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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 덮는 밤

여름의 소리, 내 안의 소리

파커 J.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by 혜일


"만약 당신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면 그 안으로 뛰어드세요!"

강사의 말은 너무나 강렬해서 내 머리를 그냥 스쳐지나 내 몸으로 뚫고 들어와서는 내 다리와 팔을 움직이게 했다. 나를 구하러 날아올 헬리콥터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절벽 위의 강사가 로프를 당겨 나를 끌어올려 주지도 않을 테고, 땅으로 사뿐히 나를 내려놓을 낙하산을 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어려움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그 상황 속으로 뛰어드는 것뿐이었다. 내 발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후 나는 안전하게 내려왔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 파커 J.파머, p.160>


바깥은 여름의 소리들로 가득하다. 전날 밤 내리치던 천둥소리에 세상이 무너지나 싶었지만 새 아침은 이내 찾아왔고, 더 강렬한 소리로 들끓었다. 매미는 이른 아침부터 기운차게 운다. 나에겐 고작 며칠뿐인 시간도 매미에겐 한평생과 같다.



어느 날 저녁, 장을 보고 아이들과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우리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매미 한 마리를 보았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분명 나무에 붙어 있었을 녀석이 그 짧은 울음을 다 울고 죽어 있던 것이다. 매미의 날개는 곱게 접혀 있었다. 저 날개는 다 펴진 부챗살처럼 그렇게 활짝 펴 본 적이 있을까. 한 번이라도.



여름이 다가오면 가끔씩 베란다 창 방충망에 매미가 붙어있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매미는 날 수 있는 곤충인데. 매미가 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는 궁금했다. 매미가 성충이 되기까지 꿈꾼 것은 하늘을 잘 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생애 동안 잘 우는 곤충이 되는 것이었을까. 오직 자신의 울음소리 하나만을 잘 단련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을까.



죽은 매미를 보며 자연스레 생각했다. 평생이란 것은 참 짧고, 언젠가 끝이 있구나. 그러니 잘 살아야지, 그래야지 하면서도 내 안에서는 도통 확실한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삶의 의미와 방법을 찾다가 현재의 삶을 의심하고, 종국에는 맨홀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대기 일쑤다.



살아있는 한, 삶이라는, 온통 질문 투성이인 맨홀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속으로 뛰어드는 방법이 있었다. 눈 딱 감고. 삶이란 것은 어둡고 캄캄해 보이지만 반드시 착지할 곳이 있는 구멍이었다. 그러니 날아오르는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말자고. 살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높이, 높이 비행기처럼 나는 일이 아니라 안전하게 도착할 착지를 찾는 일이 아닐까 하고.



미국의 작가 파커 J. 파머는 40대 초반,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빠지려 할 때 일주일짜리 극기 훈련에 참가하게 된다. 훈련에서 그는 절벽 끝에서 혼자 내려오는 극한 체험을 한다. 다 끊어질 것처럼 보이는, 너덜너덜한 밧줄 하나만 허리에 묶은 채로.



상상만 해도 두려움이 몰려온다. 하지만 그는 절벽 위에서 강사가 조언해주는 대로, 최대한 몸을 뒤로 젖힌 채 하늘을 바라보며 발을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 내려왔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절벽 한가운데 붙은 바위 표면에 깊은 구멍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계속 내려가려면 그 구멍을 돌아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막 절벽에서 발을 떼는 것에 익숙해진 찰나, 몸을 돌려 구멍의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아서 내려오는 방법은 그에게 '죽음'과도 같은 공포였다. 그때 절벽 위의 강사는 이렇게 외친다.



"만약 당신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면 그 안으로 뛰어드세요!"



파머는 자신 앞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자신밖에 없음을 잘 알았다. 강사의 말대로, 눈앞의 어려움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그 상황 속으로 뛰어드는 것뿐이었다. 그는 발을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 구멍 안으로 들어갔고 몇 분 후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파머는 이와 같은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어둡고 험난해 보이더라도 자신의 내면 속으로 여행을 떠나라 권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처한 내적인 상황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그것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탈출구는 안으로, 아래로 향하는 영적 여행길의 과정 속에 있다고 말한다.(p.160)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 맨홀 안처럼 답이 보이지 않는 삶의 질문에 고민하던 시간들이 많았다. 주어진 역할과 오랫동안 꿈꿔왔던 사회적 역할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며 살아야 할지 방황했다. 고민하고 선택하는 일이 힘들어 누군가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살라면 세상 편하겠다 싶은 어리석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세상과 타인의 목소리에 길들여진 삶은 곧 자유를 빼앗긴 삶이다. 다양한 삶의 갈림길 앞에서 고민하는 순간들은 어른이 된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주어진 자유에 대한 책임이다.



이런 속에서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들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중요하면서도 분별력을 잘 키워가야 하는 고된 훈련이다. 여전히 내 안에는 더 높이 날아오르려는 욕망과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욕심이 혼재하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유독 존재감을 드러내는 매미를 다시 떠올려본다. 나무 기둥에 찰싹 붙어 폭포 소리처럼 울어대는 매미를 보면 '잘 먹고 잘 사는 법'도 중요하지만 '잘 울고 잘 떠나는 법'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세상에 태어난 고유한 존재.

밖이 아닌 내 안에서 울려퍼져나오는 목소리로 울기.

그 본성대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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