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다가 누군가 최근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알림의 글을 보았다, 2년 전에 서른을 마무리하며 쓴 글이었다. 쓴 기억도 안 났는데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싶었다. 좋아요를 눌러준 그 덕분에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 나의 마음을 되돌아보았다. 그때의 생각에서 더 발전된 것도 있고 오히려 생각이 바뀐 것도 있다. 종종 나는 이효리가 다시 광고를 하겠다며 말하며 짓던 무안한 미소를 떠올린다. 한 순간의 목소리를 모두에게 공공연히 선언했던 것은 생각이 바뀔 거라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보니 광고를 해서 번 돈으로 낼 수 있었던 목소리를 포기해야 했고 가수로서도 소속사에도 예산이 많이 드는 뮤직비디오나 지원을 요청하기가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과거의 선언을 번복했다. 그러니까 생각은 항상 바뀌는 것이다. 최근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얘기할 때에 지금 내가 내뱉는 한마디 단어가 나를 규정짓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을 한다. 내 생각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외모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더 중요한 것은 안에 있기 때문에 겉을 가꿀 시간과 노력으로 내실에 집중하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의 It’s what’s inside that matters라는 광고문구를 스쳐 지나가며 마음에 담았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렇다고.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무려 한 달 만에 생각이 꽤 많이 바뀌었는데, 외모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가장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매개이다. 같은 말이나 행동을 해도 어떤 외모를 가지고 말하느냐에 따라서 내 의사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되는지가 달라진다. 이제 나는 중간관리자에 다가서면서 누군가 만나면 밥을 살 일과 부탁할 일은 더더욱 많아졌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일을 움직이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지원을 부탁해야 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는 인상이 호감인 것이 무조건 좋다. 그래서 올해는 처음으로 피부과 시술을 받아보았다. 약간의 돈과 조금의 고통으로 잠시나마 조금 더 좋은 인상이 될 수 있음에 감탄했다. 한편 외모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예쁜 얼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무작정 예쁜 건 대학 때나 필요한 거다. 이제는 고급스럽게 호감이어야 한다. 머릿결이나 피부결이 인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깨닫는다. 업장을 차린 40대 회계사의 조언에 따르면 회계사 영업의 70%는 외모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급스럽고 우아한 외모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가장 가성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서른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훨씬 더 현실적이다. 과거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이상이 조금씩 세상의 반응에 따라 수정되고 있음을 느낀다. 세상과 잘 지내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알고 그것에 맞추는 것이 속편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모델 한혜진이 유튜브에서 40대가 30대와 가장 다른 점에 대해 얘기했던 적이 있다. 30대와 가장 다른 것은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30대에는 그 말이 너무 싫었는데 이제는 어느새 그 말을 이해한다고 한다. 백번 공감한다. 나 또한 사회생활에 치이면서 나의 모난 부분이 조금씩 깎여 둥글어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그녀보다 이것을 더 이른 시점에 느낀 이유는 나는 세상과 갈등을 겪으며 혼자의 길을 걸을 만큼 잘나지도 못했고 세상의 외면을 받으면서 주장을 펼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확연히 갈등을 피하고 웬만하면 친절하려 노력한다. 상처를 받아 본 입장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나 또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방패를 세운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싶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래서인지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원하기 시작했다. 지키고 싶은 관계일수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신경 쓰기 시작했다.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너무 빠르게 친해지면 빠르게 멀어진다.
