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남자(A Man, ある男, 2022)>의 감독 이시카와 케이는 시작과 마지막 장면에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La Reproduction Interdite)》을 스크린 위에 펼쳐 보인다. 영화와 그림은 모두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한 남자》의 주인공은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진짜 자아와 허위의 정체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의 삶은, 거울을 마주하고도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마그리트의 남자와 겹쳐진다. 《금지된 재현》(1937)은 마그리트의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회화로, 인간 실존에 대한 상징적 사유로 가득하다.
도쿄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키도 아카이는 어느 날, 규슈에서 문방구를 운영하며 아들과 조용히 살아가는 여성 리에의 상담을 받는다. 그녀는 다이스케라는 남자와 재혼해 평온한 가정을 꾸렸지만, 남편은 산에서 일하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장례식에 나타난 그의 형은 “그는 우리 동생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리에는 충격에 빠져 남편의 정체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하고, 키도는 다이스케가 타인의 신분을 도용해 살아온 인물임을 밝혀낸다.
리에가 사랑했던 남자는 끔찍한 과거를 지닌 채 두 번이나 삶의 궤도를 바꾸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녀는 묻는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영화는 이름과 이력, 기억을 넘어,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됨에 대해 묻는다. 그의 이름은 허위였지만, 리에와 아이에게 건넨 애정이 진심이었다면, 그의 존재는 허상에 불과했던 것일까?
이 질문은 마그리트의 그림과도 맞닿아 있다. 《금지된 재현》 속 남자는 거울 앞에 서 있지만, 거울은 그의 뒷모습만을 비춘다. 우리는 그의 얼굴, 곧 자아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 반면, 거울 앞 테이블 위에 놓인 에드거 앨런 포의 책은 정확히 반사된다. 마그리트는 이처럼 비대칭적인 반영을 통해, 자아 인식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특히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모레일라(Morella)》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한 남자가 아내와 딸을 동일시하며 정체성의 경계를 잃고 혼란에 빠지는 이야기다. 타인 혹은 자신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모호하고 불완전한지를 드러낸다. 그림과 소설은 서로 등을 맞댄 채, 인간 내면의 불확실성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제 거울은 더 이상 진실을 비추는 매개체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처럼, 자아처럼, 사회적 이미지처럼 왜곡된 반영의 장치다. 우리가 인식하는 ‘나’는 언제나 실제와 어긋나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이상이거나, 타인의 시선 속에 조형된 허상일지도 모른다.
리에의 남편도 그러하다. 그는 다이스케가 아니었다. 그러나 리에가 체험한 사랑과 평범한 일상은 거짓이 아니었다. 리에는 말한다. “그가 누구였든 간에, 나에게는 그와 함께한 시간이 진짜였어요.” 그녀는 아들에게도 말한다. “그 사람은 너를 좋아했어.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이름이나 신분보다, 함께 살아낸 시간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키도 변호사 역시 그 물음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우리는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살아가는가, 아니면 진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진실을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물음은 다시 마그리트의 그림으로 되돌아간다. 《금지된 재현》은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인식론적 의문을 던진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지만, 거울은 단지 외형을 반사할 뿐, 내면의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나란 존재는 이름과 경력으로 구성되는가, 아니면 기억과 감정, 타인과의 연결 속에서 구성되는가? 마그리트는 “이미지는 배신한다”고 말한다. 그의 또 다른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처럼, 우리가 믿고 있는 것조차 진실의 가장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한 남자>는 이 질문을 영화라는 장르 위에서 확장한다.
마그리트의 거울 속 남자와 리에의 남편은 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속삭인다. “내가 보고 있는 나는 진짜일까?”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림은 질문을 던지고, 영화는 그 질문에 조심스럽게 응답한다.
《한 남자》에서 남편의 정체가 드러난 후, 리에는 결국 한 문장으로 모든 고민을 정리한다. “그가 누구였든 간에, 나에게는 그와 함께한 시간이 현실이었다.” 그는 살인자의 아들이었고,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살아야 했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려 애쓴 인간이었다.
이처럼 영화와 그림은 서로를 비추며 관객에게 사유의 여지를 남긴다. 우리는 이 두 작품 앞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듯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믿어온 나라는 존재는 진실한가?” 그리고 깨닫는다. 예술의 힘은 답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질문할 수 있도록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데 있다.
우리는 이 영화와 그림 앞에서 단순히 ‘보는 존재’로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묻는 존재’, 그리고 ‘생각하는 존재’로 초대받는다. 우리는 르네 마그리트와 이시카와 케이로 부터 깊은 사유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