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다리담 Oct 01. 2023

#17. 하와이 워케이션 시작

오늘은 워니가 가는 날이다. 평소와 달리 여섯 시쯤 워니가 일어났다. 마지막 러닝을 하기 위해 함께 와이키키 해변으로! 3킬로를 걷다 뛰다 하는 그녀의 러닝 가이드에 맞추어서 뛰었다. 매일 서핑을 하러 오던 이 시간 이곳에서 러닝을 한다. 오른쪽에는 청량한 바다가 펼쳐지고 선선한 아침바람이 불어온다. 분주한 가게들과 여유로운 사람들을 지나쳐 카피올라니 공원에 다다랐다.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잊었던 곳인데 발견해서 다행이다. 이곳이야말로 러닝 천국이다. 끝없이 넓은 잔디밭 사이 길이 이어진다. 양쪽으로 높이 선 나무들이 이어진 시원한 그늘길이다. 아 너무 좋아 이제라도 이런 곳을 발견해서 너무 다행이야. 와이키키월에서 부기보딩하는 아이들을 보고 돌아오는 길, 해변에 면해 있는 카페에 들렀다. 


오후에 가면 항상 닫혀있었는데 오늘 드디어 열려있을 때 모습을 보았다. 아침 일찍 서두른 자들의 특권 같은 카페. 아 너무 좋다. 간단한 아침 운동 후에 아사이볼을 먹으면서 바닷바람을 맞는 일, 너무너무 행복하다. 카페에서 워니와 마지막 수다를 떨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워니는 마무리 짐을 싼다. 그동안 나는 어제 서핑 끝나고 혼자 먹었던 포케집이 맛이 좋아 워니에게도 맛 보여주고 싶었다. 아직 워니는 맛있는 포케를 한 번도 못 먹었다. 하와이를 떠나기 전에 맛있는 포케를 못 먹고 가면 섭섭하지. 워니에게 포케집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 후 오픈 시간에 맞추어 후다닥 픽업했다. 맛있는 마지막 아침을 먹고 떠나는 워니를 데려다주러 내려갔다. 떠나는 택시에 손을 흔들고 올라오니 조금 헛헛했다. 


노래를 틀고 폰을 만지작대다가 방을 청소했다. 두 개의 침대를 한 개로 붙이고 테이블을 침대 옆으로 옮기고 정리를 했더니 집이 깨끗해져서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사람은 이리도 단순하다! 이제 남은 날들을 세어봤다. 18일, 그중 7일은 쉬는 날, 11일은 일하는 날. 한국 공휴일이 끼어 생각보다 쉬는 날이 많다. 그나마 다행이야. 일하는 날들을 버텨내어야 할 것들로만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는다. 주말이 올 때까지 평일을 버텨내던 한국에서의 내 모습이 생각나서 지난 시간이 조금 아깝다. 이곳에서는 하루하루가 이리도 소중한데 일을 할 때는 압박감에 못 이겨 시간을 단지 빨리 가기를 바랐다. 내 평일은 단지 주말만을 위해 참아야 하는 과정처럼 느껴졌어서 참 시간이 아쉽다.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참아내고, 얼마나 많은 나이를 그렇게 먹어왔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일을 할 시간이 다가왔다.


19시간의 완벽한 시차, 한국의 아침 아홉 시는 하와이의 오후 두 시다. 오전 시간을 충분히 쓰고 한숨 쉬고 나면 딱 일을 시작할 시간이다. 오랜만에 다시 돌아간 일터. 일하는 곳은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게 똑같았고 너무나도 정신이 없었다. 모니터 밖의 나만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서 일을 하고 모니터 속은 톱니바퀴 세계처럼 굴러가고 있다. 정신이 없었지만 알게 모르게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좋은 사람들과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일들, 나를 기다렸던 안건들. 나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충분히 좋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제 쉬었냐는 듯이 자연스럽게 메신저창과 줌미팅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다. 생각보다 밤시간에 피곤해서 졸린 눈을 부릅뜨고 꼬박 일을 처리한 후 열한 시(한국시간 여섯 시)에 일을 접었다. 내일 조금 일찍 시작해야지. 일을 조금 더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곳에서는 갓생을 사는 터라 밤 열한 시 반에 일이 끝나는 것은 조금 무리다. 알레르기약을 먹고 세상 가는 줄 모르고 잠에 들었다. 내일부터는 서핑을 하고 한숨 자고 일을 하는 삶이 펼쳐질 테다.


 


매거진의 이전글 #16. 정반대인 친구와 함께한 2주의 하와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