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곳에 지낸다는 것은 시간이 가기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공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스스로 다짐했다. 매일 하루에 하나 일기를 쓰고 매일 한 번 명상을 하자고. 전자는 그럭저럭 지켜가고 있지만 후자는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명상이 없는데도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정되었다. 친구와 강아지가 없어도 공허하지 않고 주말에 일을 해야 해도 마음이 무겁지 않다.
aloha와 mahalo에 담긴 “숨(ha)”, 즉 생명과 영혼에 대해 안 후에 숨이란 것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이 어찌해서 우리의 영혼이 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단순히 그것에 집중한다. 숨을 머금고 뱉으며 이곳과 연결된다. 이곳의 공기를 몸속 깊이 마셨다가 내 몸속 공기를 다시 밖으로 내뱉는다. 이곳의 공기를 공유하는 일, 등으로 내리쬐는 햇빛이 내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는 일. 은초록 나무 위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까르르 웃음소리를 듣는 일. 이렇게 내가 있는 곳의 모든 것들을 공유하며 하나가 되는 일. 나와 외부의 경계가 흐릿하다는 말을 모를 것 같으면서도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시간 이곳에서 존재하는데 무슨 명상이 따로 필요하리.
이어폰을 안 낀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조차 생산적이기 위해서 팟캐스트를 듣던 지난달의 내가 생각난다. 시간을 의미 있게 쓰려고 그렇게 했지만 그동안 나는 새가 우는 소리와 구름이 움직이는 모습을 덜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에게 주어진 감각은 한정적인 것이다. 세계 반대편에서 내가 모를 누군가에게 닥친 불행이나 누군가가 구현한 정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 시간 그 공간을 놓쳐왔다.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산책하던 풍경도 길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워니가 간 후로부터 매일매일 오늘이 며칠이 남았지를 보며 지나간 어제에 줄을 긋고 있다. 어제 날짜에 줄을 그으며 어제는 뭘 했는지 생각하면 선명하다. 아, 어제도 서핑을 하다 에드를 만났고 거북이를 봤지. 점심으로는 포케를 먹고 친절한 아저씨를 만났지. 하루하루 크게 바뀌는 것 없지만 내가 뭘 했는지 또렷하게 기억나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어제는 결코 흘러가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가기를 참고 지냈던 적도, 기다린 적도 없이 그냥 내 눈앞에 있는 것을 마음에 머리에 꼼꼼히 기록했던 것이다.
오늘은 공원으로 왔다. 사람들은 다 해변으로 가 버린 건지 저어기 멀리 풋볼을 연습하는 아이들을 빼고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 블록만 넘어가면 와이키키인데 이곳은 놀랍도록 한적하다. 프리스비를 던지는 사람과 그를 뒤따라 뛰는 베이지색 레트리버. 느리게 걷는 사람과 몇 시간째 누워있는 사람, 그리고 몇 시간째 벤치에서 책을 보고 있는 나만이 있다. 이 시간 이 지금이 또다시 내 마음에 진하게 기록된다. 지금 내가 마시고 뱉는 짙은 초록 숨들이 나의 몸과 머리에 각인된다.
5/26 금요일, 카피올라니 공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