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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외과 신한솔 Feb 24. 2022

군인의 손가락

정형외과 / 수부외과 이야기

    정형외과 내에서도 내 주 진료과목은 수부외과와 소아정형외과이다. (정형외과 내에서 소위 말해서 제일 돈 안 되는 두 개를 전공했다. 하나라도 돈 되는 걸 좀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은 가끔 든다.) 수부외과의 가장 꽃은 수지 접합인데, 수술 자체의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언제 수술이 생길지 모른다는 긴장감과 수술 후에도 지속적으로 접합한 수지가 사는지 죽는지 계속 지켜봐야 하는 부담감등이 피를 말린다.

    

    우리끼리만 하는 이야기지만 이 수지 접합은 정말 예상치 못한 병원에서 고수들이 포진해 있는 분야이다. 일단 타고난 손재주가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학벌이나 수련 병원은 손재주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약력만 가지고 잘하는 의사를 찾아가기 쉽지 않다. 실제로 모 대학병원에서 있었던 일인데, 그 병원의 VIP가 수지 절단이 되었다고 한다. VIP of VIP 였던지라 절대 접합이 실패하면 안 돼서, 재야의 고수분께서 대학병원 수술장에 들어와서 수술을 도와주고 홀연히 사라지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도 거의 20년은 된 이야기긴 하다.)


    수부 전문의로서 군인들의 손가락이 잘린 경우를 수술한 적이 꽤 있는데, 군인들은 수술할 때마다 참 속상하다. 직업적으로 절단이 되는 분도 많이 뵈었지만, 군인의 경우, 스스로 군인이 되고자 선택한 게 아닌 데다가, 창창한 20대들이 손가락이 절단되어 후유장애를 안고 살아갈 생각 하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보통 군인들을 치료하다 보면, 부대도 어쩔 수 없겠지만, 내 마음껏 치료 기간을 잡고 치료를 못하는 것이 제일 속상하다. 수상 후 3개월 간 안정 가료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도 수술 후 2달째에 손에 굳은살이 잔뜩 생겨서 손이 안 좋은 상태로 외래에 오면 한창 패기롭던 시절에는 화도 내고 환자랑 보호자를 붙잡고 부대 욕도 하였는데, (군 관계자 분들 죄송합니다...) 이제는 요령이 붙어 화를 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요즘에는 A4 용지 한 장 가득 장문의 편지 겸 진단서를 적어다 보내고, 안정가료를 해야 하는 기간만큼 깁스를 한다.


부디 고진 선처 바랍니다


    나의 군부대에 들어가는 진단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글귀이다. 부디 이 환자가 제때 소독을 하고 외출을 해서 진료를 하고 부대에서 보호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지난주에도 부대에서 손가락이 잘려온 친구를 수술했는데, 잘린 조각을 너무나 완벽히 잘 챙겨 와서, 그래도 요즘엔 진짜 군대도 많이 좋아졌구나란 생각을 했지만, 어김없이 병가는 9박 10일이라서 일단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 한다고 하는 말에 바뀐 게 없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의 빛나고 소중한 20대이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정신없이 늙어가는 요즘 들어서 더욱 느끼는 것이 20대의 2년은 억만금을 주어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원래 내가 갖고 있는 건 그다지 소중해 보이지 않는 법이다. 군인 아저씨가 군인 오빠가 되고, 군인 동생을 넘어, 누구네 집 애가 군대 갔더라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요즘에 돼서야 20대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깨닫는다. 좋다, 여러 이유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남자가 군대를 안 가는 옵션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아플 때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막말로 살인범도 아프면 감옥에서 나와서 치료는 받게 해 준다.


    한 번은 20대 초반의 청년이 손가락이 잘려서 응급실에 왔다. 밤에 수술을 하고 다음날부터 접합한 수지를 보는데 맘이 조마조마하였다. 한 달여간의 관찰과 치료 끝에 보기에는 조금 아쉽지만, 다행히 다 구부려지고 펴지는 기능적으로는 장애가 없는 손을 만들어 주고 퇴원하였다. 일 년의 시간이 지난 뒤, 환자분과 엄마가 외래에 찾아오셨다. 갑자기 이렇게 찾아오면 다시 다쳤다거나 문제가 생겨서 오는지라 긴장하게 된다. 의사와 환자는 자주 보지 않는 게 좋은 사이다.


    어머님께서 선물과 함께, 꼭 인사를 하고 싶다고 찾아오셨던 거였다.


"사실 그냥 부대에서 이 병원으로 왔을 때는 왜 여기로 왔을까 싶기도 하고,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는데 선생님을 만난 게 아이의 행운이었나 봐요."


    개인적으로 환자에게 절대 무언가를 받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어 선물은 돌려보냈지만, (고백컨데, 아이 보호자가 직접 만들어 준 먹을거리는 몇 번 받아먹었다.) 저 말 한마디는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군대에 있는 20대 청년들이 복무 잘 마칠 수 있게 고진 선처 바랍니다.


    다른 손이야기 - 학생 알바의 손가락: https://brunch.co.kr/@hansolto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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