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다시 풍경이 되는 곳

— 옹플뢰르

by 씨네진

그림같은 항구


노르망디의 해풍이 창틈으로 스며들 때, 우리는 옹플뢰르 항구에 닿았음을 알았다. 구름 낀 하늘 아래 배들은 물 위에 잔잔히 떠 있었고, 뱃머리는 시간이 멈춘 듯 요람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돛대는 가느다란 선으로 하늘을 긋고, 물결은 미세한 흔들림으로 시간을 밀어냈다. 고딕과 목조 구조가 어우러진 건물들이 항구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이곳은 풍경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다시 풍경이 되는 곳이었다.

항구를 따라 선 건물들은 파스텔 빛 외벽과 슬레이트 지붕을 얹고 있었다. 한쪽은 오래된 동화 속 어촌 마을 같고, 다른 한쪽은 요트가 가득한 여름 휴양지 같다. 이미 이곳은 구스타브 쿠르베, 외젠 부댕, 클로드 모네,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 같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마을이 아니었던가.


첫 감동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겨울 항구의 바람과 허기가 등을 떠밀었다. 우리는 항구 앞 크레페리 겸 레스토랑 ‘라 비스퀸’으로 들어갔다. 두꺼운 석벽과 낮은 조명, 짙은 나무 가구 사이로 옅은 햇살이 번졌다. 실내는 아늑했다. 우리는 메뉴를 공부하듯이 읽고 음식을 주문했다.


노릇하게 튀긴 프렌치프라이는 수북하게 언덕처럼 쌓였다. 곁에는 갈색으로 구운 고기와 캐러멜라이즈드 양파가 놓였다. 양파에서는 달콤한 향이 올라왔다. 다른 접시에는 작은 감자와 잘 익은 버섯이 담겼고, 그 위로 크림소스가 은은히 흘렀다. 구운 버섯은 탄력이 있었고, 따뜻하게 익힌 감자는 담백했다. 파슬리와 방울토마토가 접시에 색을 더했다. 크림을 얹은 닭 가슴살도 함께 놓였다. 결 사이로 스며든 소스가 혀끝에 오래 머물렀다.

골목 갤러리, 또 하나의 화폭


식사 후 다시 항구를 따라 걷다가 마을 안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요트들의 돛대는 음표처럼 솟아 있고, 반원형 항구를 감싸는 길과 골목의 곡선은 수직의 날카로움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옹플뢰르의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유리창 하나가 하나의 화폭처럼 다가온다. 작은 골목의 갤러리 앞에서 우리는 자주 걸음을 멈췄다. 번쩍이는 간판도, 요란한 안내문도 없이 투명한 창 너머에서 그림과 조각들이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쇼윈도에는 테라스에 앉은 인물들, 햇살이 내려앉은 거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가 담긴 그림이 보였다. 그 옆에는 해 질 녘 노을빛 바다와 항구 도시의 실루엣이 따뜻한 톤으로 펼쳐져 있었다. 캔버스 위의 색들은 옹플뢰르의 실제 하늘보다도 더 부드럽고 차분하게 시간을 붙들고 있었다. 거리 곳곳이 캔버스였고, 골목 자체가 열린 갤러리였다. 어떤 골목에서는 벽에 그림을 걸어 둔 길거리 전시를 만나기도 했다.

하늘을 남긴 화가


마을 안으로 더 들어서자 유럽에서 가장 큰 목조 교회로 알려진 〈생 카트린 교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로 된 첨탑과 시계탑, 검게 그을린 서까래는 이 도시가 간직해 온 시간의 결을 고스란히 전한다. 교회에서 몇 분을 더 걷자 〈외젠 부댕 미술관〉이 나타났다.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다. 일정에 넣지 못했던 곳이었지만, 우리는 결국 그 문을 열었다.


항구에서 몇 걸음 떨어진 작은 건물,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전시실 안에는 노르망디의 하늘이 가득 걸려 있었다. 화려하지 않은 외관과 달리, 내부는 단정하고 절제된 공간이 이어졌다. 창으로 스며드는 빛이 작품 위에 얹히는 순간, 마치 부댕이 지금도 이곳에서 하늘을 그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이곳에 와서야 그는 왜 ‘하늘의 화가’라 불렸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1824년 옹플뢰르에서 태어난 그는 바다와 하늘을 쉼 없이 화폭에 담아 온 화가였다. 인상주의라는 이름이 붙기 전부터 야외로 나가 구름과 공기를 관찰하며 그 변화하는 빛을 기록했다. 그의 그림에서 하늘은 배경이 아니라 화면을 이끄는 주인공이었다. 회색과 분홍빛이 교차하는 공기, 바람에 흩어지는 구름의 결은 늘 살아 움직였다.



화면 캡처 2026-02-04 231050.png


그의 대표작 〈해변의 귀부인들〉은 우리가 오르세 미술관에서 이미 본 작품이다. 그때는 화면 위를 크게 차지한 하늘이 인상적이라는 정도로만 느꼈다. 그러나 노르망디의 해변 가까이에서 다시 떠올려 보니, 그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하늘이라는 사실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노르망디 해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19세기 여인들. 단정한 드레스와 파라솔, 침착한 자세는 한 시대의 휴양 풍경을 보여 준다. 그러나 시선을 위로 들면 인물보다 훨씬 넓은 하늘이 화면을 지배한다. 회색과 연분홍빛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며 분위기를 이끈다. 파라솔과 드레스 자락은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사람들은 그 아래 잠시 머무는 존재처럼 보인다.


미술관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몇 개의 방을 서둘러 돌아보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문을 나서자마자 방금 보았던 그림 속 항구가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잠시 헷갈렸다. 내가 보고 나온 것이 화폭이었는지, 지금 마주한 이 풍경이 그림인지.


옹플뢰르를 사랑한 사람들


골목을 돌자 오래된 석조 건물 한 면이 거대한 기념비처럼 서 있었다. 세월의 결이 밴 돌벽 위, 아치형으로 파인 공간마다 한 사람씩 초상이 걸려 있었다. 아홉 개의 창은 과거로 통하는 작은 통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그 안에는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 샤를 보들레르, 외젠 부댕, 에릭 사티 등 이 항구를 사랑했던 이들의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름은 돌벽에 남아 있고, 눈빛은 여전히 항구 쪽을 향하는 듯했다.

눈빛은 여전히 항구 쪽을 향하는 듯했다.


벽 아래 붉은 필기체로 “Ils ont aimé Honfleur(그들은 옹플뢰르를 사랑했다)”라는 문장이 흘러내리듯 적혀 있었다. 거친 돌벽 위의 선명한 글씨는 푸른 하늘과 또렷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것은 장식이 아니라, 이 도시를 향한 오래된 애정을 새겨 둔 고백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 앞에 서서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우리 역시 잠시나마 이 아담한 항구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화면 캡처 2026-03-02 030612.png

아쉽지만 우리는 몽생미셸로 향해야 했다. 항구의 바람과 부댕의 하늘을 뒤로한 채 다시 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보이던 장면들은 서서히 멀어지며 다시 그림처럼 사라졌다. 우리는 또 다른 길 위로 나섰다.

짧은 체류였지만 옹플뢰르는 오래된 집처럼 마음에 남았다. 언젠가 다시 온다면 그때는 하루쯤 머물고 싶다. 부댕처럼 매일 달라지는 하늘을 노트에 옮기고, 갤러리 대신 골목 벽에 걸린 그림을 따라 천천히 걷고, 항구의 저녁을 오래 바라보다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싶다.

이전 19화모네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