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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 덮는 밤

오래된 사랑 한 장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by 혜일
그건 이미 단풍이 아니었다. 고향 마을의 청결한 공기, 낮고 부드러운 능선, 그 위에 머물러 있던 몇 송이 구름의 짧고 찬란한 연소의 순간이 거기 있었다.

어쩌면 그건 기억도 상상도, 그 두 가지의 혼동도 아닌 이해가 아니었을까? 나의 어릴 적의 그 울음은 자연의 신비에 대한 나의 최초의 감동과 경외였다는 걸 살날보다 산 날이 훨씬 더 많은 이 초로의 나이에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115)



"엄마, 내가 하려고 그랬는데. 언제 다 정리하셨어?"

"어느 날인가 밤에. 한참 정리했지."


추석 연휴, 짐을 챙기고 친정 집을 나서던 시간이었다. 엄마가 내게 비닐로 된 봉투 하나를 건네셨다. 서서 봉투 안을 들여다보니 사진 꾸러미가 한가득이었다. 백일 사진부터 고등학교 졸업식까지. 내 얼굴이 박혀있는 사진은 전부 그 비닐봉투 안에 들어있었다. 식구들 사진이 워낙 많아 날 잡아 함께 정리하기로 했는데 엄마의 손은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또 부지런히 움직이셨던 것이다.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인지 무언가 기록으로 남기길 좋아한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며 사진과 영상 촬영은 일상이다.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 동영상을 많이 찍어둔 덕분에 길 막히는 차 안에서나 무료한 시간에 자주 함께 보곤 한다. 작은 아이는 아기 얼굴을 한 자신이 예뻐 죽겠는지 같은 영상을 보고 또 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가 이때의 엄마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아이가 그렇게 말하는 연유를 나도 짐작하겠다. 영상 속에서 나는 주로 목소리로 등장했다. 그런데 내가 들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목소리다. "그랬~어?", "아유, 잘하네!", "오구오구~ 그렇지." 이불 위에서 뒤집기를 하곤 의기양양해서 옹알이를 해대는 아이에게 나는 한껏 높아진 톤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반응해주고 있는 것이다. 영상 속의 내 목소리만으로도 아이는 사랑을 느끼고 확인하는 듯하다.



반면, 나의 어린 시절은 영상으로 기록된 것이 하나도 없다. 지금 기억할 수 있는 나의 가장 어린 시절은 6살 무렵인데 그 이전의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많이 궁금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긴, 이전엔 없던 목마름이었다.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 동영상을 돌려보듯 나의 어린 시절도 그렇게 들춰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까움이 일곤 했다. 나는 그저 어른들의 증언 몇 가지로 그 시절을 상상해볼 따름이었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엄마에게서도 "너는 귀여웠지.", "바나나킥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같은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가끔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집에 오는 길, 차 안에서 엄마가 건네 준 사진들을 천천히 넘겨보았다. 내 사진은 사실 두 종류뿐이었다. 대부분 유치원 견학이나 생일잔치, 입학식과 졸업식 같은 행사 사진이었고 그 외에는 거의 집 안이나 주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걷기 전, 아기일 때 사진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이 뒤섞인 사진들이 어느 정도 말해주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옛 사진이지만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았다.



시간상 가장 오래된 가족사진에 눈길이 머물렀다. 정성스레 차려진 돌상 앞에는 조바위를 얌전히 쓰고 엄마 품에 포옥 안긴 내가 있었다. 그 옆에는 심통이 난 듯 딴 곳을 쳐다보는 두 살 위 언니가 있었고. 두 손에는 누군가 언니를 달래려고 선물을 쥐어준 것 같았다. 집 안 할머니들은 아침부터 떡을 준비하시느라, 엄마는 어린 두 딸을 돌보느라 정신없으셨겠지.



시기를 계산해보니, 내 돌이 지나고 한 달 반 뒤에는 여동생이 태어났을 것이다. 그러니 엄마는 사실, 사진 속에서 두 아이가 아니라 세 아이를 품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안겨있는 나는, 엄마라는 세상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을 받고 자랐을 것이다.



오래된 '사랑 한 장'에 마음이 한동안 먹먹했다. 얼마 전 여행지에서 탔던 곤돌라가 생각났다. 티켓을 끊고 곤돌라 안에 몸을 싣자, 거대한 숲을 이룬 산과 머플러처럼 산봉우리를 휘감은 구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공중에 떠서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흰 눈이 푸른 산을 뒤덮은 모습을 상상했다. 어린 시절의 빛바랜 사진 한 장도 곤돌라 티켓처럼 내 삶을 새롭게 조감해볼 수 있게 했다. 사진이라는 티켓을 통해 바라본 내 인생의 봄은 그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풍경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여태껏 만난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은 나에게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공상하게 했지만 살날보다 산 날이 훨씬 더 많은 이 서글픈 나이엔 어릴 적을 공상한다. 이 서글픈 시기를 그렇게 곱디곱게 채색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내가 만난 아름다운 것들이 남기고 간 축복이 아닐까?

예사로운 아름다움도 살날보다 산 날이 많은 어느 시기와 만나면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다는 신기한 발견을 올해의 행운으로 꼽으며, 1982년이여 안녕.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115~118)



박완서 작가 역시, 종종 어린 시절을 공상하길 좋아했던 것 같다. 특히 살날보다 산 날이 훨씬 더 많은

'서글픈 나이'에, 불현듯 깨달은 어린 시절의 기억은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치환된다. 세월이 흘러 어쩔 수 없이 풍화된 기억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나는 순간이 되어 찾아오는 것이다.



사진으로 미처 기록되지 못한, 어린 날들을 떠올려본다. 기록으로 붙잡지 못했더라도 이제는 아쉽지 않다. 나를 통과한 시간 자체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나를 지금껏 자라게 한 그 모든 시간들을.



먼 훗날, 나의 하루를 곱디 고운 색으로 덧입혀줄 물감은 대체 어떤 기억들일까. 나 역시 예사롭게 지나쳤던 생의 아름다움을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이해하며 경탄할 수 있을까. 인생의 사계절을 그렇게 지혜롭게 통과하고 싶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엄마에게 받은 사진들이 더없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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