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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Sep 09. 2023

#13. 행복은 우연에 있다

관광 마지막 날. 오늘 일정은 새벽에 진주만 및 시티투어 갔다가 점심 먹고 세일링을 하는 것. 과거의 나는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이 모든 걸 예약해 둔 걸까? 내 금쪽같은 하와이에서의 1일이 아까워 벌써 배가 아팠다. 예약을 취소할 수 있을까 전화해서 확인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서 환불이 어렵다. 하와이 출발하기 전에 나는 하와이에 오면 내가 부지런하고 활기찬 인간이 될 줄 알았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는 명확하고도 깔끔한 진리를 망각한 나의 탓이다.


구시렁거리지만 돈을 냈으니 몸을 일으켰다. 무려 새벽 다섯 시였다. 진주만 시티투어, 이름만 들어도 우리 또래는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셔틀버스 장소로 가자 저어기 백인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계셨는데 역시나 같은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다. 버스에 타자 가이드아저씨가 설명을 시작한다. 하필 맨 앞 줄에 앉은 나는 졸지도 못하고 가만히 동태눈을 하고만 있었다. 도착한 진주만, 하와이에서 이렇게 동양인이 없는 곳은 처음 보았다.


다만 이 박물관에서 수확이 영 없었던 것은 아니다. 태평양 전쟁에 대해 미국의 시각을 읽으며 그 시절에 대해서 새로이 이해할 수 있었다.


2차 대전 당시 하와이는 미국의 아시아 지역의 중심기지였다. 일본은 미국의 사기를 꺾어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하와이를 치는 게 필수적이라 판단했다. 1941년 12월 7일 이른 아침 진주만을 폭격했다. 방심한 미군의 수 많은 함선을 침몰되었고 약 2000명이 넘는 해군들이 같이 가라앉거나 죽었다. 처음으로 자국 땅(혹은 자국 땅이나 다름 없는 땅)에 폭격을 받아보았던 미국은 치욕스러움에 몸서리를 쳤다. 얕잡아봤던 일본에게 정통으로 먹은 한 방을 만회하기 위해서 Remember Pearl Harbor라는 구호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불어넣었고 수 많은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전했다. 그전까지 전쟁에 반대하던 여론도 완전히 뒤집혔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태평양 전쟁에 참여하는 계기가 된것이다. 


한편 일본의 입장에서는 진주만공습은 정말 잘 수행된 작전이었다. 다만 미국에 대항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 전략적 판단이 미스였다. 하와이를 쳐서 미국인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협상을 하려는 목적이 완전히 빗겨나갔기에 이 사건으로 일본은 패로를 걸었다. 일본이 아무리 우리나 중국, 대만 같은 식민지에서 물자와 인력을 수탈해 온다 하더라도 정면으로 미국과 싸우기에는 기초체력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내가 알고 들어왔던 진주만은 그저 우리나라 독립을 가능하게 한 신호탄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었다. 우리가 열심히 국외에 상황을 알렸던 것보다도 진주만공습 한 방에 갑자기 독립이 성큼 다가왔고 일본이 패전하자 우리는 드디어 독립할 수 있었다. 


이 흐름을 미국의 입장에서 보며 그 당시 일본이 얼마나 강했는지, 전 세계적으로 일본의 지위가 왜 그렇게 높은 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그저 우리와 비슷한 섬나라이자 우리를 식민지배한 놈들에 불과했지만, 제3 국의 입장에서 보니 우리와 일본의 국력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 지를 이해할 수 있기도 했다. 미국과 대항해 볼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국력이다. 아무리 책이나 다른 매체에서 일본의 도요타, 일본의 소니를 외쳤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유튜브 슈카월드에서 일본과 우리의 경제상황을 설명해 준 인상 깊었던 예시가 떠올랐다. 일본과 우리를 둘 다 떡볶이 장사를 하는 건물주에 비교했다. 일본은 떡볶이 장사는 좀 죽을 쑤지만 다달이 세가 들어오는 튼실한 건물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떡볶이 장사는 엄청 잘되지만 건물은 쥐꼬리만 한 상태라고 비교해 주었다. 일본이 아무리 디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어도 전 세계 곳곳에 뿌려놓은 자본이 건재하여 끄떡없다는 이야기였다. 일본이 한 세기 전부터 세워온 펀더멘탈을 진주만에서 느낄 수 있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할 것이 참 없었지만 그중 인상 깊었던 잠수함 투어가 있었다. 잠수함 환경이 정말 답답하고 열악했다. 제 아무리 미국이라 할지라도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환경은 어쩔 수 없었다. 동시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비참했던 강점기말 상황도 떠올랐다. 전쟁은 우리 모두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는 말이 말 그대로 실감 났다. 진주만 투어가 종료될 즈음에 맞추어 비도 그쳤다.


 비 맞은 새앙쥐 꼴로 진주만을 탈출한 우리는 얼굴 표정부터 달랐다. 벌써 입꼬리가 올라간다. 차이나타운에 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Pig and the lady로 향했다. 오픈시간 전부터 줄을 서 있던데 우리는 점심이 한창일 때 갔어도 운 좋게 바자리에 바로 앉을 수 있었다. 하와이에서 봤던 곳 중 가장 힙한 곳이었다. 공간도 음악도. 어쩌면 우리가 정말 안 돌아다닌 것일지도.


