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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Jan 02. 2022

서른을 마무리하며

서른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마음이 교차하는 일이었다.

나이에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지만, “서른”이라는 단어는 어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하는 것과 같았다. 종종 초등학생 사촌동생이 누군가에게 “이 누나 서른 살이다?” 라고 (나를 놀리기 위해) 말할 때라거나, 할머니에게 내 나이를 되새겨주었을 때 “니가 벌써 서른이가?” 하는 놀라움이 담긴 어미에서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서른은 사회의 독립적인 주체로서 인정받기 시작하는 설레는 나이였다. 스물   즈음, 교환학생 준비로 잠시 대형 어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외국인 강사는  서른이 되고 있었다. 누군가 그에게 서른이 되는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고, 그의 대답은 태연하고도 의연했다. “기분이 좋다. 서른 즈음 되면 사람들이 나를  이상 어린아이로 보지 않고 존중해주기 시작한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게 무슨 기분일  상상은  되지 않았지만 나의 뇌리 깊숙히 남았다. 나에게 서른이란 슬퍼해야  인생의 시기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서른이 되는 것을 기뻐하는 그의 모습은 생소했다. 이후 누가 서른이 되는 것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하면,  혼자서  기억을 되새기며 뭐가 맞을지 혼자 고민하곤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서른에  의미를 두지 않았던  같다.


2년 전, 28살 겨울에 막 30살이 되는 친구와 퇴근 후 도곡역에서 남부터미널역까지 밤길을 걸으며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녀에게 서른이란 걱정과 막막함의 키워드였지만 나는 서른은 그냥 숫자 중 하나라고 말했다. 우리는 똑같을테니 나이가 우리를 정의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시간이 흘러 서른은 나에게도 다가왔다. 서른이 시작되던 시점의 나는 크게 슬프거나 벅차오르는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일 년이 또 끝났네,,’ 하는 아쉬움을 느끼고 친구들과 서른에 관한 농담도 몇 개 했지만 그게 다였다. 하지만 지금 일 년을 끝내는 나에게 서른은 생각보다 특별했다. 막상 서른을 살아가는 나는 느끼지 못했을지언정, 돌아보며 서른은 다른 해보다 조금 더 크게 다가왔다.


28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정산” 책에 감사했던 내용에 대한 답변으로 “어리다는 이유로 실수가 용납되고 너그러운 반응를 얻는 것” 을 적어둔 것을 발견했다. 정말 그랬던 것 같다. 독립적인 어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신 보호와 관용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20대였다면 서른의 나는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이었다. 병원에 가서도 더 이상 “학생”이라는 호칭을 듣지 않게 되었고 인테리어 사장님들께 “사모님” 이라는 호칭을 들으며 지냈다. 회사에서도 보살핌을 줄 대상보다는 의지할 대상으로 포지션이 바뀌었다. 그 외국인 강사가 했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하나의 주체로서 인정과 존중을 받기 시작했다. 그 대신 이제는 내가 한 말과 행동의 주체로서 책임을 질 줄 알아야했다.


사회에서의 포지션이 바뀐 것과 동시에, 성향이나 행동도 학생 티를 벗었다. 주변의 시선이나 외모에 관심이 줄어들었고 많은 에너지를 일과 투자에 쏟았다. 시내에 나가는 것이 극도로 귀찮아졌고 집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다.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친구들과의 관계가 뜸해졌다. 막 신혼생활을 시작한 친구들과 연락이 줄어들었고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미식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청춘드라마를 보며 풋풋함을 느끼는 동시에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이 밀려오는 것도 느꼈다. 아까워 하던 이동시간과 이동비용에 무뎌져 도로에서 버리는 시간에 비교적 덤덤해졌다. 작은 호의라면 작은 물질로 보답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배웠고 반대로 친한 친구끼리는 고마움을 간직했다가 다음에 갚으며 우정을 돈독히 했다.

한편 아직 감정이나 표정을 숨기는 것에 미숙하고,  생각과 다른 것은 받아들이는  시간이 리는 것은 여전하다. 문제가 생겼을  해결하는 방향을 찾기 위해 힘을 모으기 전에  그런 건지 누가 그런 건지를 찾는 경향도 여전히 있다. 친구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기꺼이 내어놓지 못하고 아직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긴다. 이런 미숙한 점들이 오히려 나를 아직은 혈기 있는 서른으로 만들어주는  같다.


