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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Feb 10. 2024

커피와 나 - 스페셜티 커피에 빠지다

바리스타 수업


바리스타 수업을 등록하면서, 내가 매일 가는 카페에서 커피를 내려주는 사람을 바리스타라고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교육생들을 살펴보니 수수하게 차려입은 전업 주부들과 그래도 좀 더 치장을 한 직장인들, 그리고 대학생 두 명이 있었다. 20대라 그런지 생기 있고, 싱그럽고,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그 젊음을 다 표현할 수가 없는 친구들이었다. 그 두 명이서 반장, 부반장이 되어 단톡방을 만들고, 선생님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수업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알고 보니 우리 옆 동네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계셨다.


수업 내용은 커피의 유래, 스페셜티 커피란 무엇인가, 에스프레쏘 추출 방법과 맛보기, 간단한 라떼아트 만들기였다.

그 선생님이 갖고 오는 원두는 커피맛이 참 좋았다. 동네에서 마시던 커피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맛이었다.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 기준에 따라 80점 이상의 커피를 스페셜티 커피라고 한다. 동네에 서너 개씩 있는 스타**가 80점 미만의 commercial coffee를 쓴다고 한다. 내가 이제까지 원두 사느라 스타**에 갖다 준 돈이 얼마인데 뭐지? 싶었다. 그 특유의 탄맛이 생두의 모자람을 가리기 위해 로스팅을 강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나 싶었다.


생두가 프로세싱되는 과정이나 원두에서 커피가 추출되는 원리가 내가 좋아하고 전공했던 과학이 베이스에 깔려 있어서 무척이나 재미있고 즐거웠다.




그날의 기억


Unsplash 사진


어느 날 에스프레쏘 추출 시간에 따른 맛을 보면서 그 차이를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그날은 여름비가 와서 더 그랬을까...? 나는 교육생들 틈에서 줄을 서서, 돌아가면서 추출을 하고 맛보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수업 중반쯤에 내가 내린 에스프레쏘를 한 모금, 두 모금 마실 때였다. 커피 향이 입안에서 폭발하면서 목줄기를 뜨겁게 타고 내려가 명치끝에 닿으면서 찌릿하더니, 거기서부터 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강열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커피 동맥>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다급하게 "이것 좀 마셔보라고. 커피가 온몸에 퍼져나가는 느낌이 든다고." 하면서 내 커피를 권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뭐 그냥 그런데?"였다.


그날 나는 커피에 꽂히게 되었다.

나는 이거를 파야겠다! 이거 너무 재미있겠다! 왜 이제서야 이거를 알게 되었을까? 빨리 공부해야겠다!

나는 갑자기 삶의 의욕이 넘쳐났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Yes24 어플을 다운 받고, 커피 관련 책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두둑한 가방을 메고 스타**로 매일 출근을 했다. 제일 먼저 산 책은 James Hoffmann의 <The world atlas of coffee>였다. 그때 이 책을 국내에서는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몰라서, 미국에 있는 언니에게 보내 달라고 했었다. 한 권을 읽고 나면 어느새 또 다른 책을 주문하고 있었다. 커피 관련 책뿐만 아니라 심리학, 철학, 자기 계발서, 그림 관련 책 등을 하루에 두세 권씩 돌려가며 읽었다.

택배가 자주 오고 책장에 책이 쌓이는 것이 못마땅했던 남편은 어느 날 상기된 표정으로 허릿춤에 양손을 얹은 폼으로, "너 이거 다 읽은 거냐고. 책을 사지 말고 빌려보라고." 했다. 그때 내가 남편에게서 읽은 감정은 위기감이었다. 진짜 그랬던지 안 그랬던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그의 감정은 딱 그거였다.


어쨌거나 나는 하루가 다르게 몸에 피가 돌고, 쳐진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읽지 못한 책들을 여한 없이 읽는 이 시간이 너무나 뿌듯했다. 커피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머릿속은 상상의 날갯짓을 하면서 나는 구름 위에 붕 뜬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망상이거나 도파민 중독이 아니었나 싶다.


그게 무엇이었든지 간에 나를 다시 살게 만들었다는 게 중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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