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의 섬세한 터치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마치 명화를 감상하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드라마틱한 서사보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빛과 구도, 색채의 조화다. 주홍, 파랑, 녹색, 흰색으로 구성된 색감은 정서의 뉘앙스를 고조시키며, 비발디 <사계> ‘여름’ 3악장의 격정적 선율은 두 여인의 감정을 푸가처럼 따라 흐른다. 오르페우스 신화를 전복하는 문학적 상상력은 영화에 철학적 깊이를 더한다.
감독 셀린 시아마는 프랑스 불문학을 전공하고 국립영화학교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했으며, 이 영화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정치적이지 않은 영화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영화”라고 말하며, 여성의 삶과 시선을 드러내는 작업이 곧 정치적 행위임을 강조한다. 실제로 그녀는 역사 속 여성 화가의 동성애적 사랑을 통해 여성의 연대와 기억을 재구성한다.
19C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는 결혼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모델은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이다. 화가 마리안느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바다를 건너 고립된 섬에 있는 저택을 방문한다. 엘로이즈는 모르는 남자에게 초상화를 보내 결혼 허가를 받는 그 자체가 싫어 초상화 모델을 원하지 않는다. 엘로이즈 모르게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마리안느는 비밀스럽게 그녀를 관찰하며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진다.
엘로이즈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미래의 남편 위해 초상화의 모델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초상화를 필요로 하는 것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를 반드시 그려야만 하는 화가 마리안느는,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기억으로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다. 그러나 그녀는 첫 번째 초상화의 얼굴을 스스로 뭉개버린다. 왜 그랬을까?
두 번째는 엘로이즈에게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그녀와 사랑의 교감을 나누며 그린 작품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예술성과 연관 짓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 초상화는 겉만 보고 남성이 원하는 시선으로 그렸기 때문에 마리안느는 그 그림을 파기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내면까지 그린 그림으로, 진실을 보여 준 그림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일방적인 남성적 시선과 평등하게 교감하면서 그린 그림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림 자체가 가지는 생명력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두 사람의 관계와 동시에 예술세계에서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감독은 영화 속 그림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다가 유화에 대한 전통적인 교육과 19세기 기법을 잘 알고 있는 프랑스 출신 화가 헬렌 델 마르를 찾아냈다. 역사적 사실과 고증하면서 30대 이전의 화가 헬렌 델 마르를 만났다. 그림의 작업 과정을 편집이나 합성이 아닌 화가의 몸짓을 그대로 담았다. 영화에서 헬렌 델 미르의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의도와 화풍이 담긴 그림들이 나온다. 감독은 영화의 메인 소재인 그림을 표현하기 위해 화가 자체를 영화에 담는 데 집중했다.
델 미르의 회화, 특히 Eyeless 시리즈는 인물의 눈을 지움으로써 감정을 판독하는 기존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의 눈을 마주하지 않은 채 그렸던 첫 초상화와 닮아 있다. 델 미르의 실험은 단순한 형식적 특이함이 아니라, 여성 주체가 어떻게 ‘보여져야’ 하는가에 대한 정치적 질문이다.
또 다른 연작 Les Mangeurs de Lotus에서 그녀는 꽃을 토하는 여성의 형상을 통해 감정과 기억의 신체적 발화를 보여준다. 영화 속 하녀 소피의 낙태 장면과 그것을 그림으로 기록하자는 엘로이즈의 제안은, 고통을 여성의 시선으로 기억하고 예술로 승화하는 과정과 겹쳐진다. “우리가 이걸 봤다”는 말은 단순한 목격을 넘어선 증언이다.
델 미르의 인물들은 고요하지만 강렬하다. 해체된 얼굴은 정체성을 고정된 틀에서 해방시키고, 여성의 존재를 낯선 방식으로 재현한다. 이는 엘로이즈가 처음에는 ‘보여지는’ 존재를 거부하다, 마리안느와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응시하는 주체로 태어나는 과정과 맞닿는다. 그녀는 더 이상 남성의 승인 아래 존재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인물로 거듭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델 미르의 회화는 서로 다른 형식 속에서 여성의 시선과 몸, 정체성, 기억을 탐구하는 거울과 같다. 화면 위의 붓질과 스크린 속 장면은 서로를 비추며 조용히 말한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고, 기억한다.
영화 속 회화는 단순한 시각적 장치를 넘어 감정과 관계, 기억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다. 말로 다 전하지 못한 사랑을 기록하고,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경계를 허무는 도구로 작용한다. 초상화는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의 여성을 탄생시키며, 예술을 통해 자유와 정체성을 회복시킨다.
회화는 또한 기억의 저장소 역할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마리안느는 전시장 한구석에서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본다. 그녀의 손은 책을 펼치고 있고, 그 속엔 마리안느와 공유했던 기억의 28번 페이지가 숨어 있다. 이 장면은 회화가 어떻게 사랑과 기억을 봉인하고, 그 기억이 어떻게 시간을 넘어 살아 숨 쉬는지를 보여준다. 델 미르의 회화 역시 개인의 기억을 감각적 이미지로 변환시키며, 예술이 어떻게 존재의 증언이 되는지를 증명한다.
이처럼 영화 속 회화는 단순히 시각적 요소가 아닌, 사랑과 자유, 주체성, 기억을 품은 서사의 또 다른 얼굴이다. 회화는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그리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결국 이 영화에서 회화란, 침묵 속에서도 말하고, 사라진 감정조차 끝내 붙잡아주는 강력한 예술적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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