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친구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할 때였다. 술래인 내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힘주어 외치고 뒤를 돌아보면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얼음'인 척 연기를 잘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잠깐 사이, 꼭 그 친구가 "야~도!"라고 말하며 내 등을 치곤했다. 멀리멀리 달아나는 친구를 나는 몇 번이나 잡아봤을까. 힘을 다해 쫓아가도 친구는 잡힐 듯 말 듯.
봄의 얼굴은 그 재빠르던 친구처럼 생겼다.
저 멀리서 움직이지 않은 척, '얼음'인 척하던 봄이 등지고 서있던 내게 다가와 있다. 이 짧고도 아름다운, 그래서 조금만 늦으면 놓치기 마련인 찰나의 계절은 어떻게 해야 잘 보내는 것일까.
하루가 지날 때마다 몇 발자국씩 달아나는 봄을 며칠 간이나 누리지 못했다. 큰 아이가 아파서 삼 일간 등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이에게 온 신경이 쏠려있으니 거리의 봄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밤낮으로 끙끙 앓는 아이 옆에서 사실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마음은 납 덩이를 올려놓은 듯 무겁게 내려앉았다. 새 학년 첫 달부터 며칠 씩 등교를 못 하고. 뒤쳐진 수업은 그냥 건너뛰어버리는 건 아닐지, 계절이 바뀔 때면 한 번씩 앓는 아이에게 무얼 챙겨주지 못했는지, 아이 앞에서 내색할 순 없어도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나마 아이가 아픈 날들이 마감이 있던 일이나 중요한 일정들과 겹치지 않았던 것을 다행이라 해야 할까. 베란다 문을 열면 창 밖의 온도는 분명 따뜻해져 있었는데도 마음의 온도는 겨울의 추위를 벗어나지 못한 듯 차갑게 느껴졌다.
그렇게 하루이틀을 보내고 삼일 째 등교하지 못한 날,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제 열도 떨어지고 별다른 증상도 보이지 않던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필요했던 것은 잠시라도 걷는 일이었다. 집 밖의 햇살은 봄빛을 가득 품고 있었고 스치는 바람은 이제 냉기가 다 빠져나가 훈훈했다. 바깥을 거닐며 숨 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봄이 우리를 기다렸나보다. 술래인 내게 잡히지 않으려고, 멀리 달아나기 바빴던 친구. 다가왔다가 금세 가버리는 봄은 그런 친구인 줄만 알았는데. 실은 "노~올자"하며 우리 집 현관 밖에서 먼저 기다렸나보다.
"와아, 벚꽃이 이제 필 준비 다했다!"
"이 꽃은 매화야. 벚나무보다 작은데 꽃은 항상 먼저 펴."
"이 노란 건 산유화고. 저기 건너편에 개나리는 벌써 다 폈네!"
이제 막 피어오른 꽃들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던 내가 말이 점점 많아지자, 아이도 시선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곤 신기한 듯 물었다. 엄마는 어떻게 꽃 이름들을 다 아냐고. 그럼, 알고 말고. 엄마가 몇 번째 맞는 봄인데. 그러고 보니 아이에게는 그동안 봄꽃들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것 같았다. 아이와는 올해로 열한 번째 맞는 봄이었다. 봄은 이런 거라고, 아이에게 봄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라도 천천히, 자세히 말이다.
벚나무 가지마다 꽃눈이 며칠 내로 팡팡 터질 것 같은 모양이었다. 따뜻한 남쪽에는 벌써 벚꽃이 피었을 테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예상 개화 시기를 찾아보니 4월 첫 주는 넘겨야 했다. 가지 위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꽃눈 뭉치가 꼭 소인국 사람들의 손바닥 같았다. 작고 귀여운 그 손짓들은 이정표처럼 마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켜주었다. 봄의 꽃눈을 보고 있자니 나무의 삶이 필름처럼 스르르 눈앞에 펼쳐졌다. 계절을 따라 꽃을 피우고 잎사귀를 돋우며 열매 맺는 삶. 당연한 듯 보이는 저들의 삶이 실은 한 순간도 멈춘 적 없었다는 것을, 끊임없이 약동하며 움직이는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나무는 자신의 둘레를 키워나갈 것이다. 제자리에서 둥글둥글 넓어지는 삶. 제자리를 지키며 산다는 일은 나무처럼 품을 넓히는 일이구나. 나무의 삶을 바라보며 닮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학교를 쉬는 대신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난 아이와 무얼 할까. 걸으며 잠시 궁리했다. 밖에서 점심을 함께 먹을까 하다가 불쑥 동네 안경점에 들어갔다. 놀다가 늘어난 탓인지 아이 안경이 얼굴에 잘 맞지 않는 상태였고 렌즈도 바꿀 때가 된 것이다. 이런저런 눈 검사를 하고는 아이 얼굴에 어울릴만한 안경테까지 새로 골랐다. 옷과 책가방, 신발까지 아이는 요즘 검은색에 꽂혀있다. 화사한 봄이건만 어울리지 않게 블랙 사랑 중인 아이를 그래도 지지해 주는 것. 그것이 나의 역할일 것이다. 역시 아이는 까만 안경테부터 집어 올렸다. 마음에 쏙 들었는지 아이는 새 안경을 쓰고는 싱글벙글, 앞이 엄청 잘 보인다며 좋아했다. 이전보다 더 잘 보게 된, 아이를 바라보며 나도 행복했다. 여기저기 피어난 봄을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우리 더 잘 보자. 두 눈과 마음을 크게 열고. 봄을 '봄'이라 부르는 것도 '보다'에서 유래했다고 하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늘 가던 과일 가게에서 딸기와 방울토마토 한 상자씩을 샀다. 건너편 떡집에서는 경단을 사고. 오랜만에 보는 과일 가게 사장님이나 떡집의 아주머니는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저 일상적인 인사말을 들었을 뿐인데도 에너지를 얻은 듯 힘이 났다. 제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읽을 수 있는, 성실한 삶의 리듬은 그대로 내게 위로가 되었다. 나무를 닮은 사람들이었다.
봄을 따라다닌 오후, 일 년만에 돌아온 친구의 손을 놓칠세라 더욱 꽉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