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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cc Sep 22. 2023

현대자동차 포니 <포니의 시간>

기록을 헤리티지'화'하기

기록을 헤리티지'화'하기


세계 최초의 자동차가 18세기에 출현했다. 그러니 자동차 산업은 수세기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산업이다. 오래된 것들은 나름의 역사를 지닌다. 이 역사를 브랜드의 무기로 삼는 게 헤리티지 브랜딩이다. 긴 세월 쌓아온 유무형의 자산을 오늘날 브랜드 가치로 전환하는 거다. 전통 있는 자동차 회사라면 하나쯤 가진 박물관은 바로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위치한 메르세데스 벤츠 뮤지엄. 1886년 창립자 칼 벤츠가 발명한 자동차를 비롯해 160여 대의 자동차를 당대 역사, 사회, 대중문화의 맥락 속에서 소개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역사에서 1967년 창립된 현대자동차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슬로스타터다. 그럼에도 현대자동차는 '헤리티지 브랜딩'에 관심이 많고, 공격적으로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왜냐? 첫째, 우리나라에선 '그래도' 인지도를 확보한 자동차 브랜드이기 때문이고, 둘째, 전기차 시장에서 신생 중국차 회사와 가격 및 품질 경쟁 말고 다른 차원의 우위를 점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전기차 시장이 태동한 2015년 무렵부터 헤리티지 브랜딩에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당시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헤리티지 브랜딩을 하기엔 헤리티지가 없다(?)는 우려가 있다. 그렇담 10년 새에 헤리티지란 게 쌓인 걸까? 뭐, 조금은 그럴 지도. 결국, 브랜드 헤리티지란 어디까지나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기록만 있다면 말이다.



REPORT


전시 <포니의 시간>

일자 : 2023년 6월 9일~10월 8일

장소 :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브랜딩]
'국민 차' 포니
[전시 특징] 
5층부터 1층까지 아래로 관람
포니가 생산된 과거(1970~80년대)에서 현재순으로 구성
[전시 속 아카이브]

도전 정신을 담은 아카이브 : 포니 설계 도면, 제작 공정을 기록한 노트, 임직원 구술 인터뷰 영상, 해외 디자이너 계약서 등

추억 속 국민차라는 스토리텔링을 담은 아카이브 : 1970~80년대 신문 잡지에 실린 포니 기사, 광고, 포니 사진 공모전으로 수집한 사진 등

7080 무드를 위한 아카이브 : 당시 발행된 잡지, 당시 촬영된 영상 기록
[전시 속 아카이브 콘텐츠]

복원된 포니 차량과 포니를 재해석한 콘셉트카
전시를 집약한 컬렉션 북
7080 영화 포스터 굿즈
포니 아카이브에 기반한 굿즈


우리 포니는요,

현대자동차의 인본주의와 도전 정신을 반영하고 있고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추억의 국민차랍니다.


이번 전시를 세 줄 요약하면 위와 같다. 포니 관련 기록을 가지고, 브랜드의 유형자산으로 삼은 포니차(포지셔닝=추억의 국민차)와 무형자산으로 삼은 인본주의, 도전정신의 가치를 보여주려 했다. 기록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눈여겨본 건 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기록을 '어떻게 보여주었는가'하는 점이었다. 즉, 창고 깊숙이 쌓였던 기록을 헤리티지'화'하는 법.


그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이 전시에선 포니를 문화 아이콘으로 보여준다. 1976년 출시된 포니를 당대 경제, 사회, 문화, 역사적 맥락에서 조명하는 걸로 말이다.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출발점에 '현대차'가 있었고, 불굴의 의지로 여러 난관을 극복해 첫 양산형 자동차 '포니'를 탄생시켰다는 이야기. 그렇게 만들어진 포니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소비자의 사진과 사연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전시에서 포니 디자이너와의 계약서, 기술 개발에 참여한 직원의 수기 노트, 포니 자동차 공장 노동자였던 작가가 포니를 주제로 쓴 단편 소설 원고, 차체와 앰블럼 도면, 포니 이름 공모 신문 광고, 포니 지면 광고, 포니와 함께한 사진 공모전으로 수집한 사진 등의 포니의 기록은 모두 이 스토리를 증빙하는 자료로 쓰였다.


