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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젤리 Dec 13. 2023

동물의 왕국

 동물과 관련된 황당한 사건이 두 번이나 있던 주였다


 첫 번째는 비둘기다. 

 평소 동네 노인복지관에 있는 카페에 자주 가는 편이다. 이곳은 최근 지어진 4층짜리 건물인데, 주변 집들 사이에 있다 보니 동네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곳이다. 하지만 1층 카페는 요즘 같은 때 놀라운 품질의 커피를 2,000원에 마실 수 있고, 일하시는 바리스타 어르신들도 여유롭지만 열심히 일하시니 갈 때마다 참 기분 좋아지는 곳이다. 게다가 커피 한 잔을 뽑아 4층 북카페에 올라가면 오전 시간은 그야말로 나 혼자이다. 내가 꾸준히 글을 쓸 집중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완벽한 아지트 덕분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4층 창문 틈에 끼인 비둘기를 보고 말았다. 위아래로 긴 통창인데 방범용인지 장식용인지 바깥쪽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철제 벽이 쳐 있었다. 그 철제 벽이 유리창과 밀착되어 있는 게 아니라 10 센티미터 정도 틈이 있는데, 그 사이로 빠진 것 같았다. 처음엔 그냥 신기한 마음에 무심코 들여다봤는데, 몇 분 들여다보니 이 비둘기가 여기서 나올 수 있을까 걱정이 시작되었다. 작은 구멍으로 얼굴을 내밀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결국 3층에 있는 사무실에 내려가 직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직원 두 명이 올라와 보더니 본인들도 황당해했다. 통화하는 걸 잠시 엿듣자니, 119는 동물 구조는 안 한다고 하고, 동물 구조센터는 자체 구조가 가능할지 먼저 시도해 보라는 것 같았다. 바깥 날씨는 영하인데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이니 더 겁에 질렸는지 가엾은 비둘기는 빠져나가려고 더욱더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금은 힘이 남아 있지만 얼마나 지탱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직원들이 심각하게 상의를 이어갔고, 어떻게든 구조를 해야지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의 하나 비둘기가 그냥 거기서 죽어 버린다면 그게 더 골치 아플 일이었을 것이다. 훤히 보이는 창가인데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영원히 살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여기까지만 듣고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길가의 비둘기들을 그다지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무심코 만든 구조물에 저렇게 새들이 당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그곳을 찾았더니 비둘기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청소하시는 분께 여쭤보니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무사히 구조되는 해피엔딩이었으리라 기대해 보지만, 직원들에게 직접 물어볼 용기는 내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내가 마주친 두 번째 동물은 고라니이다.

 

아침마다 수영을 마치면 걸어오는 길이었다. 옆으로 8차선 도로에 차들이 쌩쌩 과속을 하는 곳이지만, 인도는 온갖 나무들로 아주 예쁜 길이다. 옆으로 나지막한 산이 있고 근처 대학에서 야외학습장으로 꾸며놔서 강아지가 건강할 때는 자주 산책을 다녔던 곳이기도 하다. 근처 중학교, 고등학교로 등교하는 학생들의 통학로이기도 하고 말이다. 

 

여하튼 그날 아침도 수영을 마치고 씩씩하게 걸어 내려오는데 갑자기 무슨 동물이 풀쩍 뛰어내려오는 게 보였다. ‘저게 혹시나 그 말로만 듣고 TV로만 봤던 아기 사슴 담비인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갑자기 한 마리가 더 내려왔다. 고라니 두 마리였다. 둘 다 걸음도 가볍고 껑충껑충 얼마나 발랄하게 걷는지 내가 지금 저들을 맞닥뜨리는 게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인 양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급히 앞 뒤를 돌아봤지만 그날따라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나 혼자 유일한 목격자가 된 것이다. 얼른 핸드폰을 꺼내 사진부터 찍는데, 그중 어린 한 마리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새어 나왔다. 자동차들이 끼익 서고 멈추고 엉키고 난리도 아니었다. 차 여러 대가 비상등을 켜더니 뒤로 정체가 한창 이어지기까지 했다. 다행히 철없는 어린 고라니는 유유히 어른 고라니에게 돌아갔다. 얘들은 자기들이 만든 이 혼란은 아랑곳없이 다시 폴짝폴짝 뛰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도 모르게 ‘으악’ 소리가 다시 나왔다. 아무리 순해 보이는 얼굴이라 해도 키가 엄청 큰 고라니 두 마리가 내 쪽으로 다가오니 뒷걸음질 쳐질 수밖에 없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두 마리도 놀랐는지 바로 뒤돌아 깡총대며 산 위로 올라가 버렸다. 그 짧은 5분여의 시간, 등줄기로 땀이 주르륵 흘렀다. 이 서울 한복판에서 저렇게 야생동물을 마주칠 수 있는 거구나.  저러다 멧돼지나 얼룩말도 조만간 맞닥뜨리는 거 아닌가 싶었다.

집에 돌아와 동네 맘카페에 사진을 올렸고, 엄마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아이와 함께 산책 자주 간다는 엄마, 고등학생 아이의 등굣길이라는 사람, 8차선 도로 건너편 우면산에서 넘어온 애들일 거라는 사람 등 각자 사연이 분분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고라니라니, 어쩌면 그만큼 도심의 산과 나무가 잘 자라준다는 의미일까? 


 어쨌든 다음부터는 제발 내 눈에는 안 띄었으면 좋겠다. 착하고 순한 걸 떠나서 나는 고양이도 무서워하는 겁쟁이 쫄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번 주 나만의 동물의 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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