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에 4.7cm 종괴가 있습니다.”
“종괴라니요?”
“암이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이건 그저 생일선물이었을 뿐인데......
10살 생일을 맞아 가족들이 큰맘 먹고 종합건강검진을 예약했다. 요즘 강아지들도 종합검진이 트렌드라며 생일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기분 좋은 선물. 강아지에게 종합건강검진을 예약해주면서 좋은 반려인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는 것에 더해, 아무 이상이 없다, 보호자가 관리를 잘 해줘서 그렇다는 칭찬까지 받을 수 있는 그런 선물. 훌륭한 반려인의 자긍심을 고양시켜줄 수 있는 이벤트일 뿐이었다. 암 선고를 받으려고 이렇게 비싼 비용을 지불했던 것이 아니란 말이다!
우리 이모네 집 강아지 밤톨이 이야기이다. 밤톨이와 슈렉이는 명절 때마다 일 년에 두 번 보는 사이인데, 나이도 체격도 비슷한데 여전히 친하지 않다.
슈렉: “너 왜 우리 집에 들어오는거냐멍? 여기 내 집이다멍, 나가라고멍”
밤톨: “왜 나한테 짖냐멍? 너 왜 내 간식 뺏어먹냐멍.”
둘은 집안이 떠나갈 듯이, 쉬지 않고 짖는다. 슈렉이를 달래보려고 이모가 홈메이드 닭똥집이나 디포리라도 꺼내주면, 밤톨이는 왜 자기 간식을 다른 강아지한테 주냐며 난리다. 한 공간에 두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쉬지도 않고 짖는다. 그래서 이 둘은 10년이 넘도록 봐 왔지만 한 번도 함께 놀거나 산책한 적이 없다. 언제나 한 마리는 방, 한 마리는 거실로 분리시켜야 집안이 조용해진다.
외할아버지에 이어 외할머니까지 돌아가신 이후로 명절을 따로 보내며 밤톨이를 못 본지도 꽤 됐다. 못 본 사이에 밤톨이가 10살이 되었고 암까지 걸렸다니. 하긴, 슈렉이는 12살이 되었고, 디스크가 걸렸지. 노견들이 병원에 다니는 것, 특별한 일도 아니지, 참.
병원에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확한 내용은 수술실에 들어가 배를 열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종괴만 절제하고 끝나면 좋겠으나, 최악의 경우 간의 반을 절제해야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몸이 줄어든 간 사이즈에 적응을 하지 못하면 간부전으로 사망을 할 수 있다고. 심지어 이 암은 90%의 확률로 전이 가능성이 있고, 황달, 복막염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밤톨이네 가족들은 감당할 수 없는 부정적인 내용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자 집단 패닉에 빠졌다. 밤톨이의 누나와 형은 번갈아 휴가를 내고 병원비를 마련했다. 몇 군데 병원에서 상담을 받았고, 그 중 가장 신뢰가 가는 곳에서 수술을 결정하고 응급으로 일정을 잡아 수술을 받았다.
밤톨이는 수술 나흘 만에 퇴원을 했고, 지금까지는 예후가 좋다고 한다. 개복을 해보니 전이가 되거나 간을 절제할 필요 없이 간단히 종괴만 제거하면 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동물병원 중환자실에서는 이모가 정성껏 만든 홈메이드 식사를 줘도 먹기를 거부하던 녀석이 집에 오니 허겁지겁 밥을 먹고 더 달라고 이불을 긁는다고 한다. 소변줄, 핏줄, 링거줄까지 주렁주렁 달고 있는 중환자실에서는 나도 먹기 싫었을 것 같다.
강아지 안부를 주고받고 서로의 강아지를 위해 기도해주는 우리 엄마와 이모. 우리 집에는 사람 손주 대신 강아지 손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