스토리텔링으로 기록을 헤리티지화하는 법, 전시에서 눈에 띈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봤다.



1) 스토리에 몰입하도록

'이 전시는 서사가 있습니다'라는 걸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스태프가 알려준다. 5층부터 감상하라고 안내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순서는 스토리에 몰입시키기 위해 필요하다. 5층에서 처음 마주하는 건 필름 모양 스크린에 투사된 7080 영상 이미지, 그리고 전자음악 아티스트 키라라에게 위촉한 곡 <1980 경음악 큰잔치>다. 이렇게 관람객은 7080 무드에 물든 채로 전시를 보게 된다.


5층 전시실 입구



2) 스토리'텔링' 아니고 스토리'쇼잉'

5층에서 7080을 테마로 한 그림과 당대 물가를 설명하는 스크린, 당대 대중문화를 보여주는 잡지와 포스터로 이른바 아이스브레이킹을 했다면, 아래층부터는 이제 포니 아카이브를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그야말로 '보여준다'.


특히 포니 탄생기가 담긴 '이대리 노트' 같은 건 원본의 물성(낡고 바랜 공책의 질감 등)을 살려서 관람객이 직접 만지면서 볼 수 있게 했다. 긴 전시문으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직접 보고 느끼게 하는 이 방식을 나는 스토리텔링이 아니고 '스토리쇼잉'으로 부르고 싶다.


왼쪽 기록물 원본, 오른쪽 복원
포니 앰블럼 설계 도면과 포니 이름 공모 신문 광고
왼쪽 포니 복원 모델, 오른쪽 '새로와진' 포니 광고
전시 설명문이 디자인된 방식. 빛 반사가 심한 회색 벽면에 흰 글씨=결코 이야기를 '들려줄' 의사가 없음이 느껴진다. 그냥 '봐'! 그럼에도 설명문은 가독성 좋게 쓰였음.
사진 공모전으로 모집한 <포니와 함께한 시간> 사진을 옛날 앨범에 끼워 전시하고 있었다



3) 간직할 수 있는 이야기=굿즈

이 전시, 굿즈 인심이 후하다. 브랜드 홍보 차원의 전시이다 보니 그렇다. 전시의 이야기를 간직할 수 있는 게 굿즈니까. 무료로 주는 굿즈는 포니 도면이 그려진 종이와 7080 영화 포스터 스티커다. 1층에서는 이번 전시의 유료 굿즈를 판매한다. 티셔츠, 공책, 차량 액세서리 등 다양하다. 값도 저렴한 편.


아래에서 오른쪽 사진은 헤리티지 스토리텔링에 매우 진심이라고 느끼게 한 굿즈.




현대차는 앞으로 차종별로 이런 아카이브 전시를 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기록학 동기들이 지금 현대차 사보를 뒤지며 열심히 기록물 정리 중이라고 들었다. 자동차 공장에 출퇴근하는 노동자 사진 등 과거 기록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현대차는 지속해서 헤리티지 브랜딩을 하려는지, 앞으로 파주에 현대차 헤리티지 센터도 들어선다고 한다.


이처럼 대기업이 기록관리 본격적으로 하는 거, 의무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기록관리하는 거, 진짜 바람직하다. 함께 전시를 보러 간 기록학 동기들과 계속 감탄하면서 전시를 관람했다. 역시 자본이 최고라고. 사실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1인 기록관 체계에서 이뤄지는 기록 전시라는 게 혼자 어찌어찌 꾸려서, 전시 업체에 용역 맡겨서 끝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기업의 헤리티지를 찾겠다는 질적 목표와 대규모 자본 투입을 바탕으로 좋은 기록관리 사례를 보여주길!!!보여주고 싶다(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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