올해의 가장 큰 변화라면 단연코 내 세계의 확장이다. 올해 처음으로 (물론 12월에 들어서야 한 생각이지만) 내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본 지브리의 영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덕분이었는데, 영화에서 ‘선한 너의 세계를 세우거라’라는 말을 들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조금 났다. 그전까지 나의 세계는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지, 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 내가 지켜야 할 존재는 오직 나뿐이며 그것만이 내 세계였다. 그런데 이제는 차츰 나 말고도 지켜야 할 존재가 생기고 세월이 갈수록 그 존재는 확대될 것이다. 나만 보는 우리 강아지뿐만 아니라 이제 조금 있으면 부모님도.(나는 부모님의 보호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부모님을 보호하는 존재가 된다. 즉 부모님의 세계에 속했던 나는 곧 나의 세계에 부모님을 속하게 할 것이다.) 엄마아빠뿐만 아니라 할머니와 이모들 같이 과거에는 강하고 단단하게 느껴졌던 존재들이 조금씩 약해져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며 나는 그들의 여러 기둥 중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내 가정을 꾸리면 내가 보살피고 보호해야 할 존재들 또한 생길 것이다. 그들의 삶이야말로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전에 누군가 반려동물을 입양을 고민할 때 들었다는 말이 기억난다. “나에게는 삶의 일부분이지만 그들에게는 삶이 송두리 째 바뀌는 경험”이라고 했었다. 그러니까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그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 세상에 살 사람들의 삶까지 책임지고 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세상에 사는 이들의 삶에 꿀이 넘쳐흘렸으면 한다.
자수성가한 우리 할머니는 내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긴다. 여자건 남자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엄마가 일을 하는 것도 존중하며 일로 인해 중요한 일정에 시간을 빼지 못하는 것도 이해한다. 올여름 할머니의 경로당에 한 번 찾아봰 적이 있다. 할머니는 친구들에게 내가 일을 하다가 흰머리가 잔뜩 났던 경험을 영웅담처럼 늘어놓았고 내가 받는 연봉을 부풀려 말하며 친구들에게 손녀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인정받는 사람인지를 얘기했다(물론 할머니 친구분들 중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신 것 같지만). 그때는 그저 내가 자랑스러운 할머니가 귀엽게 보였지만 이제야 할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맨손으로 세 자식들을 일구어 모두 번듯하게 키워낸 할머니의 마음에는 일하는 것이란 안전한 세계를 구축할 능력을 의미한다. 자식들의 번듯한 삶이야말로 할머니의 자부심이자 할머니의 삶의 방식에 대한 정당성이다. 그녀의 삶은 혼자로서는 증명되지 않으며 그녀의 세계, 즉 그녀의 가족들의 넉넉함과 행복만이 그녀의 한평생 일해온 삶을 떳떳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그녀의 세계를 일구어온 방식의 계승이다.
일이 곧 단단한 가정이었던 나의 할머니와 달리 나는 일과 삶을 떼어내고 싶었다. 올해 일에 파묻혀지내며 했던 가장 큰 고민은 내 인생에 1순위가 없다는 것이었다. 1순위가 없으니 자연스레 일이 1순위가 되었고 그때그때 중요한 일에 따라 내 일정은 깨어졌다. 일을 조금 더 붙잡고 있다가 약속에 늦는 일이 허다했고 일이 급하면 운동도 포기했고 강아지 산책도 뒷전이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일에 약속 잡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내가 바라는 삶은 일만을 바라보는 삶이 아닌데도 나는 일이 내 일상을 침범하게 두었다. 이런 과거를 온전히 후회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덕에 나는 훨씬 더 빠르게 성장했고 사실 일을 1순위로 두지 않았다면 나는 이 회사에서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2년간 이렇게 지내고 나니 이제 내 삶에서 다시 중요한 것을 되찾고 싶다. 과거의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고 (기억을 더듬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한 때는 서핑이었다가 한 때는 연애였다가 또 더 과거에는 운동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나는 그 우선순위가 내 가정이었으면 한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것이 일이 아닌 가족이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인생의 phase2로 넘어가는 순간이 지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이성을 만날 때 그 사람 자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꾸려나갈 미래의 모습을 먼저 상상해 보게 된다. 상대도 아마 같은 마음이리라. 그래서 지금의 선택이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더 선뜻 마음을 정할 수가 없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결정선이 명확하기도 하다. 앞으로의 내 삶이 지금의 내 삶보다 더 포용적이고 따뜻한 삶이었으면 한다. 공교롭게도 이는 이성관계에서뿐만이 아니다. 커리어에서도 조금 있으면 누군가 한 명은 책임져야 할 위치가 될지도 모른다. 그 시간이 가능한 늦게 왔으면 하지만서도 나에게 기대는 사람이 회사에 있는 장면이 조금은 상상이 된다. 그에게 나는 포용적이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나 한 명 지키기도 고사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훌쩍 커버린 내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올 초에 세웠던 내 계획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아쉬운 점 투성이다. 영어공부를 조금 더 하지 못한 점이 아쉽고 운동도 열심히 하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쉽다. 지칠 때마다 유튜브 쇼츠에 중독되었던 내 시간이 너무 아깝고 올 한 해 업무 프로젝트만 하다가 날려버린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든다. 그렇지만 조금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보면 나는 조금 더 발전했다. 서른 살의 나보다 서른두 살의 내 세계는 더 넓고 다정하다. 어쩌면 누군가 잠시 와서 쉬어갈 수도 있을만한 세계가 될 수도 있다. 내 세계에 잠시 머물 누군가를 위해서 시간이나 노력을 조금은 내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해도 사실 두려움이 더 크다. 서른은 나에게 어른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나는 진짜 어른을 목전에 둔 느낌이다. 그러자 드디어 이전에 도곡에서 남부터미널역까지 걸어가며 했던 친구의 말이 이해가 된다. ‘나이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른다’라는 말이 말 그대로 와닿는다. 윤종신의 ‘나이’ 노래를 들으며 글을 계속 써간다.
