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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져니박 Nov 13. 2023

자리 있어요? 문제 있어요?

고객 입장 맞춰 신속하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 필요


자리 있어요?

순우리말로 이루어진 다섯 글자이다. 한자어도 아니고, 콩글리시도 아니고. 그런데 이 질문은 꽤 자주, 실패한다. 질문한 즉시 원하는 답변을 한 번에 얻지를 못한다.


(카페에서)

손님 A : 자리 있어요?
손님 B : 네, 자리 있어요.

손님 A : 저 그럼 이 가방 좀 치워주실 수 있을까요?
손님 B : 앗, 자리 있어요. 일행이 잠깐 화장실 갔어요.
(식당에서)

손님 : 자리 있어요?
점원 : 네, 자리 있어요. 주문 먼저 하시겠어요? 금방 그릇 치워드릴게요.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왜 이렇게 매번 묻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헷갈리는 질문을, 사람들은 하는 걸까? 심지어 같은 사람도 그때그때 '자리 있어요'를 다르게 받아들이더라.


'자리에 (사람이) 있어요'  vs.  '(빈) 자리가 있어요'

전자라면 이미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고, 후자는 내가 바로 앉을 수 있는 상황이다. 다른 사람이 '자리 있어요?' 물어보기 전에 빨리 앉아야 할지도.

출처 : Unsplash의 Klara Kulikova


문제 있어요?


'자리 있어요?'라는 질문은 보시다시피곤하다. 한 번 더 질문을 해야 하거나, 눈치로 상황을 파악해야 하니까.(여기 자리에 있는 가방이 저 사람 거인가? 빈자리에 자기 짐 놓은 것이면 치워주겠지?)


그런데 비슷하게 생긴 질문 중에 '문제 있어요?'라는 질문은 피곤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값비싸기까지 하다.


'문제 있어요?'라는 질문이 프로젝트 준비 단계에 나왔으면 다행이다. 이미 한창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 나온다면 아찔하다. 심지어 다루는 '문제'가 진짜 '돈 몇 천, 몇 억이 깨지는' 서비스 장애나 법적 대응이라면...


그것은 '문제'가 값비싼 것인지, '문제 있어요?' 물어보는 게 왜 비싸냐고 누군가는 되물을 수 있겠다. 질문 그 자체로 값비싸다. 조직의 돈과 시간을 야금야금 까먹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어떤 단계에서, 누구의 입에서 나왔냐에 따라 (합의되었던) 많은 것들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다. 다음 스프린트의 이슈 공유에 그치지 않고, 프로젝트의 목표와 방향, 타깃 고객, 심지어는 산출물 또는 출시될 프로덕트까지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 도마 위에 오른 안건들을 다시 분석하고, 이해관계자와 회의를 하고, 필요시에는 고객 인터뷰나 UT를 다시 해보고...

설령 그 지난한 요리 끝에 찾아낸 '네, 문제 있어요.'가 $억$ 소리 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해도, 요리하는 동안 발생한 비용은 무시 못한다. 기회비용 측면에서, 원래 그 시간과 사람을 들여 할 수 있었던 다른 일, 만들어낼 수 있던 부가가치도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사람 일이라는 게, 문제가 작든 크든 있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돈과 사람을 써서 없던 것을 새로 만들거나, 있던 것을 바꾸거나 없애는 것인데 문제가 없을 수 있나? 그럼... 이 단계에서 저분이 "문제 있어요?"라는 질문을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이지? 무엇이 걱정된 것이지?


출처 : Unsplash 의 Daniel Bradley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최근 팀장님과 원온원(1 on 1, 팀장과 팀원 간 일대일 미팅) 중에 깨달음이 있었다. 현재 PO로서 담당 프로덕트의 정의를 넘어, 선행 프로젝트의 일정과 목표 등 프로젝트 매니징까지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온원, 선행 프로젝트 관련)

팀장님 : 현재 진행하는 선행 프로젝트에 어떤 문제가 있나요?
나 : 네, 주요 이해관계자 의견 수합에 10월 이전보다 1주가량 더 소요되고 있습니다. 10월 중순부터 OO팀의 의견도 반영되면서, 선행 프로젝트의 방향 대한 재검토가 필요했고, 또...

