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클라베> 속 회화적 공간 시스티나 성당

영화 <콘클라베>

by 씨네진

'영화다운 영화'를 몇 편이나 보았을까? 영화는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등 여러 예술 장르를 통합한 종합 예술이다. 시간과 공간, 이미지와 소리, 움직임과 정적을 아우르며 인간의 감정과 사유를 드러내는 복합적인 표현 형식이다. 누구나 이론으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진정 구현해 내는 감독은 드물고, 그 통합적 예술을 온전히 향유할 줄 아는 관객은 더욱 드물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그런 영화를 만났다. 영화 <콘클라베>는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 속에서 인물들의 움직임마저 연극처럼, 무용처럼 절제되어 있다.



특히 붉은 수단과 백색 제의를 갖춰 입은 추기경들의 옷차림과 걸음걸이는 마치 의례와 권위가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퍼포먼스 같다. 그들의 침묵과 시선, 발걸음 하나하나는 배우에게 주어진 임무를 의미하는 듯 무겁다.





영화의 무대가 되는 시스티나 성당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의 숨 가쁜 질문이 끝없이 울려 퍼지는 성스러운 장소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천장과 제단 벽을 채우며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투사한다. 인간의 죄와 구원, 창조와 파멸의 주제를 압도적으로 밀고 들어온다.



<실제 콘클라베 장면>




독일 출신의 감독 에드워드 버거의 영화《콘클라베》는 교황이 선종한 뒤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을 그린 밀실 드라마다. 바티칸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이 투표에 참여하며, 각자의 신념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는 가운데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은 이상주의자이자 도덕적인 인물인 토마스 로렌스 추기경이다. 그는 교황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 인물이다.


한편, 차기 교황 후보로 떠오르는 알도 벨리니와 고프레도 테데스코는 각각 개혁과 전통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벨리니는 젊고 진보적인 교회를 지향하지만 현실의 장벽에 지치고, 테데스코는 보수의 입장에서 교회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조용한 존재였던 빈센트 베니테즈 추기경이 중심인물로 부상한다. 그의 과거가 돌아가신 교황의 유언과 맞물리며, 교황 선출의 변화 시점을 제공한다.





영화 《콘클라베》 속 회화적 공간과 인간의 선택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시스티나 성당이라는 공간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살아 있는 인물처럼 활용하며, 그 안에 인간의 선택과 신의 침묵을 정교하게 배치한다.



한 인물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길의 끝에는 미켈란젤로의 손끝이 있다. <콘클라베>는 시작부터 끝까지,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관객을 지배한다.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는 영화의 주제를 응축한 핵심 이미지다. 신이 손끝으로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이 장면은,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행위를 은유적으로 되새김질한다. 인간이 신의 권위를 다시 인간에게 위임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인물들이 자주 천장을 올려다보는 장면은 경외를 넘어서, 선택 앞에서 마주한 인간의 한계와 두려움을 고백하는 시선이다.





성당 정면의 〈최후의 심판〉은 무언의 심판자처럼 보인다. 그림 속 예수의 시선은 추기경들을 향해 고정되어 있다. 그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투표 행위는 단순한 정치적 선택을 넘어, 신 앞에 선 인간의 도덕적 심판대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고압적인 심판의 시선 속에서, 영화는 뜻밖의 장면 하나를 배치한다. 바로 ‘우산 장면’이다. 비 내리는 회랑 아래, 로렌스 추기경이 조용히 우산을 씌워주는 그 짧은 순간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부드러운 시선이다. 정치도, 교리도, 심판도 없는 그 작은 우산 속 공간은, 권위가 사라진 인간의 연대적 공간이다. 우산은 단지 비를 막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배려의 손짓이며, 같이 가야 할 방향성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카메라는 그 손끝과 우산의 곡선을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하얀 우산 전체가 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 모습을 위에서 촬영했다. 마치 신이 내려다보듯이. 이 장면은 말없이 감정을 밀도 있게 쌓아 올린다.






《콘클라베》는 이러한 회화적 이미지와 건축적 구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신’을 시각화했다. 신의 부재 속에서 회화적 공간을 통해 침묵이라는 방식으로 가장 강력한 존재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묻는다. 교회의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은 법과 권위인가, 아니면 진실과 인간의 용기인가. 그리고 그 답은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속에서가 아니라, 침묵을 깨고 진실을 선택한 한 인간의 결단에서 명확해진다.




영화 <콘클라베>의 결말은 충격적이다.

교황 후보로 선출된 베니테스 추기경이 인터섹스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리가 예상한 질서의 종착점 대신 균열이 드러나는 자리를 택한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모두 지닌 존재이며, 이는 교황은 남성이어야 한다는 가톨릭 전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교황이 지명한 인물은 베니테즈 추기경. 그러나 그는 사생아로, 교회법상 교황직에 오를 수 없는 존재다. 신의 뜻으로 여겨지는 유언과, 인간이 만든 법 사이의 균열. 이 틈에서 로렌스는 깊이 있는 침묵을 택한다. 베니테즈 추기경은 '이노첸시우스'란 이름으로 새 교황으로 탄생한다.




영화 콘클라베는 가톨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신의 뜻’과 ‘인간의 판단’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깊은 질문을 던진다.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한 편의 철학적 숙제를 남긴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창문이 열리고, 세 명의 수녀가 웃으며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로렌스 추기경이 내려다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결말이 아니라, 우리에게 사유의 상자를 조용히 건네는 위대한 마무리다.


#영화속그림이야기5

#천지창조#최후의심판#영화와그림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