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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cc May 28. 2021

아주 공평한 창작자

두산아트랩 ‘펭귄어패럴radio edition ver.1’(2021)

단순한 소재로 전락하거나 전시되지 않고



공연 시간 60분. 무대 바닥이 실밥으로 잔뜩 어질러진 여기는 ‘펭귄어패럴’, 봉제공장이다. 스르르 탁, 스르르-탁. 말이 없는 세 사람은 공연 전부터  각자 자리에서 미싱을 밟느라 분주하다. 규칙적인 기계음을 깨고, 라디오 신호음이 산뜻하게 울린다. ‘펭귄어패럴 radio edition ver.1’의 시작이다. 


2018년 여름 작은 봉제공장에서부터 이어져 온 대화가 객석을 채운다.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차 지하게 된 노동에 대해, 그로 인한 문제에 대해, 그리하여 각자가 바라는 노동 환경에 대해 말하 며 서로를 다독거렸던 시간. 그 시간을 눌러 담은 대화록이 이 공연에서 라디오 사연과 디제이의  멘트, 그 사이사이를 채우는 광고와 노래가 되어 흘러나온다. 전부 당사자의 육성으로 녹음됐다. 


라디오 사운드가 나오는 동안 세 사람은 미싱을 하다가 스트레칭을 하거나 테이블에 모여 수다를  떠는 등 ‘퍼포먼스’를 한다. 그러나 애써 배우가 되어 ‘연기’를 하지는 않는다. 적나라하게 들려오는 자신의 노랫소리에 쑥스러워 작업하던 천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무대 위 초보  미싱사 신소우주, 자칭 ‘미싱 박사’ 강명자, 팔방미인 미싱사 권영자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연출을 맡은 신소우주는 문화예술기획자로 2008년 예술계에 발을 디뎠다. 그에게 미싱은 “예술 작업으로서의 매개인 동시에 불안한 미래를 준비하는 생계의 기술”이다. 본격적인 창작 활동은 2018년 ‘펭귄어패럴’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소규모 봉제공장으로 차린 작업실 ‘펭귄어패럴’에서 사람들과 만나 시간과 관계를 기록하고, 바로 그곳에서 공연으로 선보인다. 그의 프로젝트는 관계의 확장에 따라 덩달아 깊어지고 넓어진다. 40년 경력의 미싱사 강명자와의 대화를 다룬 첫 퍼포먼스 공연 ‘펭귄어패럴, 그 여름 한 철의 이야기’ (2018) 이후에 나온 두 번째 작품은 강명자가 소개한 책 ‘노동의 철학’(1980)을 또 다른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읽어나가며 만들었다. 


창작자로서 신소우주는 무척이나 공평한 태도를 취한다. 프로젝트의 이름만 봐도 그렇다. ‘펭귄어패럴’은 신소우주의 작업실이 위치한 신림동의 ‘펭귄시장’과 미싱사 강명자가 여공으로 근무했던 구로공단의 ‘대우어패럴’에서 각각 이름을 따왔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콘셉트로 한 이번 공연은 세 명의 출연진이 하루씩 돌아가며 디제이를 맡도록 연출했다. 공연의 전체적인 내용은 대동소이하나,  디제이를 맡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주요한 맥락이 ‘연장근로’, ‘휴게’, ‘퇴근 전 마감’으로 달라진다. 


이러한 창작자의 태도 덕분에 출연진들은 배우라는, 일종의 ‘보호막’을 입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무대에 오르면서도 단순한 소재로 전락하거나 전시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관객에게 전해지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성과 연대라는 가치의 진정성이다. 시계가 없는 ‘펭귄어패럴’에서 유일하게 시계 모양을 한 것은  12개의 작업대다. 한 사람 몫의 작업대, 거기에 앉은 사람은 시간을 똑같이 나누는 시침처럼 동등하게 중요하다. 관객으로서 느낀 점을 한 베스트셀러의 제목을 빌어 말하자면,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의 진정성을 경험했다. 


이제 ‘펭귄어패럴’의 여성들은 거리로 간다. 과거 구로공단 시절 가리봉 오거리에 있던 ‘공단서점’으로 가는 길을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공단서점’은 1980~90년 대 공단 주변의 노동자들이 정보 교류를 위해 찾던 곳. 사라진 장소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개인들이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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