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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Sep 09. 2023

#11. 관광 3일 차 - 결국은 잘 먹고 잘 쉬는 것

오늘은 하마우마베이를 가는 날이다. 스노클링을 할 거니까 따뜻한 컵라면과 무스비가 잘 어울리는 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제 먹다 남은 깔루아포크를 데리야키 소스에 볶아 소를 만들고 무스비틀에 넣어 사각김밥 같은 것을 만들었다. 보온병과 컵라면도 준비했다. 컵라면과 무스비라니, 얼른 가서 먹고 싶다. 분주하게 참을 준비하여 오늘도 텀블러에 얼음과 커피를 따른 후 집을 나섰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파란색 닛산 차를 찾아서 몸을 실었다. 오늘은 어쩌면 집 주변에서 휴양을 하고 서핑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 위로 둥실 떠올랐다. 하지만 열심히 운전을 하는 워니가 있으니 티 내지 않고 가만히 차에 몸을 욱여넣어 하나우마베이로 향했다. 도착하여 주차하고 짐을 챙기려고 봤더니, 아차 우리는 거의 빈 손에 가까웠다. 참과 커피나 들고 왔지 나머지는 딱히 이렇다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사실은 이곳에 오기 전에 꽤나 준비를 했긴 했었는데 말이다. 10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마주친 황홀함에 꼭 다시 가야지 스스로와 약속을 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부터 꽤나 준비해 왔었다. 예약도 알아보고 이곳에서 쓰려고 방수팩과 리프슈즈도 한국에서 모셔왔는데, 돗자리도 파라솔도 준비했는데, 모두 숙소에 고이 잠들어 있다. 이를 어쩐담.. 그래도 다행힌 것은 차에 항상 있는 비치타월과 스노클마스크는 뒷좌석에 가만히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은 다 있구나.  스노클링을 하러 왔으니 스노클이 있으면 족하다 싶었다. 관광 삼일 차, 여행지에서라도 갓생을 살아보자던 우리는 본래대로 돌아왔다. 그래 우리가 무슨 계획과 준비래냐. 이틀 동안 그렇게 다닌 것이 장하다. 양손에 비치타월과 스노쿨, 참을 가지고 터벅터벅 늘어선 줄을 따라 길을 내려간다. 


한참 설명을 듣고 물에 입수했으나 너무 간조라 그런지 생각보다 물고기가 없었다. 십 분 정도 물에 둥둥 떠다니다가 큰 수확 없이 뭍으로 나왔다. 잠이 쏟아진다. 그래 너무 일찍부터 서두르긴 했어. 잠시만 몸을 뉘여야지... 햇살이 따스한 것이 좋다... 그러다가 다리가 너무 뜨거워서 눈을 떴더니 어머나 이미 해가 중천에 떴다. 한 것 없는 것 대비 배는 너무나 빨리 고파온다. 출출한 한 탓에 컵라면과 무스비를 먹었다. 다시 힘을 내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만조에 가까워졌는지 물도 꽤나 높아지고 물고기도 참말 많아졌다. 오기 전부터 너무 보고 싶었던 후무 후무누쿠누 쿠아푸아 아! 이놈도 오전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오후에는 진짜 많이 보인다. 후무후무들만 따라다녔다. 통통한 몸에 조그마한 지느러미를 팔락거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후무후무를 따라다니다 보니 워니가 없어졌다! 한참을 둘러봐도 보이질 않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비치로 나와서 본격적으로 그녀를 찾기 시작했는데 저어 바다 멀리서 하얀 스노클 뿔을 달고 유유자적 움직이는 누군가 발견. 바로 그녀다. 언제 저기까지 갔담? 참나~ 웃기는구나. 워니에게 내가 보았던 신기한 물고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수염 두 개로 먹이 훑고 다니는 메기 같은 물고기였는데 수염으로 산호를 훑는 모양새가 수준급이었는데 말이다. 워니에게 메기물고기를 보여주기 위해 그녀와 동행하며 물고기를 봤다. 멋진 물고기를 보며 서로를 툭툭 치면서 엄지를 들어 올렸다.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메기물고기만은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탓에 내가 지어낸 가상의 물고기처럼 되어버렸다. 진짜 신기했는데, 아쉬워라, 어느새 추워져서 나와서 빠르게 짐을 쌌다.


하나우마베이는 너무 좋았지만 이제는 다시 오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조금씩 예상하는 것을 만나는 것이 식상해지는 때가 온 것 같다. 서핑하다가 우연히 만난 물고기는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는데, 물고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 돈을 내고 입장해서 들어간 곳에서 보는 물고기는 큰 감흥이 되지 못했다. 마치 거북이를 동물원에서 봤을 때와 비치에서 봤을 때의 차이랄까. 원래의 오늘 계획으로는 주변의 블로우홀과 탄탈루스 언덕도 가려고 했지만, 그냥 집으로 가기로 맘먹었다. 집에 가서 한숨 잔다면 그것이 지금으로서 가장 천국일 것 같았다. 집에서 씻고 밥 먹는 게 젤로 좋았다.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씻고 쉬는 게 가장 좋아. 잠시 쉬고 노는 집순이의 행복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해 질 녘이 아쉬워 저녁을 먹으러 조금 멀리 나왔다.

좋아하는 조개요리도 시키고 샤도네이도 마셨다. 부둣가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노을 지는 파스텔톤 색깔, 라이브 공연까지. 여유롭고도 행복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여기서 와인을 두 잔이나 먹고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역시 행복에는 별 것이 없다. 쉬고 맛있는 거 먹고. 그게 다다.


한 인터뷰에서 산드라 오가 정호연에게 조언을 한 적이 있다. 굉장히 캐주얼하게 해 준 이야기였지만 너무나 인생의 액기스 같은 말이라 참 마음에 남았다. 인터뷰자가, "정호연 씨가 이제 오징어게임으로 막 유명해졌는데, 유명한 아시아계 배우로서 조언할 것이 있는지"를 물었는데 산드라 오가 웃으면서 하나씩 생각하며 말했다.  

그냥 친절하고 잘 먹고 스스로를 잘 챙기고, 결국은 그게 핵심이야. (Just be kind, eat, take care of yourself. that's ultimately all it boils down to)


진짜 이것이 핵심이다. 진짜 행복은 잘 먹고 잘 쉬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연속 3일 내리 관광을 하고 우리는 열시도 되지 않아서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은 절대로 이동수단 타지 않고 집 주변에만 있기로 다짐했다. 새벽서핑을 갈까 했었는데 그냥 쉬기로 했다. 쉬는 게 남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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