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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Feb 07. 2024

거적대기 같은 시간을 끄적대기(2023년 3월)

지난한 칠 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의 급작스런 발병을 시작으로 친정 부모님을 팔구 년간 모시고 살면서 가족 간의 반목과 갈등이 끊임이 없었다.


딸아이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었고, 천운으로 살아난 딸아이는 영구적인 장애를 입게 되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몇 년 동안 응급실과 외래 진료실을 들락날락하느라 중학교 3년을 거의 학교도 못 나갔었었다. 나와 딸아이는 점점 병들어 가고 있었지만, 헤어 나올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입안에 약을 털어 넣고, 하루하루 버텨내는 게 나와 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


그때를 뒤돌아 보면 "시"가 줄줄 손끝에서 나오던 시절이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쓸 때마다, 그걸 다시 읽을 때마다 눈물이 줄줄 흐르곤 했었다.

Input이 있어야 output이 있듯이, 괴로움이 내 안으로 들어와 글로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 이후로는 영화도 드라마도 볼 수가 없었다. 나의 지난 시간들이 더 드라마 같아서 소위 "몰입"이라는 게 안 되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고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가 나를 덮치곤 했었다.


나는 살기 위해서 책을 읽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글 한 줄 읽을 수 없던 시기를 마치면서 집어든 책은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였다. 누군가에게는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문장들이 그 당시의 나를 다시 숨 쉬게 만들어줬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미친 듯이 책을 사고 읽어댔다.

책을 펴는 순간 나의 정신과 영혼은 문장의 세계로 들어가 현실 세계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글자 한 자, 한 자가 내 머릿속에 박히고, 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 당시 내가 꽂혀있던 분야의 전문서적까지 탐독하면서 하루에 서너 시간을 책 읽는데 썼다.

몰입으로 무아지경 상태가 되어 책을 덮었을 때,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순간적으로 모르는 때도 많았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았고, 스마트폰의 시계와 달력을 열어보고서야 지금이 며칠이고, 몇 시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의 내가 살 수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 고맙다고... 버티고 견뎌줘서 고맙다고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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