팀장님 : 음, 져니.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계획했던 스프린트의 종료 일자를 넘긴 것도 아니고요.
나 : 아, 부서 간 세부 의견을 조율하고 액션 아이템을 정리하는 데 제 리소스가 더 많이 들어서요.

팀장님 : 그럼 문제가 맞네요. 져니는 다른 일도 해야 하는데, 반복적인 업무나 본인 역할이 아닌 일을 하고 있다면 정리해 주세요. 협업하는 부서 간 역할 정의가 모호하다면 같이 의논해 봐요.
나 :!!!


나는 같은 프로젝트의 같은 문제를, 같은 미팅에서 다루었다. 심지어 첫 번째 발화에 두괄식으로, 어떤 단계에, 얼마나 일정이 소요되었는지 숫자를 갖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팀장님은 오히려 처음에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없다'라고 받아들였다. 


무엇이 달라졌길래,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발화에 '문제가 있다'라고 인지하게 되신 걸까?


내가 어떤 정보에 초점을 두었냐에 따라, 고객 - 팀장님 입장에서 문제가 아니었다가 문제가 맞았기 때문이다.


팀장님 역할에서는 팀원이 주어진 일정 안에 과업을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매니징 해야 한다. 첫 번째 발화에서, 세부 일정이 오래 걸린다 했지만, 프로젝트, 그리고 스프린트의 약속된 기한을 넘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 발화는 달랐다. 내가 맡은 해당 세부 일정에 (예상보다) 리소스를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그만큼 다른 프로덕트에 투자해야 할 나의 시간을 끌어와 쓰게 되면서 일정 지연이나 야근(^^;;)이 발생할 수 있다.


문제가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그것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문제가요.


출처 : Unsplash 의 Bernard Hermant


(고객 입장에서) 문제 이야기하기


고객에게 비타민(Vitamin)이 아니라 약(Painkiller, 고통을 없애줌)을 팔라는 대명제가 있다.

(Painkiller ㅡ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한 질문)

1. 고객은 무슨 과업(JTBD, Jobs-to-be-Done)을 달성하고자 하지?
2. 고객이 JTBD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뭐가 있지?
3. 당신의 서비스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줄 거야? 고객이 당신의 서비스를 고용(hire)하는 이유?


몇 년째 직장과 직군 - 내가 조직에서 맡은 역할은 달랐지만, 져니 맵(Journey Map)을 비롯 여러 도구를 통해 고객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 공감하고, 진짜 문제를 찾아오는 경험을 쌓아오고 있었던 차에 아차 싶었다.


프로덕트를 사용할 회사 내외부의 고객뿐 아니라, 같이 프로젝트를 하거나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고객'이다. 그리고 팀장님도 내 업무를 보고받는 상위 직책자이자 동시에 '고객'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일차적으로 "(팀장님 입장에서) 이런 나의 리소스 분배 문제가 있다" 도 잘 짚어줘야 한다. 나아가 팀장님의 과업, '팀의 효율적인 운영과 팀원의 워라밸 달성'을 보다 쉽고 정확하게 달성할 수 있도록 ㅡ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미리미리 요청해야 하는 것이다.


반성할 점은 갑작스러운 경영진의 "문제 있어요?" 질문이든, 매니저와의 원온원 미팅이든, 고객 건의(VOC, Voice of Customer)이든 이미 한 발 늦었다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고객이 먼저 질문(요청)을 해 온 것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고객의 과업(JTBD)이 무엇이며 가장 큰 문제(Painpoint)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입장을 파악해야 한다. 나아가, 고객이 조급한 만큼, 답변 또는 해결책 (Painkiller)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언제까지 어떻게 줄 것인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출처 : Medium의 Kyle Sandburg | Painkillers vs. Vitamins


져니박 씀.


P.S.1. "자리 있어요?"라고 질문한 사람은 십중팔구 '이 카페나 식당을 사용하기 위해 "자리 잡는다"'라는 과업을 위해 질문한 것이다. "(당신이 앉을) 빈자리 있어요"라 할 때만 "자리 있어요" 하자.


P.S.2.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 사례 및 원칙 이야기는 https://brunch.co.kr/brunchbook/star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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