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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e Jun 12. 2023

지옥보다 뜨거운 불?

신곡 II : 연옥편 

우리는 단테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가장 낮은 곳, 지옥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여정을 봤다. 하지만, '지옥편'(Inferno)의 결말에 그를 안내하는 베르길리우스가 거꾸로 뒤집어지는 걸 목격한다. 


그대는 이제 메마른 대지를 덮는 하늘 반대편 하늘 아래에 있다네. 그 곳의 정점에서 죄없이 태어난 자가 죽었다 살아났었지(Inf. XXXIV 112-115).


그들이 지구의 중심을 통과한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땅 속으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지상으로 상승이 시작되었다. 중세시대 세계관에서 지구의 북반구는 땅, 남반구는 바다 밖에 없다고 믿었고, 땅의 중심지는 예루살렘이었고 지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바다 한 가운데 연옥이 있었다. 


연옥(Purgatorio)를 바라보는 단테


원래 단테 하면 신곡, 그리고 신곡 하면 사실 가장 많이 떠오르는 건 지옥(Inferno)이다. 같은 제목의 댄 브라운 소설 때문인지, 지옥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강렬해서 그런지, 신곡이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잊을 때도 있다. 그런데, 필자도 글을 쓰기 위해 신곡을 다셔 펼쳤을 때, 지옥 못지 않게, 아니 사실 지옥보다 이 연옥(Purgatorio)이라는 곳이 오히려 더 흥미롭고, 단테의 세계관을 더 잘 보여주는 거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연옥이란? 

필자는 머릿속으로 연옥을 상상할 때 '지옥편'에 등장하는 '변옥'(Limbo)의 이미지에 가까웠다. 예수를 믿지는 않았는데, 지옥에 보내긴 애매한 영혼들이 떠다니는 곳.  이탈리아어로 "purgatorio", 라틴어로 "purgatorium"은 문자 그대로 "정화시키는 곳"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연옥의 목적은 사실 영혼들이 천국에 가기 위해 준비시키는 곳이다.가톨릭 교회는 주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미지를 근거 삼아 연옥의 존재를 확신하고 그 개념을 완성해갔다.  


볼로냐 화가 Ludovico Carracci의 '연옥'


카라치의 회화를 언뜻 보면 지옥과 큰 차이가 없어보이는데, 실제로 '신곡'도 지옥과 연옥 사이의 평행을 잘 드러낸다. 우선, 두 영역 모두 고전 신화와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이 지키고 있다; 지옥은 미노스(Minos)가 영혼들에게 심판을 내리고, 연옥에서 로마 정치인 소(小) 카토(Cato Minor)가 문지기 역할을 맡고 있다. 현대에 출판된 모든 '신곡'의 도입부에 단테의 세계관을 그려낸 삽화가 있는데, 연옥은 지옥과 동일한 원뿔 모양이다. 지옥의 최하단에는 루시퍼, 연옥의 꼭대기에는 지상 낙원이 있다. 


단테 '신곡'의 세계관(출처: wikipedia commons)


그리고, 지옥과 연옥은 모두 각각 층별로 다른 죄를 지은 영혼들이 있다. 또, 지옥과 연옥 모두 영혼들은 배를 타고 도착한다. 지옥에서는 카론의 배를 타고 스틱스(styx) 강을 건너고, 연옥에서는 천사의 인도를 받아 연옥의 해안에 도착한다.


In exitu Israel de AEgypto
이집트로부터 탈출한 이스라엘
(시 114 / Purg, II 47.)


 불안과 공포에 떠는 지옥의 영혼들과는 달리 연옥에 도착한 영혼들은 라틴어로 찬미를 올린다. 지옥은 형벌을 받는 곳이지만, 연옥은 영혼에게 있어서 출애굽과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출애굽 이후 약속의 땅에 도착하기까지의 광야 생활과 같은 셈이다. 그런데 똑같은 죄인인데 왜 누구는 지옥에 가고 누구는 연옥으로 오게 되는 걸까? 차이는 하나 뿐이다. 바로 죽기 직전이라도 자신의 죄악을 인정한 자들이다. 


