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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수박

by hotlionheart

딸아이는 지난달부터 두통과 어지러움증, 오심을 호소하고 있다. 다니던 병원 신경과를 예약했지만 몇 주를 기다려서야 이번 주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담당 주치의는 증상을 듣자마자 아이 뒷목을 누르면서 아프냐고 물었다. 아프다고 하자 의심되는 병명을 얘기하면서 당일 뇌혈관 MRI를 찍자고 했다. 추가로 뇌파검사도 하자고 했는데, 이 검사일정을 앞당길 수가 없어서 7월 말에나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8월 중순 진료일에 검사 결과를 듣고 확진을 받을 수 있다. 그 병명이 맞으면 입원해서 시술을 받던지 안되면 수술도 하게 될 것 같았다.


아이는 앉아 있거나 걸어 다니면 어지럽고 오심 증상이 나타나 거의 누워서 생활하고 있다. 학원은 못 다닌 지 이미 몇 주가 지났다. 시험공부도 못하고 있으니 본인은 얼마나 속이 답답할지..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살아나가는 아이의 인생이 불쌍하고 안타깝다.

나도 되도록이면 외출을 삼가하고 아이 곁에 머물고 있다.


오늘 오후에 갑자기 “띵동” 벨소리가 났다. “배달이요~” 하길래 아이에게 뭐 시켰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했다. 나는 현관문을 열지 않고서 “시킨 거 없는데요?“ 했더니, ”아빠가 수박을 배달시켰어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 보니 아파트 상가 일층에 있는 과일가게 사장님이 수박을 들고 서 계셨다. 수박에는 동, 호수, 그리고 ”아빠가“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얼른 수박을 받아 들고는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혹시 수박 시켰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면서, 잘못 배달된 거 아니냐고 했다. 전화번호를 뒤져 과일가게 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이 “아빠”가 누구였냐고 묻자, 여사장님이 주문받아서 모르겠다고 하셨다.


나는 우리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혹시 수박 배달시키셨냐고 묻자, 우리 아파트 상가 앞에 있는 구두 수선집에 들리면서, 과일가게에 들러 수박을 배달시켰다고 하셨다.

아빠 그런데 왜 집에는 안 오셨냐고 여쭤보니, 집에 있을지 없을지 몰라서 그러셨다고 하신다. “아빠 저한테 전화를 해보면 되죠.” 하면서, 요즘 애가 아파서 계속 집에 있다는 말을 덧붙였더니, 잠시 말씀이 없으셨다. 속상해하시면서 언제 진료 보냐, 검사 언제냐 물어보셨다. 이러저러한 상태라고 알려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아휴..아빠한테는 애 아픈 거 앞으로 웬만하면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또 말이 나와버렸다. 게다가 아빠는 왜 집에도 안 오시고 그냥 가버리셨는지 속이 상했다. 식탁 위에 올려놓은 커다란 수박을 보고 있자니 더 속이 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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