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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Jul 19. 2023

기분이 좋을 땐 멍댄스를

무아지경 지렁이 댄스 중이에요


“기분이 좋은지 아까도 저러더니 지금도 저 포즈“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슈렉이가 자기 요에서 몸을 비비는, 전문용어로 ‘지렁이 댄스’를 추고 있는 사진이었다. 아주 어릴 때 이후로 내 앞에서는 잘하지 않는 행동을 우리 엄마, 그러니까 슈렉이 할머니 앞에서는 잘한다. 슈렉이 할머니는 저것이 기분 좋을 때 나오는 행동이라고 말씀하셨다.


6차 줄기세포 시술을 한 날, 휴지기를 끝내고 다시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원장선생님은 그동안 내가 궁금했던 약 처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스테로이드나 강력 소염제 처방은 없고, (물론 그동안도 없었고), 신경계와 근골격계, 관절염 보조제와 위장보호제 그리고 간기능보조제가 처방되었다고 했다. 슈렉이는 노견이라 약을 장기복용하면 신장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휴약을 했던 것인데, 척추관절염 개선 목적으로 처방되었던 약의 복용법이 두 달 먹고 2~4주 휴약 기간을 두고 다시 복용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투약을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슈렉이가 앉았다 일어나는 속도가 빨라졌다. 휴약 이틀 만에 앉았다 서는 속도가 느려졌던 것처럼 빨라지는 것도 딱 이틀이면 됐다. 심지어 기분이 좋아서 자꾸만 지렁이 댄스를 춘다고 하지 않나. 게임 오버. 미션 컴플리트. 피니시. 슈렉이의 행동에 문제가 없어지니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남산공원 산책갈 만큼 건강해요.


문제 해결? 그동안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건가?


집착


휴약을 했던 지난 3주간 나는 매일 슈렉이가 앉아있다 일어나는 영상을 찍어서 그 시간과 속도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매일의 변화 영상을 편집해서 한방병원에 가시는 엄마 편에 보내 의사 선생님께 보여드렸었다. 매주, 매 진료마다 그랬다.  


“슈렉이의 나이를 생각해서 완치의 기준을 조금 낮게 잡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방병원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하셨다. 나의 극성이 부담스러우셨을 것이다. 아니면 집착이 걱정이 되거나.


애초에 한방진료를 시작한 것 자체가 유난이었다는 것, 나도 안다. 줄기세포를 맞으며 바닥났던 에너지도 생기고, 잘 걷고, 잘 먹게 되었다. 디스크와 관절염만 좋아진 것이 아니라 부수적으로 만성적인 포피염과 귀 끝이 딱딱하게 굳던 아토피까지도 깔끔해졌다. 정말이지 줄기세포 치료 신봉자가 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오로지 복용약을 끊자마자 조금씩 안 좋아지는 다리 컨디션, 그거 하나를 견딜 수가 없었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 하반신이 거의 마비될 뻔했던 장면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서였던 걸까. 슈렉이가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한 날부터 정신이 나가 버린 나는 인터넷 검색을 넘어 논문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SCI급 영어논문까지 찾았으니 그 호들갑이 어느 정도였는지......


병원만 다녀오면 너무 힘든 슈렉이

다른 강아지들이 침을 맞고 디스크를 치료했다는 SNS 내용을 보면서 부푼 꿈을 안고 슈렉이를 매주 한방병원에 데려가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내가 데려간 것은 단 하루뿐이었고 나머지는 슈렉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데려가주셨다. 이것 때문에 슈렉이 할아버지 할머니는 평일 오후 일정을 비우셨고, 공포에 떨며 침을 맞은 슈렉이는 탈진했다. 아무리 불러도 눈조차 뜨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우리 가족들은 오로지 나의 불안, 그것 하나 때문에 고통받았다.

 

그건 내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7.14(금) 11시 슈렉이 동물병원 줄기세포 6차

7.23(일) 10시 슈렉이 한방병원 침치료 5차


우리 둘의 톡 대화방 공지사항에는 슈렉이 병원 스케줄이 띄워져 있다. 강아지를 키워보기는커녕 만지는 것도 처음이었던 그는 내가 아픈 슈렉이 때문에 울던 긴긴밤마다 위로했고, 판단력이 흐려진 나를 잡았다. 그즈음 우리는 마치 슈렉이의 엄마 아빠라도 된냥 굴었다.


형아랑 슈렉이랑 커플룩

이제 슈렉이는 한 번에 벌떡 일어날 수 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일어나려고 앞발을 아무리 디뎌도 뒷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네발로 서는데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최대 5분이 걸린 적도 있었는데……


슈렉이가 일어났다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고, 못 일어났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슬아 작가는 신작 <끝내주는 인생>에서 잿빛 고양이 ‘탐이가 어떻게 몸을 쓰는지 관찰하다 보면 결국엔 그의 흔들림 없는 정신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는 매일매일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슈렉이의 영상을 찍으면서야 정직한 노력과 진심을 다하는 태도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마구 흔들리는 동안 슈렉이는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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