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입니다 12
박상무는 얼른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는 지윤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고, 그녀의 고용계약서와 사규집을 나란히 펼쳐 보였다.
‘이런 어린애 하나쯤이야.’
박상무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이 작은 권력에 약간 고무되는 걸 느꼈다. 그는 아무 말하지 않는 지윤을 앞에 두고 자신이 할 말을 다한 후, 소파에 등을 기대앉았다.
“그러니 지윤 씨. 이번 달 말까지 나와주면 좋지만, 다른 직장 알아보느라 바쁘면 한 달 월급은 쳐줄 테니 다음 주부터 안 나와도 좋아.”
지윤은 박상무의 말이 끝나도록 잠시 숨을 가다듬는 듯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마음이 느긋해진 박상무는 ‘오늘 점심 뭘 먹을까?’ 같은 생각들을 되는대로 떠올리며 잠시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이내 뭉기적대는 지윤에게 짧게 말했다.
“뭐 해? 나가봐.”
지윤은 자기 생각에서 빠져나오는 주문을 들은 듯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눈빛을 추스르고, 조금 망설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처음의 조심스러움은 시간이 지나며 대담해졌다. 구구절절 조근조근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윤의 이야기에 박상무는 얼굴이 구겨졌다. 애써 근엄한 표정을 놓치지 않으려 했지만, 지윤의 말이 길어질수록 그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뭐 하자는 거야 지금? 또 할 이야기 더 있어?”
지윤은 이참에 다 이야기하기로 했다.
“저...... 상무님. 퇴사 전까지 법카는 그대로 써도 될까요?”
지윤은 잠시 탁자에 놓인 음료를 조심스레 만지며 말을 이어나갔다.
“지난번 사장님 미국 가실 때 출장 아니시고 휴가인데, 제가 사모님 거까지 법카로 결재했거든요. 현지에서도 다 회삿돈 쓰셔서 제가 증빙 자료 만들어내자니 힘들더라고요. 물론 수경대리님한테 인수인계 다 받았어요. 원래 다 그렇게 하신다고요. 사모님 이름은 다른 임원분으로 대체해서 기안 올리라 알려주셨어요. 그렇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금액이 좀 커서요. 상무님은 워낙 공사가 잘 구분되시는 분이시니까 법카 유용 이런 거 절대 안 하시잖아요. 이 차장님만 해도 거의 모든 살림 장만 회삿돈으로 하시는데요. 아 참. 직원 복지 차원이라고 기안 올린 안마 의자, 잘 받으셨지요? 사모님이 지정해 주신 사양으로 주문했는데 괜찮으신지 모르겠네요.”
결국 박상무는 입이 떡 벌어졌다. 숨도 안 쉬고 속사포를 쏘아대는 지윤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갑자기 말이 끊긴 지윤은 잠시 당황한 얼굴이더니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저는 이제 한 달 남았다고 하셨잖아요. 전 퇴직금도 따로 없고...... 접대비 한도 넘지 않도록 주의할게요.”
눈물로 가득 찬 지윤의 눈은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