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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심 Jan 27. 2021

프롤로그 II. 스물아홉

한번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리움과 미안함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얄궂게도 할머니가 떠나신 그 해 겨울은 그렇게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지나갔고 나는 뉴욕에서 스물아홉을 맞이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집과 직장을 오가며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속에 한번 자리 잡은 미안함은 계속해서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시간은 여느 때와 같이 부지런히 흘렀고 그렇게 6개월 남짓 흘렀을까.

이듬해 여름, 엄마가 나를 보러 놀러 오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조금 추스른 모습이라 마음이 놓였지만 여전히 할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 지으셨고,

‘왜 이 나이에도 엄마가 없으니 고아가 된 기분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엄마는 어느 때보다도 약해 보이셨다. 그러다 문득 우리 모녀지간은 앞으로도 1년에 한 번이나 볼 텐데, 엄마가 할머니만큼 나이가 들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할머니의 곁을 지킬 수 없었든 엄마의 곁 또한 지킬 수 없다면 못 견디게 힘들 것 같았다.


오랜만에 나의 자취 집에 온 엄마는 쉬지 않고 내 집을 쓸고 닦았고, 퇴근 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차려 기다리고 계시곤 했다. 아무리 밖에 나가시라, 쇼핑 다녀오시라 여러 번 말해도 엄마는 그렇게 머무시는 3주 동안 1년어치의 엄마 손길을 남기고 싶어 하셨다.


엄마를 케네디 공항에서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 많이 울었다. 공항에서 항상 우시던 부모님과는 달리 나는 빨리 들어가시라는 손짓만 남기고 뒤돌아서곤 했는데 그 날은 유난히 서글펐다. 앞으로도 내가 귀국을 결정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긴 시간을 이렇게 지내야 하는 것을 알았기에 부쩍 흰머리가 늘어난 엄마 옆에 없는 딸이 되는 게 미안했고 괜찮다고 하는 엄마가 마음에 걸렸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열흘의 휴가를 내고 한국에 나올 계획을 세웠고, 미국에서 산지 벌써 10년이라 휴가 기간 동안 생각을 정리한 후 최종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지낸 시간이 쌓였던 만큼 여러 면에서 안정된 상태였는데, 그렇게 갑작스럽게 나는 작정이라도 한 듯 하나, 둘 미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직장동료와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갑자기? 왜?"


라고 물었고 나조차도 왜 그때 그렇게 분명하게 한국에 오고 싶었는지 말로 옮기기가 어려웠다. 


"부모님도 약해지신 것 같고, 

더 지체하면 영영 못 그럴 것 같아서 그래.

혼자 사는 것도 지치고..."


여러 가지 이유가 켜켜이 쌓인 채,

어느 순간 이 곳을 떠나 가족 곁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주체할 수 없이 커져있었다.




한국에서의 달콤한 휴가는 빠르게 지나갔고, 부모님 곁에 있고 싶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미국으로 돌아가 두 달 동안 퇴사부터 이사까지 큼직한 정리들을 마치고 스물아홉 말, 2015년 겨울에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국에 귀국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순진했던 것 같다. 아니면 본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어서인지 나는 미국에 적응하면서 겪었던 성장통은 까맣게 잊은 채, 오직 한국에서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할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30대에 내가 한국에 적응하면서 겪게 될 성장통은 상상도 못 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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