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tlionheart Oct 19. 2024

비 오는 금요일의 기사


비 온 뒤의 특유한 고요함이 있는 아침이다. 거실 창문과 내 방 창문을 열어 놓으니 우렁찬 새소리가 들려온다. 뭘 하느라 저렇게 아침부터 지저귀는지 궁금하다.


요즘 시험 기간이기도 하고 졸업 작품전에 전시할 디저트를 구상하고 만들어야 된다고 딸아이가 한동안 집에 오지 않았다. 남편은 또 중국 출장을 가 있다. 별이와 단둘이 휑한 집에 있으려니 자유로움 보다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날이 갈수록 입은 꾹 다문 체로 지내니 말조차 잊어버릴 것 같았다.


백그라운드로 틀어놓은 유튜브를 친구 삼아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치 나도 그 채널들의 일부가 된 것처럼 유튜버들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잠시라도 방송을 꺼 놓으면 집안에 감도는 적막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제 갑자기 딸아이가 데리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교수님이 킨텍스에서 열리는 베이커리 페어 티켓을 두 장 주셨다고 주말에 친구와 거기 가야 한다고 했다.


수업을 마치고 아이에게 출발한 시각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에서 옆 차선으로 지나가는 대형 트럭들이 내차 앞창에 빗물을 들이붓고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고,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살짝씩 밟게 됐다. 그나마 뒤차들이 속도를 내지 않고 있어서 사고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잔뜩 긴장을 하고 운전을 해서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딸아이 숙소에 도착해서 집에 들어가 보니 피곤한지 아이는 자고 있었다. 해가 지고 나면 운전하기가 더 힘들 것 같아서 아이를 깨우고 인스턴트 커피를 진하게 한 잔 마셨다.


차에 짐을 싣고 네비를 찍어보니 1시간 58분이 나온다. 비도 오는 데다가 금요일 저녁 시간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집으로 출발을 했다. 곤지암쯤 왔을 때 길이 너무 막혔다. 식사 시간을 건너뛰면 아이가 저혈당이 올 것 같았고, 나도 빈속에 지쳐 있기도 했었다.

꽉 막힌 차량행열에서 이탈해 나와서 유명 연예인이 한다는 소머리 국밥집으로 향했다. 주차장 입구에 도착하니 딸아이가 여기가 지난번에 할아버지랑 단둘이서 왔었던 곳이라고 한다. 손녀딸이 보고 싶은 아빠가 어느 날 주말에 딸아이 숙소까지 가서 아이를 데리고 소머리 국밥집에 데리고 가셨었다고 하더니, 거기가 여기였던 거다.


우리 아빠 생각을 잠시 하며 국밥을 시켜 먹었다. 뜨끈한 국물에서 고기를 건져 양파 절임과 먼저 먹어주고, 흰 밥을 국에 말고 깍두기 국물을 조금 넣은 후 한 숟가락씩 국밥을 떠먹었다. 속이 뜨끈해지면서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펴지며 다시 집에까지 갈 수 있는 기운이 났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네비를 찍어보니 1시간 38분이 나온다. 티맵이 알려주는 처음 가보는 길을 지나고 반복되는 정체구간을 지나서 겨우 집에 도착했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녹차 한 잔을 우려서 내 방에 앉아 피곤을 풀고 있었다. 딸아이는 집에 도착해서는 남자친구와 데이트 약속을 잡고는 떡진 머리를 급하게 감았다. 나보다 더 피곤할 것 같은데..젊은 연인들의 애틋함이 피곤함을 이기나 보다. 참 좋은 때다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별하지 않는다..한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