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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형준 변호사 Mar 09. 2020

여행의 이유(김영하)

삶에 대한 태도

제가 3살 즈음에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남원역에 가서 순천행 기차를 탔다가 몇 일간 미아가 된 적 있었다고 합니다. 큰일 날 뻔했지만 제 생애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했던 일이었겠지요.     


인생길 따라 걸어오다 보니 2019년에는 스페인에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약 11년 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를 하고 지금 아니면 언제 해외여행을 해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해 보며 시작된 여행이었습니다.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정말 아쉽고, 서운했습니다. 마드리드 솔 광장(푸에르타 델 솔) 인근에 시계탑 건물이 있는데 그 앞 바닥에 마드리드 정 중앙임을 나타내는 킬로미터 제로 표식이 있습니다. 스페인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모든 도로의 기점이 바로 이곳이라고 합니다. 위 표식에 발을 올리면 마드리드로 다시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발을 맘껏 올려보았습니다.       


제가 평범한 일상을 기준으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다녀본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행의 이유”라는 책은 각 여행지의 정보를 소개하거나, 각 여행지에서 경험하게 된 일, 느낀 점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책은 아닙니다. 김영하 작가는 인생 여정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은 글쓰기와 여행이었는데, 글쓰기에 관해서 쓸 기회가 많이 있었지만, 여행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해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영하 작가는 많은 시간을 보낸 “여행”이 작가의 인생 여정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관해서 정리를 해보려는 차원에서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82면)

사람들이 여행을 하게 되는 목적은 저마다 다를 것이지만, 여행의 시작점에서 느끼는 설레임, 일상에서 벗어난 것으로 인한 완화된 긴장감 등은 여행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공감할 것입니다. 여행의 목적 범위 내에서 얻게 되는 또는 여행 중 의도치 않은 일들이 발생하면서 얻게 되는 생각들과 감정들이 일상 속에서 쌓여 있던 힘듦을 완화 시켜주고, 쉼을 얻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일상을 벗어난 여행이 여행자를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일상과 온전히 느낀 현재들이 쌓여 각자의 삶 속에 자신의 모습으로 투영되는 것 같습니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117면)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생각과 마음 사이를 여행하고 돌아옵니다. 영화 속에 빠져들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기도 하고, 미래로 가기도 합니다. 현재 제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전혀 다른 인물이 되는 여행을 떠났다가 끝임을 알리는 자막이 올라오면서 현실로 돌아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여행하는 경험을 합니다. 일상 속에서도 언어를 매개로 수많은 여행을 하게 됩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에서 척 놀랜드(탐 행크스)는 윌슨(배구공 친구)과 함께 무인도에서의 외로움을 달랩니다. 척 놀랜드(탐 행크스)는 친구 윌슨과 함께 무인도에서의 지루할 것 같은 일상 속에서도 썰물에 무엇이 밀려올 것인지 기대하면서 살다가, 극적으로 구조됩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여행 시작 전에 느낄 수 있는 설레임은 제 개인의 능력 밖의 어떠한 일들이 언젠가는 긍정적으로 밀려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도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김영하 작가가 “그 많았던 여행”의 이유를 찾기 위해 사유한 끝에 도달한 곳은 삶에 대한 태도입니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213면)    


코로나19로 인해 평범했던 일상이 그리워지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때입니다. 코로나19도 타인의 신뢰와 환대로,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극복되어 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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