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반려견순찰대 합격후기
“슈렉이 너무 대견하다. 경찰견이 되다니!”
“경찰견 아니고 반려견 순찰대야.”
“경찰이 순찰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순찰하는 개가 경찰견이지.”
“경찰견은 마약탐지, 실종자 수색 그런 것 아닌가......”
“우리끼린데 아무렴 어때, 그냥 경찰견 해.”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 반려견 순찰대
슈렉이가 반려견 순찰대 3기 서초구 대원이 되었다. 서울시 반려견 순찰대는 2022년 1기 64팀을 선발을 시작으로 2024년 3기까지 선발하여, 현재 활동하는 강아지 대원이 무려 1424팀이라고 한다. 기존 대원이 957팀, 이번 신규 선발된 팀이 467팀이다.
“그거 신청만 하면 다 되는 거 아니었어?”
“아니야~ 시험 봐야 해. 시험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도 마. 포기할 뻔했는데 기적적으로 합격했잖아.”
반려견 순찰대 모집 포스터가 아파트 단지에 붙자마자 선발시험 신청을 했다. 약 3주에 걸쳐 주말마다 보라매공원, 북서울꿈의 숲, 강동리본센터 중 선택해서 시험을 볼 수 있다. 나도 신청만 하면 되겠지란 생각으로 덜컥 신청을 먼저 한 후 홈페이지를 찬찬히 둘러보니 심사코스와 채점표가 공개되어 있다.
심사는 총 7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는 ‘대기 중 심사’로 다른 강아지를 보고도 흥분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단다. ‘대인반응’, ‘대견 반응’, ‘기다려’도 마찬가지이다. 차분하게, 편하게, 가만히 있기.
강아지에게 가만히는 가장 어려운 것 아닌가?
우리 슈렉이로 말할 것 같으면 산책을 할 때마다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남자만 보면, 특히 경비아저씨, 택바아저씨, 혹은 시꺼먼 옷을 입은 남자만 보면 귀가 얼얼해지도록 짖는다. 강아지에게는 대체로 친절한 편이나, 본인이 인사하고 싶은 강아지가 쌩 지나가버리면 화가 나서 “너 왜 나랑 인사 안 해?” 라며 꼭 따지고 드는 자아가 몹시 강한 강아지이다.
그래서 시험 전 날 집에서 ‘기다려’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동결건조 열빙어 한 마리를 들고 ‘앉아’ 하니 앉는다. ‘기다려’라 하고 두 발짝 뒷걸음을 치자 바로 열빙어를 따라온다. “아니야, 아니야. 기다려야지.” 하며 다시 앉혀놓고 멀어지면 따라오고, 또다시 앉혀놓고 멀어지면 따라오고를 몇 차례 반복하자 슈렉이가 폭발했다. 퍼피 때 받았어야 하는 교육을 13살이 되어 하자고 하니, 슈렉이로서는 황당한 것이다.
“엄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간식 준다면서 왜 안 주는 거예요?”
슈렉이가 화를 내면 한없이 약해지는 나는 바로 열빙어를 내어준다. 슈렉이가 개인기가 없는 것은 다 내 탓이다. 그렇게 ‘기다려’ 코스는 포기.
한 코스라도 합격해 보고자, 그러니까 ‘이리 와’ 코스라도 잘해보고자 간식을 챙겼다. 간식으로 유인을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정 안되면 손바닥 안에 간식을 숨겨놓고 반칙이라도 쓸 생각으로 말이다. 간식에는 반응하니까.
드디어 심사 당일, 13살 생일 기념으로 새로 뽑은 개모차에 물병, 간식, 견글라스 등 이것저것을 싣고 올림픽공원 주차장에 내렸다. 하필이면 날이 너무 더워 스팸 혓바닥이 쭉 나와 헐떡인다. 2시 심사조였지만 30분 일찍 도착해서 등록을 하자 바로 심사를 시작해 주셨다. 대인반응을 보기 위해 대기 장소에서 심사위원이 철제 파일철을 떨어뜨리고 발을 쿵쿵 구르는데 슈렉이가 놀라지도 않고 꼼짝도 안 한다. 대견 반응을 보기 위해 크고 검은 레브라도가 옆에서 얼쩡거리는데 슈렉이가 본척만척한다. 심사위원이 손을 내어주자 열심히 냄새를 맡더니 얌전히 있다.
