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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asisworkroom Jan 06. 2025

엄마의 택배




며칠 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김치만두 만들었으니 좀 보내겠다고.

다음 날 받은 택배에는 쌀, 배추, 무, 단감, 감말랭이, 대파와 함께 택배 박스에서는 처음 보는 품목이 두 가지 더 있었다. 하나는 꼬막이고 다른 하나는 과일인지 야채인지도 모르는, 살아생전 처음 보는 거였다. 찾아보니 차요테라는 박과 채소로 아열대 지방에서 먹는 건데 요즘은 시골에서도 길러 먹는 외국 작물이었다. 이웃에서 먹어보라고 몇 개 준걸 나에게도 하나 보낸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있어야 할 김치만두는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고 김치만두를 깜박했네!


그동안 내가 집에서 받은 택배는 얼마나 될까. 

시골집을 떠난 지 20년이 훌쩍 넘었으니 한 해에 6~7개라고 치면 어림잡아 100개는 훨씬 넘을 것이다.

엄마가 보내는 택배에는 온갖 것들이 다 들어있다. 때에 맞춰 집에서 나는 모든 것들이 박스에 실려 일제히 상경한다. 각종 김치, 무, 배추, 상추, 호박, 고추, 마늘, 양파, 떡, 꿀, 들기름, 된장, 고추장, 고사리, 냉이, 두릅, 깨, 도토리묵, 고춧가루, 옥수수, 감자, 고구마, 감, 버섯, 계란... 품목들을 일일이 나열하자면 작은 식료품점 하나는 될 것이다. 아주 가끔 용돈이 끼어 오기도 한다.


지금이야 택배가 구호물품처럼 귀한 걸 알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일상처럼 자연스럽고 쉽게 잊히는, 조금은 반갑고 꽤 귀찮은 일일 뿐이었다. 그 귀찮은 일의 1순위는 김치였다. 항상 조금만 보내라고 말해도 항상 넘치게 왔다. 김칫국물이 샐 새라 두세 겹 꽁꽁 싸매 오는 김치는 있는 통이란 통은 다 꺼내 나눠 넣고 그것도 모자라면 냉장고 구석에 박혀있던 것들-주로 오래된 장아찌로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먹지도 않는-을 버리고 그 반찬통을 다시 써야 했다. 설거지를 다시 하고 또 나눠 넣고. 그러고 나면 좁은 싱크대는 온통 김칫국물로 엉망이고 작은 냉장고는 새김치로 가득 찼다.


집에서 오는 대부분의 것들이 직접 농사짓고 만든 것들이라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게 없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반가운 것은 깐 마늘, 깐 대파, 깐 밤처럼 껍질을 벗은 것들이다. 하나하나 껍질이 벗겨진 엄지손톱만 한 작은 알밤 한 봉지를 꺼내 들면 절대 썩히지 말고 다 먹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절로 생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집에서 오는 택배를 종종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태껏 그러했듯 내 기억에서 금세 잊힐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잊으면 안 되는 엄마의 마음이 그 안에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물론 아빠의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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