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좌절의 시대, 질문하며 살기
장강명, <미세좌절의 시대>
장강명 작가의 '미세좌절의 시대'는 2015년부터 2023년까지, 8년 간 신문 칼럼에 연재된 글을 한 데 묶은 산문집이다. 이 책은 일간 신문 칼럼보다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보다 자유로운 산문에 가깝다. 책 표지에도 제목 아래 '장강명 산문'이라고 적혀있다. 작가의 시선과 통찰이 날카롭고 신선해서 책 내용 중에도 배울 점이 많았다. 하지만 장르가 칼럼 형식의 산문이고 1, 2부는 사회와 정치, 경제와 문화를 아우르는 소재를 연달아 다루어 소화하기 좀 벅찼다. 그러느라 어떤 감동을 느끼기보다는 다소 건조하고 팍팍한 마음으로 읽었던 것 같다.
'미세좌절'이란 조어는 장강명 작가가 지었다고 한다. 기자 출신 소설가다웠다. 그가 쓰는 어휘나 문장은 일간지 속 헤드라인처럼 직설적이고 의미가 분명했다. 제목의 임팩트가 작가의 전작들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을 찾기 위해 타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대한민국 젊은이를 그린 소설 '한국이 싫어서'나 문학상과 공채 시스템의 민낯을 파헤쳤던 르포 '당선, 합격, 계급'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책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 이 작가의 책은 제목만큼은 수년이 지나도 잘 잊히지 않는다.
이 책도 그럴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미세좌절'이란 작가의 신조어도 미세먼지나 미세플라스틱처럼 우리에게 일상어처럼 쓰이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제목의 힘은 책의 마지막 장까지 집중해서 넘길 수 있도록 내 안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작가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미세좌절의 시대'란 구체적으로 어떤 시대를 말하는 것인지.
"이제 사람들은 개인 차원에서 시나리오 경영을 내면화한 것 같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일단 계획을 세우고, 상황이 바뀌면 그때마다 수정하자. 그렇게 불확실성을 품어보려 하나 부질없다. 우리의 시간표는 전보다 더 촘촘하다. 전체 일정이 외부 변화에 그만큼 더 취약해졌다는 의미다. 통신수단이 발달하며 약속 시간을 변경하기도 쉬워졌다. 타인의 계획이 바뀌어 내 계획이 바뀌고, 내 계획이 바뀌어 또 다른 타인의 계획에 영향을 준다.
그렇게 "인생 참 계획대로 안 되네"라는 말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나는 여기에 '미세 좌절'이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한두 번은 웃어넘길 수 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이게 쌓일수록 제아무리 낙관적인 이도 결국 굴복한다. "시원하게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네." 그 원인을 명확히 짚어낼 수 없기에 더 무력감을 느낀다."(p.95~96)
이제는 정부나 기업도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인다는 '시나리오 경영'을 내세운다. 가치 중심이 아닌 '생존'을 위한 대책을 강구한다. 장강명 작가는 지금의 시대가 그 어느 때보다 급변하고 있어 개인 역시 미래 사회를 예측하기 힘들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에 더 자주 무력감을 느낀다고 보았다. 결국 책의 핵심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무력해진 보통사람들의 돌파구는 어디에 있는가를 논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200자 원고지 10매는 복잡한 사유를 풀거나 논증을 치밀하게 펼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입니다. 말하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풍성하게 들기조차 어렵습니다. 거친 일반화를 하면서 의견을 제시해야 하고(인간에 대해서든 사회에 대해서든, 분석과 진단은 모두 일반화 과정을 거쳐 나옵니다). 정밀한 근거를 충분히 들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저는 남들이 다 옳다고 인정하는 주장을 보충하기보다는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거나 토론 거리를 제안하고픈 욕심이 있었습니다. (p.6)
서두에 나오는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 책은 '매사에 회의적인 사람이 점점 불확실해지는 시대 앞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막연한 질문들'이라고 한다. '혼미한 시대', '어떤 나라를 꿈꾸는가', '우리는 삶을 통째로 긍정해야 할까', '삶이 얄팍해지지 않으려면'. 이렇게 총 4가지 굵직한 주제가 책의 얼개를 이루는데 각각의 주제에 해당하는 칼럼들이 흥미롭게 읽힌다.
나는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가. 아니면 살아지는 대로 그저 생각하는가.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한 번 되짚어볼 수 있었다. 작가는 복잡하고 빠른 현대 사회를 사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글쓴이인 자신에게 잘 벼린 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물론 질문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책에 없다. 에필로그에서도 작가는 결국 '살아야 하는 이유'를 계속 치열하게 찾아야 하는 삶, 동시에 이와 같은 노력이 불러일으키는 긴장 상태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p.430)
그런데 내 안에서 솟은 질문 하나. 막상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 헤매고 있다면 정말 어떡하나. 이 점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이면서도 인생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일까. 결국 인간사 고민의 원점으로 다시 되돌아간 것 같은 책의 결론에 허무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질문 둘. 그렇다면 좌절과 포기는 다른 걸까. 찾아보니 좌절과 포기는 사전상 의미가 달랐다. '좌절'이란 어떤 계획이나 일이 도중에 실패했을 때, '포기'는 하던 일을 스스로 그만둘 때 쓰는 말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좌절의 동기는 외부 환경과 상황이지만 포기의 동기는 자기 자신이다. 지금이 '미세좌절의 시대'라지만 무언가 섣불리 포기하지는 말자. 도전과 포기는 개인의 선택 가능한 영역이므로. 스스로 회의적이라 말하는 작가가 던진 예리한 질문들은 결국 삶을 향한 진한 애착으로 돌아오도록 회로 역할을 한다.
사람이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조건이자 자랑할만한 것은 '성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 내가 속한 공동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합리적이고 지속적인 의심을 멈추지 않는 것. 하루를 잘 정돈할 수 있는 건강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 그래서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아보는 것. 책을 읽고서 내가 찾은 희망이자 돌파구는 이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야근에 시달리는 회사원, 육아에 지친 부모, 학원 다니느라 바쁜 학생들을 나는 가슴검은도요새가 지켜보는 물가 갈대숲으로 데려가고 싶다. 그 순간 그들이 홀로 됨을 벅차게 느끼도록 하고 싶다. 그런 그윽하고 감미로운 고독을 선사하고 싶다. ('외로움 담당 장관'이 된다면, p.17)
문학이 싫어하는 것은 '심오로움'이라기보다는 '진부함'이다. (심오롭고 공허한, p.125)
이들이 외치는 구호는 나라에 따라 달라서 어디서는 좌파, 어디서는 우파로 불리는데, 실체는 지적 게으름과 비겁함이다. '선하고 순수한 우리와 사악한 저들'이라는 나르시시즘이 그들의 진짜 이념이다. (선하고 순수한 우리와 사악한 저들, p.183)
악마만 디테일이 있으랴. 모든 게 디테일에 있다. 그러므로 디테일을 알아야 한다. 디테일은 넓고 많고 다채롭고 일견 무질서해 보이기 때문에 제대로 파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노력도 많이 든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디테일을 조사하고 이해하는 노력을 우리는 '공부'라고 부른다. (실력은 디테일에 있다, p.203)
내가 막연히 이해하기로 신실함은 '깊이'와 관련이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나, 어떤 주제를 탐구하는 일에서나, 목표를 추진하는 데에서나, 대상을 넓고 얕게 쫓는 사람을 우리는 신실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n잡을 갖고, 숏폼 콘텐츠 플랫폼을 누비고, 트친, 페친, 인친들과 소통하면서 견지하기는 어려운 삶의 자세다. (신실함에 대하여, p.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