내년의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다시 이직을 하고 이사를 할 수도 있다. 다시금 모든 것이 불확실한 삶의 반복이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이제 나는 싫든 좋든 내 세계라는 책임감이 한 근 더 어깨 위에 얹어졌다는 것이다. 나 한 몸뿐만 아니라 내 소중한 사람들의 삶도 일부 같이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서 나를 지속해 줄 방법은 내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내 마음이야말로 나의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절대 쓰러지면 안 되는 것이니까. 내 마음을 다스리는데 명상보다도 더 효과적인 것은 운동과 모닝페이지였다. 이 두 가지를 평생의 습관으로 가지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두 가지는 내 가족 다음으로 중요한 인생의 우선순위가 되었으면 한다. 한편 커리어에서 내가 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 는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해야겠다는 것은 확실하다.(영어 쓰는 나는 한국어 쓰는 나보다 더 만만해 보인다) 지금 나의 성과를 평가하고 나에게 고과를 줄 수 있는 사람들 중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최근 내가 일을 잘하는 것이 나의 자존감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세계 외의 그 어느 곳에서도 가치를 찾을 수 없을 때, 나의 쓸모를 인정받고 내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곳은 일터다. 운동과 모닝페이지로 내 삶을 지탱하고 영어로 내 삶을 성장시킬 수 있으면 한다. 내년의 끝에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지 궁금하고도 기대된다.
2년 전 쓴 "서른을 마무리하며"
https://brunch.co.kr/@kongkong2222/76
윤종신 [나이]
안 되는 걸 알고 되는 걸 아는 거
그 이별이 왜 그랬는지 아는 거
세월한테 배우는 거
결국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
두 자리의 숫자 나를 설명하고
두 자리의 숫자 잔소리하네
너 뭐 하냐고 왜 그러냐고 지금이 그럴 때냐고
잊고 살라는 흔한 말은 철없이 살아가는 친구의 성의 없는 충고
내 가슴 고민들은 겹겹이 다닥다닥 굳어 버린 채 한 몸 되어 날 누른다
날 사랑해 난 아직도 사랑받을 만해
이제야 진짜 나를 알 것 같은데 이렇게 떠밀리듯 가면 언젠가 나이가 멈추는 날
서두르듯 마지막 말 할까 봐 이것저것 뒤범벅인 된 채로 사랑해 용서해 내가 잘못했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널 사랑해 날 용서해 지금부터
채 두 자리를 넘기기 어려운데 늘어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하지 말아야 할 게 늘었어 어린 변화는 못 마땅해 고개 돌려 한숨 쉬어도
날 사랑해 난 아직도 사랑받을 만해 이제야 진짜 나를 알 것 같은데 이렇게 떠밀리듯 가면
언젠가 나이가 멈추는 날 서두르듯 마지막 말 할까 봐 이것저것 뒤범벅인 된 채로
사랑해 용서해 내가 잘못했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널 사랑해 날 용서해 지금부터 내 잘못이야 날 용서해 지금부터
날 사랑해 지쳐가는 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