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울공주의 생일이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카이코우라로 향했다. 뉴질랜드의 센트럴오타고 피노누아가 너무 맛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버린 우리는 가는 길에 작은 와이파라 라는 마을에 잠시 멈춰 서서 와이너리 두어 곳을 들리기로 했다. 이미 센트럴오타고는 예저녁에 지나버린 후였지만 그나마 피노누아가 유명한 아래쪽 산지 중 마지막을 들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와이파이라 페가수스 와이너리에 들렀다. 잘 가꿔진 넓은 정원을 지나 통나무 로지가 나왔다. 오래되고 큰 영국식 별장 같은 로지였다. 안에 들어서자 멋진 통나무로 마감된 벽과 천장, 그리고 넓은 창이 눈에 들어오고 왼쪽에 테이스팅룸이 따로 있었다. 운전을 해야 하니까 우리는 테이스팅 하나만 해서 나눠 먹었다. 뉴질랜드는 음주운전에 대해 우리나라보다 너그러운 편이라 와인 한 두 모금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잔 하나에 와인을 차례대로 따라 주며 설명해 주는 형식이었는데 설명을 들으며 바로 와인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참 좋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페가수스의 피노누아. 우리의 짐 속에 이미 와인 두 병이 있지 않았다면 아마 피노누아를 한 병 샀을 것이다. 55달러로 다른 와인에 비해 그리 저렴한 편은 아니었지만 맛에 비하면 괜찮은 가격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테이스팅을 마치고 다른 평이 좋은 와이너리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하얀 목조건물 주방 앞에 넓게 펼쳐진 초록 정원 위에 테이블과 라이브공연가수가 컨트리음악을 부르고 있는 목가적인 곳이었다. 손님은 거의 100% 나이 많은 백인들이었다. 이미 만석이라 30분 정도 기다리면 자리를 줄 수 있다고 했지만, 4시까지 카이코우라에 도착해야 했던 우리는 아쉬운 배를 부여잡고 차에 올랐다. 나는 와인테이스팅도 했지만 첫 번째 페가수스와이너리가 인상 깊어서였던지 두 번째 와이너리는 기억에 크게 남지 않았다. 오히려 카이코우라로 마저 이동하면서 오손도손 먹은 체리와 감자칩이 기억에 남는다.
200km를 달려 도착한 카이코우라. 우리가 가장 먼저 간 곳은 Dolphin encounter center였다. 뉴질랜드에 가장 기대한 것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돌고래와의 수영이었다! 바다에서 야생 돌고래와 수영을 할 수 있다니, 환상적이다. 다만 가장 기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예약은 하지 않은 탓에 수영을 하지 못할 뻔했다. 출발 며칠 전 잊고 있던 돌고래수영을 예약하려고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이미 자리가 다 찬 후였다. 파워 P인 내가 누굴 탓하리오..
그나마 같은 배에 돌고래를 보는 자리는 아직 남아있어서 그걸로 예약해 두고 애원하는 메일을 썼다. 뉴질랜드 법규 상 한 번에 수영할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어서 그걸 초과해서 넣어줄 수는 없지만 대기목록에 올려주겠다는 답이 왔다. 대기목록에 올렸으니 괜찮을 거야 싶다가도 혹시 자리가 나지 않으면 어쩌나 여행 중 틈틈이 조마조마했다. 정말 다행히도 이틀 전 자리가 났다는 전화를 받고 예약을 확정할 수 있었다. 트위젤에서 점심을 먹던 중 공주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고 다행히 놓치지 않고 받아 예약을 완수할 수 있었다. 추가금 계산을 전날 4시까지 해야 해서 이렇게 급하게 달려온 것이었다.
다행히 시간 맞춰서 결제를 마치고, 편한 마음으로 물개를 보러 갔다. 카이코우라는 뉴질랜드에서도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 뉴질랜드 사람들이 휴양지로도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볼거리 중 하나는 바로 Seal Colony. 넓적한 바위가 펼쳐져 있고 그 위에는 물개들이 널브러져 있다. 나도 저녁에 햇빛을 쐬며 누워있는 물개를 두 마리나 보았다. 유유자적하게 누워있는 물개들.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구경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일(누워있기)을 한다. 나는 이날 두 마리의 물개를 보았는데 그중 한 마리는 두 발로 기어 다니기도 하고 하품도 해서 너무 귀여웠다. 점점 바람이 거세져서 숙소를 향했다.
도착한 숙소는 말 그대로 오 마이 갓. 뷰가 미쳤다. 너무너무 멋진 뷰에 입이 떡 벌어졌다. 숙소의 이름이 clifftop이었는데, 말 그대로 절벽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집이었다. 눈 아래로 카이코우라의 비치와 비치 안쪽을 따라 형성된 시내의 건물들, 비치 뒤로는 겹겹이 쌓인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서 이렇게 멋진 뷰를 내려다볼 수 있다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뷰만 봐도 행복할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누워서 한참을 뷰를 감상하다가 카이코우라에 유명하다는 Crayfish라는 바닷가재의 한 종류를 먹으러 갔다.
카이코우라라는 이름 자체가 마오리어로 Kai=eat, Koura = Crayfish로 ‘바닷가재 먹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옛날에 마오리족이 뉴질랜드에 정착했을 때 이곳에서 바닷가재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지역의 이름에도 들어갈 만큼 유명하다면 꼭 먹어야지! 공주의 생일이니까 고심해서 고른 곳을 찾아갔다. 캐주얼한 분위기의 식당에서 버터에 맛드러 지게 구운 바닷가재와 진한 시푸드차우더를 만족스럽게 먹었다. 물과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에 들어가는 길. 행복하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돌고래를 보러 가야 해서 일찍 침대에 누웠다. 눈앞에 멋지게 펼쳐진 바다와 야경을 보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