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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젤리 Nov 13. 2024

아픈 손가락

 봉사 활동으로 아이들을 만나 영어를 가르친 지 어느덧 5년이 되었다.

 그동안 만났던 친구들 하나하나 특별하지 않은 아이가 없었지만, 한 아이만은 아픈 손가락으로 기억된다.




 다둥이 가족의 제일 큰 아이로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랐던 그 아이는 ‘한 주 동안 어떻게 지냈니?’라는 나의 질문에 항상 동생들의 안부부터 전했다. 자기가 영어를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도 ‘동생들에게 하나라도 가르쳐줄 수 있는 언니이고 싶어서’라고 했다. 가끔 동생들과 같이 와 옆에 앉혀 놓고 공부하기도 했고, 간식을 사주면 집에 가서 먹겠다고 챙겨가기도 했다.


 외동이 딸만 있는 엄마로서 나는 그 아이가 참 대단하다 싶었다. 초등학생 어린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속이 깊을 수 있을까? 감탄이 먼저 나왔다. 또래보다 키도 크고 어른스러웠던 이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듯 보였고, 남자친구에게 고백까지 받았다고 수줍게 이야기하는 귀여운 소녀이기도 했다.


 그러던 아이가 차츰 수업에 진심을 다하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학교 운동부에 들어간 후 체력적으로 힘들어서인지 매일 지쳐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말 수가 적어지고 생각이 많아지는 걸 보니 이 아이도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었구나 싶었다. 급기야 지각이 늘더니, 이유없이 수업을 취소하는 일도 생겼다. 결국 무단결석이 2번 있던 날, 아이의 어머니는 자신도 속수무책이라고 힘들어하시며 공부를 잠시 쉬어 가겠다고 말씀하셨다. 착하고 책임감 강한 아이였는데, 어쩌면 공부에도 운동에도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 보니 그만큼 내면의 스트레스가 컸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으로서 내가 이 아이를 아픈 손가락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 다음이다.


 아이의 영어 공부와 진도보다 내면의 고민을 좀 더 세심히 살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봉사 활동이 교과 성적에만 신경 쓰는 ‘선생님’ 역할이라기보다 아이들의 정서까지 돌봐 주는 ‘멘토’였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성적에만 욕심을 냈었나 보다.  아이 어머니께 그 친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잠시 기다리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어떻게든 공부의 적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기한을 정했던 것도 좀 성급했던 것 같다.

 결국 그렇게 두 달이 지나도록 연락은 없었고, 어머니와 긴 문자를 주고받은 끝에 공부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나에게 모든 아이들은 예쁘고 소중한 내 열 손가락 같은 존재들이다. 그리고 중간에 수업을 그만둔 그 아이는 그중 정말 아주 아프게 떼어낸 손가락이기도 하다. 그 친구를 통해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아이들의 조급한 마음을 엿보았고, 덕분에 비슷한 시기를 거치고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내 눈과 귀를 더 여는 인내심도 배웠다.


 비록 나와 같이 하지는 못하더라도, 내년엔 그 친구가 건강하고 활발하게 돌아와 주었으면 싶다.  그 아이의 자신감을 활활 불타오르게 할 다른 선생님들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모두의 마음을 모아 아이들의 바른 성장을 지켜봐 주는 것, 그게 우리 선생님들의 마음이다.


* 서리풀샘 수기 공모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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