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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Jun 25. 2020

사실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

우리가 책으로 할 수 있는 일들


초등학교 학부모 대상으로 강의를 갔을 때 일이다.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라는 내용으로, 각자의 글쓰기 주제를 찾는 것이 수강자들의 목표였다. 각자의 주제를 찾기 전에 서로의 생각을 나눠볼 겸 ‘내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10개 이상 생각나는 대로 써보기로 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니 얼마나 진지하고 신중하게 고민하면서 쓰시던지, 내가 너무 진지한 주제를 드렸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볍게 브레인스토밍을 하려던 취지였는데.

잠시 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쓴 문장을 읽어보았다.


“00아, 네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나.”

“책을 열심히 읽었으면 좋겠어.”

“힘이 드는 순간도 있을 거야.”

“엄마의 인생도 있어.”

“엄마가 살아보니 공부는 중요하더구나.”


그런데 사람들의 문장을 들을수록 그건 자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자신이 쓴 문장을 읽다가 순간 눈물을 흘리는 분을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 그래서 후회가 되는 것을 부모로서 자녀에게 가르쳐주는 것 같지만, 실은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아 보였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와 비슷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책의 내용은 “이렇게 살면 좋아요. 저렇게 살면 안 돼요.”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이 자기 긍정이 아닌 자기 부정에서 비롯된 생각이라는 점이 은근히 드러나는 책들이다. 자신이 그토록 바랐지만 끝내 살아내지 못한 인생을 차라리 ‘후회’한다고 말했다면 그런 느낌이 덜했을 것 같다. 그런데 독자들을 향해 힘주어 이러저러하게 살라고 강하게 조언하면 할수록 '아, 이 작가는 그렇게 살지 못한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든다.


우리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조언이나 충고를 할 때 그것이 상대방에게 하는 말인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단순히 나도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차원이 아니라, 그 말 속에 감춰진 자신의 열등감이랄지, 후회나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 스스로를 반복해서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든다.


매번 비슷한 부모님의 잔소리, 선생님이나 선배들의 충고들, 직장 상사들의 억지스러운 요구들, 친구나 지인들의 변함없는 조언들은 그들의 말대로 정말 상대를 위해 하는 것일까? 아니다. 사실 그 말들의 화살은 모두 자기 스스로에게 향해 있다. 자기 자신에게 왜 그렇게밖에 살지 못했느냐고 계속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면서 자신은 물론이고 남들까지 괴롭히는 말이다. 그렇게 살지 못한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그렇게 살지 않는 타인을 한 번 더 부정하는 셈이다.


세상의 모든 조언과 충고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사람들의 경험과 깊은 내공에서 나와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만약 나의 열등감이나 자기 부정에서 나온 말이라면, 지금 당장 타인에게 하는 조언이나 충고도 거두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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