차장을 지칭하며 ‘늙은 직원은 다 잘라야지.’하는 말에, 박상무가 ‘다른 직원보다 월급도 낮고 일단은 그냥 두시라’는 내용이었다. 가뜩이나 일이 많아져 뿔이 나 있던 이 차장은 하루 무단결근을 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박상무가 사장에게 새로운 비서 후보 이력서 몇 개를 보낸 것 또한 고스란히 수경에게 전달되었다. 갓난아기를 떼어놓고 나왔다는 일말의 자책이 있던 수경은 자신이 임시변통일 뿐이란 걸 알고 배신감을 느꼈음은 물론이다. 그녀는 이 차장처럼 무단결근을 할까 고민도 했지만, 좀 더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겠다며 이를 갈았다.
박상무는 처음엔 이메일이 해킹되었는지 의심했고, 다음엔 억지로 끌려 나온 수경의 장난인가 떠보았다. 하지만 사장의 이메일 계정 암호를 아는 건 수경만이 아닌 데다 그녀는 이 사태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이 모든 일이 김지윤의 복수라고 단정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불러들여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하루빨리 수습하는 게 우선이었다. 괜히 이런 맹랑한 지윤을 불러들여 따졌다가 더 큰 긁어 부스럼을 만들 거 같기도 했다.
사실 회사를 떠난 날부터 지윤은 법카로 매일 몇 십만 원씩 긁어대고 있었다. 박상무는 당장 카드를 해지해버리라 지시하고 싶었지만, 지윤의 독기 어린 눈빛이 생각나서 딱 일주일만 눈 감아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한 어느 날. 수경에게 당장 카드를 해지시키라고 말했다. 그리고 모두를 화나게 한 그 이메일들이 전달된 날짜가 바로 그 카드가 정지된 날짜였다.
그는 이 차장과 수경을 불러 모았다. 이 모든 소행이 지윤의 짓이라는 게 확실하니 앞으로 대비를 좀 하자고 했다. 그는 우선 모든 암호를 다 변경하는 것은 물론, 사장을 비롯한 비서실 직원들의 이메일 주소와 핸드폰 번호도 바꾸도록 지시했다. 카톡에서 그녀를 차단하도록 했고, 지윤과 어떤 끈이라도 연결된 직원이 있는지 하나하나 면담도 했다. 영업팀 한 대리가 아직까지 그녀와 연락 중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 팀 주변 사람들을 탐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두 달여의 지윤을 지우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비서실에서 있었던 일을 일일이 다 이야기할 수도 없으니 오히려 근거 없는 소문만 번져갔다. 간간히 지윤을 회사 근처에서 봤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른 회사에 면접을 가는 중이라고도 했고, 이미 ‘00 회사에 취업했다더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두 달간 내내 지윤 주변을 머물던 재무팀 김 차장과 같이 퇴근하는 걸 보았다는 목격담도 이어지더니, 둘이 사귀고 있다고까지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지윤의 이야기가 계속 들릴수록, 박상무의 머리도 우수수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