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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만 사는 집

캠핑의 이유

by 혜일

어린이날, 연휴를 이용해 멀지 않은 곳으로 캠핑을 갔다. 직접 텐트를 치고 숙식을 해결해 본 캠핑으로는 어느새 네 번째. 돌아올 즈음에는 피곤하지만 자연의 표정과 소리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캠핑이 좋다.



이번 캠핑 장소는 1분만 걸어 내려가면 파도가 넘실대는 해수욕장 근처였다. 미리 1박을 예약하고 도착했지만 다음 날 정오 퇴실이란 사실이 아쉬웠다. 텐트를 치고 숙박과 식사가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데만 두 시간 가까이 소모되니. 반대로 텐트를 걷고 떠날 준비를 하는 일에도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바닷가 근처라 여느 때보다 바람이 불었다. 흐린 날씨까지 더해져서 캠핑장은 초겨울처럼 쌀쌀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텐트 치는 일이 즐거웠다. 목장갑을 끼고 짐을 나르며 힘을 쓸 때마다 오히려 몸이 가뿐해지는 기분이었다.



펄럭이던 텐트에 길고 짧은 봉을 끼우고 팩을 박아 고정시키니 네 사람이 머물 집이 지어졌다. 테이블과 의자, 주방도구를 세팅하고 전기 릴선까지 갖추니 집이라 할 만했다. 단, 이틀만 살 수 있는 집이었다.



눈앞에서 텐트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니 안 되겠다 싶어 관리실로 달려갔다. 하루 더 연장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다음 날에는 예약 손님이 없어 연장이 가능했다. 잠은 하루만 자고 오후 느지막이 캠핑을 철수할 계획이었다. 무한정 이곳에 머물 수 있는 게 아니니 매 순간이 소중히 다가왔다. 누릴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며 행복을 만끽하자 다짐했다. 다음 날 저녁 즈음에는 이 집은 분명 감쪽같이 사라질 테니까.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모닥불 앞에 함께 둘러앉았다. 화로 위에 올린 장작이 활활 타오르니 모두의 시선과 마음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부쩍 커 있음을 실감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큰 아이가 "올해가 나한텐 마지막 어린이날이죠?"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열세 살 아이는 어느새 변성기가 찾아와 날마다 낮고 굵은 음색이 짙어지고 있다. 그 모습이 마냥 신기하기도, 낯설기도 한 요즘이었다. 내년 어린이날에도 캠핑을 올 수 있을까. 중학생이 된 큰 아이는 또 얼마나 달라져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앉은자리에서 고개를 들어 달과 별을 찾았다. 하얀 반달이 머리 위 나뭇가지에 꼭 걸터앉은 모양이었다. 까만 밤하늘 한 곳을 한참 바라보았다. 삼십 초쯤 바라보자 일 곱개의 별이 국자 모양으로 반짝였다. 북두칠성이었다.



모닥불과 밤하늘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데 작은 아이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캠핑에 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무얼 할 때 제일 좋으냐고. 형과 아우는 거의 동시에 '소고기! 불멍! 마멜(마시멜로우 굽기)!'을 외쳤다. 줄임말과 단답형을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 말투에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편 역시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고.



"엄마는?"


작은 아이가 내게 다시 묻는다.



"엄마는... 이렇게 아빠랑 너희들이랑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제일 좋아."


진심 한 컵에 용기 한 스푼을 살짝 얹어 대답했다. 내 말에 남편과 아이들은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웃었다. '함께'라는 말이 가진 따스함이 모닥불처럼 주변 공기를 훈훈하게 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걸. 그러니 곁에 있을 때 최선의 사랑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도 결국 잊고 살 때가 많은 사실들. 이 평범한 진리가 새삼 사무치게 와닿았다. 캠핑장의 밤이라는, 유한한 공간과 시간 안에서. 아름답고도 아쉬운 밤이 꿈처럼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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