서른의 가장 큰 깨달음이라면 시간이 많은 것과 해를 많이 쬐는 것이 가장  럭셔리라는 이었다. 일주일에 최소 40시간은 회사에 묶여있었던  5년이 은 얼마 전, 이직을 하며  20 간의 휴식을 가졌다. 오미크론과 강추위 덕분에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과 동네에서만 배회했는데  때의 나는 너무 지쳐서 해외여행을   것이 생각한만큼 아쉽지 않았다. 이직하며 발리   살이 하는 것이 나의 20 후반 소원이었는데도 말이다.  대신 일상에서 즐기는 소중한 사치를 경험했다. 통창으로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오전 필라테스 스튜디오에서 개인강습을 받은 것은 가장 선명한 럭셔리한 기억이다. 돈을 위해서는 시간을 포기해야 하고 시간을 위해서는 돈을 버려야 하는 현실에서, 돈을 신경쓰지 않고 시간을 보낼  있는 것만큼 얼떨떨하고도 만족스러운 경험은 없었다. ,  위에서 내려쬐는 해가 있을   경험은 비로소 빛을 발할  있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았다.   해는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았다. 내가 벌려놓은 일들을 떠밀리듯 마무리지었지만 직장에도 주거에도  변화가 있었다.   목표했던 굵직한 변화는 모두 이루었고 사람  명이나 반려동물  마리 정도는 책임질  있을 만한 여유도 생겼다. 그러고 나니 이제야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 그냥 주변의 친구들처럼 친구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에 많은 가치를 두고 살면  되는 ,      없이 살면서 편협하고 예민해지는 나를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해 유난히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나의 3년치 연말 정리글을 찬찬히 읽어 보면서 이런 결론에 다달았다. 매년 나의 연말정리는 전년과 달랐지만 하나씩 얻고 읽은  있었다.  해는 많은 성과를 얻었지만 되돌아보는 동안 오히려 공허하고 불행한 감정을 느꼈다. 반면 작년에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일년이었다고 적어두었다. 득과 실이 명확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매년 달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템포씩 늦추어 가도 괜찮지 않을까?  템포 늦추는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다지고 나의 각형을  골고루 분포하도록 만들어준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느끼지 않았는가? 어떤 해는  쉬고 친구들에게 집중하고,  어떤 해는 커리어에 집중하고,  어떤 해는 투자와 자기계발에 집중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북극성은 필요할 것이지만(나의 경우  북극성은 엄마에게 떳떳한 )  평생  방향으로만 달려갈 필요는 없다.


다만, 일 년 간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을 일은 막고싶다. 내 경우에는 되돌아 기억했을 때 혼자 유튜브를 보거나 웹서핑, SNS를 한 기억은 “아무 것도 안 한” 기억이 되었이 되어 일상을 빈약하게 만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 일상의 기억을 굵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상에서 뭘 하든 쇼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하는 기억만은 최소한으로 할 것이다. 똑같이 두 시간을 쉬더라도 빔으로 영화를 보며 와인을 마시는 것과 누워서 유튜브 보는 것에 대한 기억의 퀄리티는 다르다.


이런 생각으로 내년의 목표를 생각해 보자면, 내년의 나는 커리어든 투자든 더 많은 일을 벌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더 많이 전할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내 시간을 더 아낌 없이 줄 것이고, 선물도 자주 할 것이다. 내 자신에게도 관심과 정성을 듬뿍 줄 것이다. 홈트와 필테를 믹스하여 운동을 최소 10분이라도 일주일에 5번은 할 것이고 가능하면 내가 요리해서 먹을 것이다. 잠을 충분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잘 것이다. 그 대신 영어 하나만은 열심히 할 것이다. 아침 데스크타임루틴을 다시 살려서, 아침에 꾸준히 영어를 공부해서 어려운 미드나 슬랭이 많이 섞인 팟캐스트를 자막 없이 들을 수 있고, 회의를 긴장하지 않고 리딩할 수 있을 만큼 영어와 자연스러워 질 것이다. 영어로 글 쓰는 것에 익숙해 지고 가능한 회사 문서는 영어로 써 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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