지옥으로 영혼들을 데려가는 카론(좌), 천사에 안내를 받아 연옥에 도착하는 영혼들(우) (Gustave Dore)


지금까지 '이성'의 인도를 받으면서 세상의 죄와 악을 통과하면서 그 악의 근원이 사탄이라는 걸 깨달은 영혼에게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그 다음 단계는 회개이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영혼들이 천국에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곳인 연옥은 자신의 죄를 돌이키는 기독교 순례자의 삶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천사와 같은 나비가 될 애벌레라는 걸 모르겠는가?
(Purg. X. 124, 125)


잠시 다시 '지옥편'의 결말로 돌아왔으면 한다. '지옥'의 가장 두드러진 메시지는 인간의 영혼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지옥이라는 고난을 통해 바닥을 쳐야한다고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신곡' 전체라는 보다 큰 맥락 안에서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옥의 바닥에서 마귀와의 대면마저도 천국으로 올라가기 위한 준비 단계이다. 영혼은 땅 속으로 내려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사실은 천국에 더 가까이,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단테의 연옥

연옥이  다소 추상적인, 신학적 개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단테처럼 그것을 실재하는, 물리적 공간("Mount Purgaroy"라는 산)으로 묘사되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다. 


인간은 언제나 산과 다소 특별한 관계를 가져왔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올림포스 산 정상에 신들이 살고 있었다고 믿었던 건 그리스 전역에서 그 산이 보였기 때문이다. 고대의 종교에서 산 정상에 산당과 같은 성소를 지어놓고 순례를 가는 문화를 거의 보편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한 고대 도시의 신전과 궁궐 등도 성벽 내 높은 언덕에 위치하는 경우도 많다. 단테의 연옥 정상에는 '지상낙원'(Paradiso Terrestre)가 위치하는데, 실제로 창세기를 분석하면 에덴 동산으로부터 네 개의 강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이 역시 높은 언덕의 정상 위에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모세도 시내 산 정상에서 야훼를 만나 율법을 받고, 이스라엘의 성전도 시온 산, 예수 또한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처럼, 인간은 언제나 산, 높은 곳에 올라가면 진리에 도달하거나 신을 만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어쩌면 천국에 가기 위한 준비단계로서 죄를 되새기면서 올라야 하는 산이 가장 적합할 수도 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해안가에 도착하자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눠어진 'Antepurgatory', 그리고 7개의 층으로 구성된 산을 발견한다. 지옥과 마찬가지로 영혼들은 자신의 죄에 따라 연옥에서 출발점이 결정되는데, 그 기준은 바로 7대 대죄(Seven Deadly Sins)인데, 중세 교회는 이 일곱 개의 죄악(색욕, 탐식, 탐욕, 나태, 분노, 질투, 교만)으로부터 인간의 모든 죄가 파생되었다고 믿었다.   


그가 연옥의 입구에 도달했을 때(Purg. IX) 한 천사가 단테의 머리에 검으로 7개의 "P"를 새긴다. 이는 라틴어로 Peccatum으로 "죄"를 의미하는데, 단테가 연옥의 한 층을 통과할 때마다 그 곳을 지키는 천사가 "P" 하나를 지워준다. 그는 베르길리우스에게 갑자기 몸이 너무 가벼워진 거 같다고 이야기하자, 그의 길잡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대의 이마에 아직 남은 P가 지금처럼 완전히 소멸된 후부터 그대의 발은 선한 뜻에 의해 움직여질 것이노라. 발이 힘들지 않을뿐더러 계속 올라갈 수 있어 기뻐할 것이니라(Purg. XII 120-126).  


이로써 영혼은 연옥에서 자신의 죄를 깨끗게 함으로서 죄라는 "짐"을 내려놔 천국으로 떠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네덜란드 화가 보쉬의 '7대 대죄'(출처: 위키백과, 마드리드, Museo del Prado 소장)


여기서 지옥과 연옥 사이 결정적 차이가 있는데, 바로 시간이다. '신곡'의 세 영역 중에서 유일하게 물리적으로 시간이 흐르는, 유일하게 시간의 흐름이 유의미한 곳이 연옥이다. '지옥'에서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시간이 얼마나 경과했는지 안내하기는 하지만, 그 곳에 갇힌 죄인들에겐 의미없다. 그들은 영원히 그 곳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천국도 마찬가지로 그 곳에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곳이다. 반면, 연옥을 오르는 영혼들은 매일, 매일 일출과 일몰을 보고, 언젠가 천국에 갈 것에 대한 소망을 품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만물의 근원, 사랑 

연옥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주제는 바로 사랑이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에게 하는 질문 중에도 사랑에 관한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연옥의 구조를 이루는 7대 대죄는 결국 사랑의 왜곡으로 해석되어지고 있다. 


