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과 관심이 주는 힘
에밀리가 태어나고 고속도로 소음이 들리는 작은 집에 낮 동안 아기와 단둘이 갇혀 있던 그는 2주 만에 기운이 빠지고 우울해졌다.
"처음에는 식욕이 없어졌어요." 볼로가 말했다."그때 뭔가 잘못된 걸 알았죠. 제가 먹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뭘 해도 입맛이 돌아오지 않더라고요." 볼로는 두툼한 패드를 댄 흔들의자에 앉아 발로 의자를 움직였다. "입맛이 사라진 다음에는 잠이 없어졌어요. 지금도 몇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서 아기에게 우유를 먹여야 하지만, 그때는 다 먹이고 아기를 침대에 내려놓은 후에도 그냥 깨어 있었어요. 멍하니 허공만 보고 있었죠."
식욕부진에 불면증까지 생겼을 무렵, 볼로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이유로 울기 시작했다. "별게 다 슬펐어요." 복도 벽에 있는 균열, 새로 산 냉장고의 번쩍번쩍한 내부. 닭고기가 부위별로 포장돼 얼음물에 둥둥 떠다니고 정육 코너에는 마블링 있는 고기가 갈고리에 매달려 있는 슈퍼마켓. p. 227
'경청'이라는 약
고백하는 행위 자체에 건강과 행복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종류든 심리치료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의사의 전문 기술은 중요하지 않고,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오직 환자가 선택한 이야기다. 단순히 과거를 되돌아보는 행위는 무의미하고 심리적인 성장이나 건강 증진을 가져오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단어 - "왜냐하면", "때문에", "그래서" 등 -를 사용했을 때 문제의 근본에 도달해 건강이 좋아진다. 강력한 약은 언어다. 우리는 말로 면역력을 강화하고 염증 세포를 억누르고 뇌에서 엔도르핀을 분비시켜 행복해질 수 있다. 따라서 치료를 하는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굳이 심리치료사의 도움 없이도 대화 요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연구로 확증된 사실이다. p.298
핵심은 따뜻함이었다. 연결이었다. 내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과 의미를 찾고 이야기를 구성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두려움으로 곪은 상처를 치유하고 차갑게 식은 우울감을 따뜻한 온기로 감쌀 수 있었다. p. 299
경청은 한 번에 한 사람만 발언하고 상대방은 주의 깊게 듣는 것이다. 발언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사건에 대한 의견을 진지하게 개진할 기회가 주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에 공감하는 반응을 보인다. 이런 대화가 중요한 이유는 화자가 사건을 설명하는 동안 마음속으로 그 사건을 정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화하며 머릿속을 정리한다.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by 조던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관심'이라는 약
까놓고 말해 나는 추하게 늙고 있다. 건강을 잃었고 가장 큰 원인은 정신과 약이다. 그럼에도 이 약들 없이 살 수 없다. 30년 이상 꾸준하게 복용량과 약의 수를 늘린 결과 내 뇌는 완전히 바뀌었고 매일 약을 먹지 않으면 신경 체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때로는 손자도 못 보고 죽을까 봐 두렵다. 약을 끊으려고도 해봤지만, 금단 증상은 내 몸을 황폐하게, 내 정신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깊은 우울증에 총을 산 적도 있고 아이들에게 유서를 쓴 적도 있다. 보내지 않은 편지는 지퍼백에 밀봉해뒀다. 결국에는 술래잡기를 그만두고 약으로 돌아가야 했다. 약에게 정신을 돌려받고 몸을 빼앗기면서 나는 몸과 마음이 별개의 존재라는 데카르트의 주장을 확신하게 됐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처음부터 이미프라민을 먹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중에 프로작을 먹지 않았더라면? 온전히 내 힘으로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답을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추측할 수는 있다. 내가 현재 살기 위해 죽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 약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빨리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찬양하지 않으랴. p. 271
미래의 정신약리학은 순수하게 통찰 지향적 학문이 돼야 하고 모순적이지만 과거로 한 발 돌아가야 한다. 정신을 완전히 뒤집을 힘이 있는 강력한 약을 먹은 후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에 대해 10회 동안 이야기하는 치료를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컬럼비아대 종양학 자이며 퓰리처상 수상자인 싯다르타 무케르지를 비롯한 많은 연구자는 항우울제와 대화 요법을 결합했을 때 최상의 결과가 나온다는 데 주목했다. 이유가 명쾌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무케르지는 이렇게 썼다. "세포를 키우라고 뇌와 '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면 뇌의 의식 영역에서 세포의 죽음을 인식하는 방식이 바뀐다. 대화를 하면 다른 화학물질이 나와 신경세포가 성장하는 유사한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 (...) 의사와 환자는 환자의 마음을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고, 의사의 역할은 안내자로 바뀐다. 단순히 처방전을 휘갈겨 쓰는 사람이 아니라 훨씬 많은 일을 하는 진정한 의료인이 되는 것이다. p.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