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 점점 울 일이 없어진다.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렸던 게 언제였는지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분명 자주 울었었다. 그리고 20대 무렵까지만 해도 연애나 회사 생활 때문에 울 일이 꽤 많았다. 참혹한 회의가 끝나자마자 화장실 문 걸어 잠그고 울거나, 퇴근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거나, 더 이상 연락할 수 없는 번호를 보면서 방울방울 눈물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명실상부 중년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니 도통 울 일이 없다. 분명 옛날이라면 울었을 법한 일에도 이제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회사에서 당하는 사회적 사고는 여전히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걸로 울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감수성이 메말라 버렸기 때문인지, 너무 많이 겪은 일이라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울면 안 되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정이 눈물과 함께 왈칵 터져 나오는 경험을 너무 오랫동안 하지 못하면 마음이 뻐근해진다. 뭔가 바싹 메말라 버린 것 같기도 하고, 답답하게 꽉 막힌 듯하기도 한 불편함이 동반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이야기를 찾아 다니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옛날에도 이야기를 좋아하긴 했었지만 그 때보다 좀 더 간절한 마음으로 영화, 소설, 만화 등을 찾아다닌다. 나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감정의 방어선을 기어이 허물고 들어와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이야기를 만나면 몹시 기쁘다. 갈증의 해소와 비어 있던 것이 채워지는 충만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인간성이나 삶의 가치를 통해 울 수 있는 마음이 아직도 나에게 남아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감도 든다.
하지만 기어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이야기는 흔하지 않다. 눈물이 방울져 또르르 흘러내리지 않고 눈동자에 그렁그렁 차 있다가 가라앉는 경우도 울었다는 것으로 판정하고 있지만 그 정도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화 매체들이 더욱더 부흥하길 바란다.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울고 싶다. 좀 더 많이 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