쌀국수를 후루룩 마시며 비 맞은 몸을 녹이던 찰나, 메일 알림이 울렸다. 기상상황 때문에 오후 세일링이 취소되었으니 전화를 달라고 한다. 얏호! 너무 신난다! 이제 우리는 자유다! 전화를 걸자 내일로 옮겨주겠다고 한다. 아니요, 거절하겠어요. 차마 내일도 타기 싫다고는 말하지 못하고, 그저 우리는 내일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리스케쥴링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비용이 꽤 되었는데 환불은 해 주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타는 것보다 안 타는 게 나았다. 갑자기 해방된 느낌! 갑자기 이 시간 이 공간이 모두 여유로워졌다. 그래 이거지 이후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이 느낌.


조금 전보다 두 배는 맛있게 느껴지는 반미를 먹는데 조금 후 다시 전화가 왔다. 내일 어려우면 밤에 선셋 세일링이나 불꽃놀이 세일링으로 바꾸어주겠다고 했다. 불꽃놀이 세일링이라면 바다에서 불꽃놀이를 보는 것인가! 그 얼마나 낭만적인가! 또다시 취소되었을 때보다 두 배로 신이 났다. 세상사 알 수 없다. 오전에는 비가 와서 춥고 속상했는데 오후에는 비 덕분에 요트 위에서 불꽃놀이를 볼 수 있었다.


부른 배를 꺼트리려 HoMA(Honolulu museum of art)으로 향했다. 색색의 야채가 진열된 파머스마켓과 은회색 잎이 반짝이는 공원을 지나 천천히 걸었다. 도착했을 때 맞닥뜨린 멋진 건축물에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온몸으로 햇살을 받는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곧 멋진 중정이 우리를 반겼다. 이 건물은 중정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정도로 여러 개의 중정을 중심으로 낮은 기와지붕의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기와는 하와이의 하늘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우러졌다. 아시아와 유럽의 느낌이 골고루 나는 건물이었다. 전시를 구경하더라도 언제든지 중정으로 나와 햇살 받으며 쉴 수 있었다.


의외로 좋았던 것이 불교문화에 대한 전시였다. 한중일뿐만 아니라 동남아, 인도 등 아시아 전역의 불상과 종교유물들을 한 자리에서 보니 새롭구나 새로워. 불상들은 나라마다 비슷한 듯 얼굴표정이나 얼굴생김새가 달랐다. 불상의 현지화라니. 불교가 현지에 스며들기 위해 나름의 변모를 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티베트의 부처의 표정과 스토리는 온화하고 인도의 부처는 보다 전지적이고 강압적이다.


불교와 더불어 아시아권의 유적들도 한 자리에서 모아 볼 수 있었다. 항상 우리나라입장에서만 아시아를 바라보다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신선하다. 특히 1000년쯤 전의 물건들을 보면 중국의 것들이 우리나라와 굉장히 비슷했는데, 전시품을 보면 중국 것인지 한국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중국의 것은 평균적으로 한국보다 두 세기 정도 날짜가 앞서 있었다. 지금의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20년 정도 앞서있다고 하는데 그때의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200년은 앞서있었다니. 중국이 정말 대단했구나. 하와이에서는 본디 알던 것을 새로운 시야로 보게 된다. 아주 가까운 사람 말고 적당히 가깝고도 먼 사람의 시야로.


나오기 싫을 만큼 좋았던 도서관과 한참을 바라본 한 미국 여인의 초상화까지 구경하고서야 박물관을 나왔다.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다. 선착장 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뜨는 탓에 가는 길에 우연히 찾은 라멘집에 들어갔다. 우리의 선택은 돈코츠라멘과 토마토라멘, 그리고 조그만 샐러드. 그런데 이럴 수가, 일본이 아닌 하와이에서 내 인생 라멘을 맛보았다. 이렇게 맛있는 우연을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에서 만날 줄이야.


피날레다. 우연히 얻게 된 또 다른 행운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요트 위에 올랐다. 바다 반대편에는 황금빛 와이키키가 영원할 것처럼 반짝이고 그 왼쪽에서 불꽃놀이가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칠흑같이 까만 바다 표면에는 오색빛 윤슬이 찬란하다. 배 안에서는 Katy Perry의 Firework가 귀를 쩡쩡 울려온다. 갑자기 이 모든 게 가짜 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해서 얼떨떨했다. 내가 있는 이곳이 현실이 맞나? 옆에서 호들갑 떠는 워니가 아니었다면 내 뺨이라도 꼬집어봤을 테다. 비록 불꽃놀이는 신기루처럼 금세 끝나버렸지만 이 느낌만은 영원하리라.


가끔 너무 좋은 것을 경험하면 나도 모르게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내가 감히 이래도 되나, 하는 그런 죄책감 말이다. 오늘도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갈 엄마와 아빠 생각이 나기도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축축하고 흐린 하늘과 시작한 오늘 아침과 달리 완벽하게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를 끝냈다. 내가 만약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겪었다면 이만큼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운 좋게 바꾸어진 세일링 일정과 너무 좋았던 박물관, 우연히 만난 너무나 맛있는 라멘집이 오늘을 또다시 행복하게 만들었다. 행복은 우연히 만난 기쁨들로 이루어진다.


 조승연의 탐구생활(유튜브)에서 보았는데, 이탈리아인들은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순간순간 즐거움을, 기쁨을 추구하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에 다다른다고 믿는다. 이런 쾌락주의적인 생각이 어쩌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기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 거창한 행복을 바라기보다 매일 작은 기쁨과 즐거움을 쌓는다면 그게 바로 행복할 수 있는 태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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