“슈렉이 무조건 합격이야. 이렇게 잘하는데 너는 왜 슈렉이 못한다고 걱정하는 거야?”
동행한 남자친구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음,, 실은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은 비밀이 있어......
13살 노견 슈렉이는 청력의 노화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집에 사람이 와도, 현관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려도 인기척이 들려도 꿈쩍하지 않는다. 사람이 가까이에 와야 고개를 드는데, 내 생각에는 공기 중에 퍼진 사람 냄새를 맡고 고개를 드는 것 같다. 그러니, 파일철 떨어뜨리는 소리를 듣고 놀랄 일은 없다.
두 번째로, 슈렉이는 자기보다 덩치가 작은 강아지에게는 적극적이나 큰 개는 못 본 척 연기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어려서부터 쭉 그래왔다. 용감, 용맹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생존방식이다. 마침 심사도우미견이 20kg는 넘어 보이는 대형견이었기에 슈렉이는 여느 때처럼 못 본 척 연기를 했다. (그래서 첫 여친 가을이를 부담스러워했다는...... 가을이는 25kg의 골든레트리버입니다.)
셋째로 슈렉이는 여자만 좋아하는 상남자이다. 슈렉이의 심사위원은 여자, 그것도 체구가 작고 여리여리하고 피부도 하얀 여자분이셨으니 슈렉이가 좋아할 수밖에. 피부가 검고 덩치가 큰 남자 심사위원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리드워킹’ 중에 엄마의 엄청난 어필이 있었다.
“우리 슈렉이는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에 4번 산책을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어요. 저희 집은 엄마, 아빠, 제가 조를 짜서 규칙적으로 슈렉이를 산책시키거든요. 그러니까 동네 지킴이로 아주 적합하다고 할 수 있죠.”
부터 시작해서 알고 있는 반려동물 관련 법규들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시험 전날 벼락치기를 한 것을 빠짐없이 말해, 심사위원으로부터 “잘 알고 계시네요.”라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쉬지 않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슈렉이 인스타그램에 시험 영상을 올리며, 슈렉이가 합격을 할 것 같냐, 안 할 것 같냐를 묻고 다들 ‘합격’이라고 말해준 것을 듣고 나서야 안심하고 잠드는, 잠재된 극성 엄마의 면모를 보였다.
합격
자식이 대학에 합격하면 이런 기분일까.
작년 이맘때 디스크 판정을 받고, 거의 하반신 마비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이렇게 죽는 건가 싶던 슈렉이가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건강해져서 반려견 순찰대가 되다니. 그것도 13살 나이에. 이것은 견생역전. 이 정도면 견생극장에 나올 만한 소재 아닌가. 건강해진 것만 해도 대견하고 감사한 일인데, (평소와 다르게) 시험을 잘 봐서 합격까지 하다니 이렇게 기특할 수가!
서울시 반려견 순찰대 활동선포식
서울시 반려견 순찰대 1500여 마리와 1700여 명 반려인이 참석한다고 했다. 어마어마한 숫자 같지만 대한민국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이라 하니, 극히 일부이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비와, 이후 스케줄 때문에 슈렉이는 발대식에 참여하지 못하고 내가 대신 슈렉이의 위촉장과 배지, 조끼 등을 받았다. 슈렉이 덕분에 반려견 순찰대 순찰복도 입었다. 이런 유니폼을 입을 일이 없는 나로서는 슈렉이에게 고마울 뿐.
슈렉이의 전여자 친구 가을이도 순찰대 3기로 선발되어 참석했다. 가을이는 퍼피 때부터 훈련을 잘 받아서 에너지가 넘치는 두 살 아기가 통제가 잘 된다. 그 모습이 늠름하고 진짜 경찰처럼 멋있다.
3년 차를 맞아서일까, 서울시 반려견 순찰대는 신청단계부터 행사진행, 이후 공지까지 착착 잘 진행되었다. ‘반려견 순찰대원 여러분’이라 시작되는 문자가 슈렉이에게 오다니, 정말 귀엽다.
반려견 순찰대 앱을 깐 이후, 슈렉이의 산책은 동네마실이 아니라 순찰이 되었다. 앱에서 산책 기록을 남기고, 바로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 신고사항을 접수할 수 있다. 120 다산콜센터나 112 경찰서로 바로 연락을 할 수 있는 버튼도 있다.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슈렉이도 성실하게 순찰에 임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