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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외과 신한솔 Feb 21. 2022

학생 알바의 손가락

수부외과 이야기

    이번 글을 모라 제목을 지을까 좀 고민을 했다. 보통은 처음 생각나는 단어나 문장으로 글을 하는데 뭔가 제목의 어감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몇 번 들었다. (뭔가 좀 더 좋은 생각이 나면 제목을 바꿀 수도...) 새삼 우리 사회에서 알바라는 단어가 그리 긍정적인 어감으로 사용되지 않는 구나란 생각을 하였다. 


    17살짜리 학생이 고깃집에서 파채 써는 기계에 손가락을 베어 왔다. 채 써는 기계에 손을 다쳐오면 사실 예후가 좋지 않다. 


ppt로 그린 조악한 그림이니 이해를 부탁드린다.


    기본적으로 주가 되는 혈관이 있지만 다행히도 사람의 조직은 한 혈관에서만 피를 받지는 않는다. 따라서 큰 대혈관이 아니고서야 사실 손가락에는 주된 혈관이 두 개가 있고 하나쯤 다친다고 해서 손가락 반쪽이 죽거나 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채 써는 기계처럼 여러 조각으로 손가락이 다치면 가장 가운데에 있는 조각은 조직이 생존하는데 충분한 피를 받을 수가 없다. 그림에서 물결무늬로 표시한 가운데 조각이 이에 해당하며, 어디서도 피를 받기가 힘들어 조직이 죽는다. 보통은 정 가운데 한 두 조각 정도 조직이 괴사 하고, 이는 재 봉합을 하거나 피판술을 통하여 메꿔준다. 채 써는 기계에 손가락이 다치신 분들을 지금까지 꽤 뵈었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가운데 부분의 조직의 일부 괴사는 피할 수 없다. 


    이런 응급실 환자분들이 어떻게 다치셨는지는 보통 응급의학과와 전공의 선생님들이 파악해서 알려주고, 사실 환자 입장에서도 피가 철철 나면서 아파 죽겠는데 오는 의사마다 어떻게 다치셨는지 묻는 건 힘들고 짜증만 나는 일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나까지 내려가서 병력 청취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상처는 몇 장씩 사진을 찍어서 보내줘도 응급실에 꼭 내려가서 확인을 한다. (인턴 때 치프 선생님이 열심히 교육해주신 불신이 몸에 배었다고나 할까.) 


    17살이란 사실을 듣기는 했지만, 막상 내려가서 뵌 환자는 너무나 앳된 보였다. 정말 솜털이 보송보송하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이런 애기가 왜 다쳤을까?


" 어쩌다 다쳤어요?"

 

   내가 질문을 시작하면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전공의 입장에서는 스탭이 최대한 빨리 환자를 보고 사라져 줘야 다른 환자를 본다. 스탭이 응급실에서 환자와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다른 일을 못하고 옆에서 담당 스탭이 하는 말을 듣고 있어야 하니 간호사와 전공의 입장에서는 갑갑할 노릇일 터이다. 따라서 나도 최대한 빨리 딱 중요한 것만 보고 올라가려고 노력하는데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이 알바 첫날인데 기계 쓰는 게 안 익숙해서 다쳤어요."


    아 이건 정말이지 너무 하지 않은가. 의과 대학에서 6년을 배우고 의사 면허증까지 타서 의시가 된 인턴 선생님한테도 첫날부터 다칠만한 일은 안 시킨다.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 못했을 나이의 아이가 대체 무엇을 안다고 처음부터 저런 기계를 쓰라고 준 걸까.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딱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로서가 좋다고 생각한다. 환자에게 너무 감정 이입을 하는 건 의사에게는 좋지 않다. 일시적으로는 환자에게는 더 신경을 쓰게 되지만 스트레스를 더 받고 퇴근을 하고 집에 가서도 걱정이 되기 시작하면 병원 밖에서의 삶이 깨진다. 궁극적으로는 의사의 피로도를 증가시켜 환자에게도 좋지 않지만 이 환자는 감정이입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미 선을 넘어 버렸다. 


    신경이나 혈관이 도막 도막 나서 다치면 연결도 힘들고 연결한 후에도 예후가 좋지 않다. 피부가 도막 도막 난 것에 비하여 다행히 신경과 혈관은 한 군데서만 끊어졌고, 수술은 무리 없이 종료되었다. 


    다행히도 피부는 일부 괴사 하는 선에서 멈췄고 간단한 피판술로 손가락의 조직은 회복되었다. 그 긴 치료의 기간 동안 나는 아이의 보호자를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나는 원래 회진을 돌 때 전공의 없이 혼자 회진을 돌면서 환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보호자가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학교는 다니는지, 왜 굳이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했는지는 끝까지 묻지 못하였다.     


    신경 감각이 얼마나 돌아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상처가 다 회복되어도 정기적으로 보던 환자였는데, 수술 후 6개월에서 1년여 도 지나서 감각도 많이 돌아오고 이사 문제로 더 이상 병원에 내원하기가 힘들다 하여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였다. 


    사회생활의 시작이 너무 아팠던 친구인 만큼, 지금은 좋은 어른을 만나, 건강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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