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

- 비밀입니다 11

by 고미젤리

어느 날 오후, 갑자기 수경이 사무실에 나타났다. 이미 약속되어 있던 거였는지 지윤을 제외한 모두는 전혀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오랜만에 나타난 수경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여유롭게 박상무의 방에서 한 시간이 넘게 이야기하더니 휴게실에서 또 이 차장과 한참 대화를 이어갔다.

지윤은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휴게실 문 앞에서 ‘똑똑똑’ 노크했다. 뭔가 대화가 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더니 수경이 문을 빼꼼히 열었다.

“아. 지윤 씨였구나. 무슨 일 있어요? 사장님이 부르시나?”


지윤은 그런 수경에게 끝까지 예의 바른 태도를 지켰다.

“아니요. 대리님 오랜만에 오셨으니까 밖에서 커피라도 좀 사 올까 싶어서요.”


수경은 눈을 살짝 흘기며 ‘호호’ 웃음을 흘리며 이 차장에게 물었다.


“나 커피 못 마셔요. 알면서...... 차장님, 지윤 씨가 커피 사 오겠다네요. 아침에 커피 드시지 않았어요? 다른 거 뭐 드시겠어요?”

지윤은 이들이 주문한 블루베리 요거트 스무디와 말차 푸라푸치노를 사러 회사 1층 카페로 향했다. 그녀는 수경이 곧 회사에 나올 거라는 강력한 시그널을 받았다. 그럼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건지. 아직 출산휴가가 한 달도 더 남은 걸로 알고 있는데 수경은 왜 벌써 나온다는 건지. 그 갑작스러움에 그녀는 속이 불편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했다.

마침 인사팀 김 과장과 1층에서 마주쳤다.

“지금 법카로 커피 사러 가는데 한잔 드시겠어요?.”

이미 마셨다며 가볍게 거절하던 김 과장은 결국 지윤의 눈웃음에 넘어갔다. 그녀는 그와 함께 커피를 기다리며 오늘은 돌려 말하는 것보다 직구를 날려 보기로 했다.


“과장님, 수경대리님 출산휴가만 쓰시고 곧 오시나 봐요?”


김 과장은 영 난처한 표정으로 잠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지윤과 별다른 친분도 없었고, 다른 남직원들이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음흉한 이야기를 하는 건 들어봤지만 그건 술자리 이야기들이라 생각하고 무시해 왔었다. 명색이 인사팀 과장인데 인사 관련 문제를 본인에게 누설하는 건 맞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그런 김 과장의 망설임을 눈치챘는지, 지윤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박상무 님, 이 차장님도 너무 힘든데, 저한테 이렇다 저렇다 말도 안 해 주시고......”


말끝을 흐리던 지윤은 갑자기 후다닥 화장실로 향했다. 약간 극적인 효과를 바랐을 뿐인데, 진짜 왈칵 눈물이 쏟아지니 자신도 당황스러웠다. 지윤은 화장실에서 대충 마음을 진정시키고 밖으로 나왔다. 그새 나온 음료를 든 김 과장이 어정쩡하게 카페에 앉아 있었다. 자리로 돌아간 지윤은 사과부터 했다. 마음이 좀 부드러워진 김 과장은 그런 그녀를 위로하며 약간의 조언도 해주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윤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김 과장이 이야기해 준 대로, 계약서상 수습기간이 명시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었고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말도 맞았다. 못 나간다고 버티자니 자기편을 들어줄 사람도 없고 그렇게 버틴다고 이길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좀 더 현명했어야 했다. 그녀는 이렇게 빨리 정리될 수 있다는 걸 계산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이전 10화수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