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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Oct 14. 2023

뉴욕의 보석 같은 곳

노이에 갤러리


남자친구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다 가도 된다고 말했지만 일주일 내내 미술관만 가자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코스가 뉴욕을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답게 모마,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 세 곳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뉴뮤지엄, 디아비컨, PS1을 몰라서 여행 스케줄에 넣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일주일만 더 뉴욕이 허락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도저히 마음을 거둘 수 없는 곳이 하나 있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이 있는 곳, 노이에 갤러리. 심지어 리노베이션을 하기 위해 2023년 여름시즌 세 달간 문을 닫았다가 9월 1일에 재개관을 했다고 한다. 바로 우리가 뉴욕에 도착하는 그날이다. 이 정도면 운명 아닌가? 심지어 재개관 기념으로 한 달간 입장료가 $25에서 $10로 할인된다고?


재개관전은 AUSTRIAN MASTERWORKS FROM THE NEUE GALERIE라는 특별전으로 1890-1940 시기의 미술을 선보였다.


19세기말 유럽의 중심지는 오스트리아, 그중에서도 수도인 빈이었다. 정신분석학 분야의 프로이트, 음악 분야의 쇤베르크, 미술 분야의 클림트가 그 전성기를 이끈다. 하지만 그 전성기가 나치 점령에 의해 오래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보고 알았다. 영화의 제목이자 한동안 <Woman in Gold>라 불렸던 이 작품의 그녀는 도대체 누구일까?



한 오스트리아의 재력가는 당대 최고의 화가 클림트에게 아내의 초상화를 주문했다. 금과 은장식이 당시의 화려한 빈의 모습과 그들의 부를 과시라도 하는 듯하다. 이 작품의 원제는 <아델 블로우 바우허의 초상>으로 이곳 노이에 갤러리의 대표작이다. 아델이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져서일까, 그녀가 클림트의 연인이었다는 설도 있으나 진실은 알 수 없다.


<Woman in Gold> vs <아델 블로우 바우허의 초상>


여러 점의 클림트 작품과 스트라디바리의 첼로, 홀바인의 그림, 크리스털이 박힌 와인잔, 그리고 초상화 속 아델 바우허의 목에 걸려있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진귀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은 20세기 초 모두 그녀의 집에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쳐들어온 나치는 그 가치를 알아보고 모든 것을 몰수해 갔다.


전쟁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 벨데비어 미술관으로 넘어온 이 작품에, 그러니까 몰수한 작품에 차마 ‘아델 블로우 바우허’라는 원 주인의 이름을 붙일 수 없기에 <Woman in Gold>라는 모호한 제목이 붙게 된다. 그리고는 곧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대표작이 되었다.


나치 시기 목숨을 부지해 캘리포니아에 정착,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던 아델의 조카 마리아는 초상화 속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물려받았던 장본인이다. 그녀는 2004년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예술품 환수 소송을 제기하였고, 아델의 집에 걸려있던 클림트 작품 5점을 돌려받았다.


그렇다면 이 그림이 어떻게 뉴욕에 오게 된 것일까?


대중에게 공개해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 달라는 마리아의 조건을 받아들인 로널드 로더는 무려 1300억을 주고 이 그림을 구입한다. 그렇다. 노이에 갤러리는 에스티 로더 창업자의 아들로 현재 에스티로더 사의 회장인 로널드 로더가 전시기획자 서지 사바스키와 함께 설립한 19~20세기 독일, 오스트리아 미술 전문 갤러리이다.


요즘 많은 미술관이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사진을 찍는 것에 너그러운 것에 반해 노이에 갤러리는 그렇지 않았다. 사진에 대해 굉장히 엄격했고, 특히나 <아델 블로우 바우허의 초상>만 전담으로 지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20년 전에 1300억을 주고 구입했다고 하니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클림트와 실레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것 역시 영화에서였다. 당시의 나는 한창 존 말코비치라는 배우에 푹 빠져 그가 나오는 영화를 섭렵하고 있었고, 클림트의 예술이 아니라 존 말코비치가 좋아서 <클림트>라는 영화를 봤다. 그래서 내게 클림트는 배우 존 말코비치처럼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퇴폐적인 느낌으로 말하는 예술가이다.  



에곤 실레는 클림트를 통해 알게 되었고, 역시나 영화 <에곤 실레>를 통해 배웠다. 오스트리아 배우 노아 자베드라가 에곤실레를 연기했는데, 결핍이 가득할 것만 같은 존 말코비치와는 다르게 대리석 조각상처럼 완벽한 외모 덕에, 에곤실레라는 미술가를, 나아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다. 실레는 28살에 요절하였기에 예술가로 작업한 시기는 10여 년 밖에 안 되지만 천여 점의 회화와 2천여 점의 데생을 남겼다. 그중에서 자화상이 100여 점이다. 그의 작품은 생전에 퇴폐 미술로 낙인찍혔지만, 후대에는 근본적인 인간의 실존, 그러니까 삶과 죽음의 문제에 접근한 작가로 평가받게 된다.


에곤쉴레가 진짜로 이렇게 생겼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배우

그 밖에도 이곳에는 오스카 코코슈카, 파울 클레, 바실리 칸딘스키, 에른스트 키르히너의 수준 높은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기는 하나, 내가 방문했던 리노베이션 직후에는 안타깝게도 전관이 공개되지는 않았다.  


19세기 유럽에 온 것 같은 기분. 카페 사바스키

기대보다 짧았던 관람이었지만 카페 사바스키 덕에 아쉽지 않았다. 설립자 사바스키의 이름을 따 화려했던 전성기의 20세기 풍 실내장식으로 꾸며놓은, 갤러리 1층에 위치한 카페이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에, 마치 유럽의 귀족이라도 된 듯한, 혹은 그 시대의 예술가나 컬렉터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노이에 갤러리의 작품들은 블룸버그사에서 제공한 Connects라는 앱에서 무료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노이에 갤러리뿐 아니라 MoMa, The Met, Guggenheim 등등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 재단은 전 세계 250여 개의 뮤지엄, 갤러리 등 예술과 관련된 모든 곳의 수준 높은 해설을 무료로 제공한다. 카페 사바스키에 앉아서 블룸버그 재단의 예술에 대한 후원,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향유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도 저런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디오가이드 시절은 이제 끝난 듯. 각자의 에어팟으로 가이드를 듣는 관람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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