그가 말씀하기를, '피조물이나 창조주도 사랑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 내제된 사랑은 언제나 죄악으로부터 자유롭지만 다른 종류의 사랑(이성적인 사랑)은 잘못된 대상을 만나면 죄를 범하기 마련이란다.'(Purg. XVII 91-95)


베르길리우스가 한 이 말을 통해 단테는 7대 대죄는 결국 사랑이 왜곡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증상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신을 닮은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신처럼 사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인간은 선을 행하거나 무시무시한 악을 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명성을 사랑하는 자들은 교만이라는 죄를 범하기 일수이다. 


반면에 진정한 사랑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데, 우선 베르길리우스는 살아있는 자들의 기도는 영혼이 연옥에서 머무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Purg. VI). 그리고 연옥으로 올라는 중 소르델로(Sordello)라는 이탈리아인 시인이 베르길리우스를 알아보는데, 그가 어찌 연옥에 왔는지에 대한 질문에 베르길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저를 부른 건 하늘의 힘이오(Purg. VII).


 이 외에도 단테는 계속해서 사랑에 대한 질문을 하지만, 지옥에서와는 달리 베르길리우스는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공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러다가, 그들이 '지상낙원'에 도달하게 되면 새로운 안내자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나는 인간의 이성의 눈으로만 진리를 보여줄 수 있지만, 이성 넘어선, 믿음의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선 베아트리체를 기다려야 하네.'(Purg. XVIII)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처음 만났을 때도, 애초에 그가 안내자 역할을 하게 된 것도 단테를 향한 베라트리체의 사랑 때문이라고 말한다. 믿음이 생기기도 전에 사망한 아기들과 함께 변옥에 있었던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와 함께 연옥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게 한 거 역시 모두 사랑의 힘이다. 하지만, 인간이 진정으로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으론 부족하고, 그러기 위해선 '믿음'이라는 새로운 안내자가 필요하다. 


베아트리체 

'신곡'의 두 번째 안내자인 베아트리체(Beatrice Portinari)는 단테가 9살 때 즈음 만났던 소녀였다. 그는 단테의 첫사랑이었지만, 보통 젊은이들과 다르게 그녀에게 구애를 하거나 관계를 시작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다. 그는 베아트리체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평생 해왔다. 베아트리체, 그리고 참된 사랑에 대해 고찰하는 시를 쓰며 탄생한 작품이 'La Vita Nuova'("새로운 삶")라는 시집이다.


Henry Holiday가 구현한 단테와 베아트리체(중앙 노란색 드레스) (영국, 리버풀 Walker Art Gallery 소장)


단테 전문가들은 이를 일명 "courtly love"(궁정연애)라고 중세의 귀족(계급이 아닌 타의 모범이 되는 덕목과 성품을 지닌 자)이라면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였다. 이 과정을 통해 단테가 내린 결론은 베아트리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보다, 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거 자체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고 이에 만족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지상낙원'부터 천국까지 안내자인 베아트리체는 믿음을 기반한 진정한 사랑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연옥에서 베르길리우스에게 여러차례 진정한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지 물어보는데, 시인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입술을 빌려 궁정연애를 기반으로 한 진정한 사랑의 철학을 전한다. 15곡에서 그는 사랑은 나누면 나눌수록 모두가 부유해진다고 전한다. 제한된 자원을 나눠주는 데 어떻게 모든 당사자가 부유해지냐는 단테의 질문에 베르길리우스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하늘에 서로에게 사랑을 전하는 영혼들이 많을수록 사랑할 자가 많아지고 사랑 그 자체가 많아지고, 서로를 거울처럼 비춘단다(Purg. XV. 73-74).


결정적으로 연옥의 정상에 도달하고 있을 때... 


덕에 의해 불 붙은 사랑은 더 많은 사랑에 불을 붙인단다(Purg. XXII. 10-11).


그리고, 단테가 10년만에 첫사랑 베아트리체와 드디여 재회했을 때, 베르길리우스는 말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Purg. XXX). 그 동안 안내해준 베르길리우스의 이름을 세 번이나 부르면서 아쉬워하지만, 이제 그는 인간의 이성의 한계점까지 도달하여 베르기리우스에게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진정한 사랑, 그리고 은총은 이성으로 설명이 안 된다. 이제부터는 기독교인인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으로 올라갈 준비를 한다. 


공교롭게도, 지옥과 연옥 두 편 모두 "별"이라는 단어로 막을 내린다. 루시퍼를 보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다시 보는 별을 보며 막을 내린 지옥에 이어, 이제 단테는 그 별들에 가까이 올라갈 준비가 되었다.  


천국으로 올라갈 준비(Gustave 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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