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가자아아~~~”
콩콩콩콩 총총총총
귀가 안 들리는 슈렉이는 ‘가자’라는 말을 어떻게 알아듣는 것일까? 파란불로 바뀌는 신호등을 보는 것인지, 미세하게 당겨지는 목줄의 감각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옆 사람들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것인지......
횡단보도를 건너는 슈렉이를 보는 것, 내가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 1년 전부터 그랬다.
작년 봄 몸에 이상이 생긴 후, 슈렉이는 걷는 것을 힘들어했다. 자기 딴에는 애를 써서 한걸음을 떼는 것이었으나 평소의 걸음걸이를 0.2배속으로 늘린 것처럼 보였다. 10분을 넘게 걸어도 아파트 현관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였다.
“슈렉아 쉬야 딱 한 번만 하자. 응? 제발.”
그나마도 간식으로 어르고 달래야 몇 걸음 떼는 수준이었다. 간식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강아지가 먹는 것을 포기하고, 산책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강아지가 집에 들어가고 싶어 할 정도였으니……
아파트 단지 밖에는 왕복 8차선의 횡단보도가 있다. 그때의 슈렉이는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파란불이 꺼지기 전에 횡단보도의 절반을 채 못 걸어갔다. 나는 슈렉이와 신호등을 번갈아 확인하다가, 파란불이 깜빡이기 시작하면 슈렉이를 번쩍 안아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곤 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슬펐다. 슈렉이의 발걸음은 추운겨울에 내리는 눈 같았다.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리는 눈. 금방이라도 슈렉이가 녹아서 사라질까봐 두려웠다.
아픈 슈렉이를 보면서야 횡단보도가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호가 불필요하게 길다고만 생각하던 나에게는 충격이자 깨달음이었다.
하루는 슈렉이가 컨디션이 좋은지 아파트 단지 밖까지 산책을 나가겠다고 했다. 줄기세포 주사와 전기침 치료를 병행하고 극적으로 상태가 호전되었을 때이다. 8차선 횡단보도를 다 건너왔는데도 아직 파란불이었다.
“잘했어, 우리 슈렉이 너무 기특해. 정말 장해. 우리 슈렉이 건강하죠오오?”
감격에 찬 하이톤의 목소리로 허공에 대고 칭찬하고 있는 여자. 지나가는 사람이 보기에는 딱 미친 여자 같겠지만 기쁜 걸 어떡해.
그날 이후 슈렉이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느 날은 가뿐히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하고, 어느 날은 파란불이 깜빡일 때쯤 건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빨간불이 될 때까지 시간을 다 써야만 횡단보도를 겨우 건널 수 있기도 했다. 그걸로 슈렉이의 컨디션을 가름했다.
보통 줄기세포 주사를 맞고 온 당일은 극심한 스트레스로(강아지가 병원 가는 것을 무서워하거든요.) 컨디션이 좋지 않다. 내가 매일 산책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대략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치료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 같다. 기온이 높은 대낮보다는 선선한 저녁이 컨디션이 좋고, 밥을 먹기 전보다는 밥을 먹고 나올 때 힘이 좋다.
컨디션이 정말 좋은 날은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기도 한다. 13살 노견이 깡총깡총 뛰는 것을 보는 날은 네 잎클로버라도 찾은 기분이다. 토끼가 된 강아지가 너무 예뻐서 횡단보도를 다 건널 때까지 강아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경이로운 눈빛을 아낌없이 보낸다. 매번 “아 이걸 영상으로 남겨놨어야 하는데.”라고 아쉬워하면서.
이럴 때 슈렉이는 빗방울 같다. 바닥에 떨어지면 통통 튀어오르는 빗방울. 기왕이면 슈렉이가 강한 장대비가 되면 좋겠다. 바닥에 닿자마자 아주 높이 튀어오르도록.
P.S. 슈렉이에게 디스크가 발병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걱정할 상황은 넘겼지만 여전히 2~3달에 한 번씩 줄기세포 주사를 맞으며 건강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이면 13번째 주사를 맞으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