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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Jan 11. 2024

중학생에게 시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제 방학식을 했지만 오늘 바로 출근을 했다. 이제 3학년이 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배움 성장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라떼의 언어로 풀이하자면 일종의 보충수업이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의 보충 수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첫째, 100% 자발적으로 신청자를 받는다는 것

째, 수업을 들을 경우 문제집은 물론 밥도 사준다는 것

 두 번째 조건을 들으면서 세상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공부할 문제집도 사주고 밥까지 사준대도 방학 중에 학교에 나와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은 거의 없다.

 

이번에 수업을 신청한 학생은 다섯 명이다. 상위권 학생 2명, 중위권 학생 2명, 하위권 학생 1명이다. 수준을 맞추기가 어렵게 되었다. 일단 중간 수준 정도 교재를 정하고 상위권과 하위권을 위한 개별교재까지 준비했다.


첫 시간은 시 수업이었다.

이미 2년 동안 국어시간에 시를 몇 편이나 배웠는데도 아이들은 또 처음 듣는 것 같이 새롭다는 표정이다.

"야~ 너네 이거 다 배운 거잖아!! 내가 지난 학기에 다 알려준 건데?!"

"선생님, 저희 시험 보고 나면 다 까먹어요!!"

아..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개탄하는 일은 생략하고 부지런히 진도를 나갔다.

시에서 사용되는 기본적인 개념들을 정리해 주고 화자의 상황, 정서, 태도를 찾아보며 몇 편의 시를 감상하고 문제를 풀어봤다.


시 수업을 하다 보면 시에 푹 빠져버려서 수업을 나가야 하는데 감상하고 감동받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럴 때 아이들과 내가 느끼는 온도차가 너무 크다.


지각(행복의 얼굴)   -김현승-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내게 불행이 와도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안에서 오고 한 번은 밖에서 오는 행복이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있다.

.

.

.

시를 읽으며 인생의 섭리, 행복의 의미 등을 곱씹으며 감동이 밀려온다. 이 감동을 아이들도 알면 좋을 텐데..


"불행이 오는데 왜 감사를 한다는 걸까?!"

"선생님 이거 반어법 같은데요?! 반대로 말하는 거 같아요"

오늘도 온도차가 제법 큰 것 같다.


"행복이 오면 당연히 감사할 일이지만 불행이 온다 해도 그걸 통해 내가 배우는 게 있고 새롭게 희망도 품을 수 있으니 불행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니?!"

".. 불행은 나쁜 거죠."


불행에 감사한다는 의미를 열다섯에게 설명하는 것은 무리일까?!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내게 닥친 불행한 일들에 감사하고, 이를 통해 내가 깨닫고 성장하고.. 이걸 이해하게 된 것은 서른도 훨씬 넘어서이다.


오늘 아이들에게 행복과 불행이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고, 마음먹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느라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또 아이들의 경험을 끄집어냈다.

그러고 나서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미심쩍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 읽은 책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용하다는 점쟁이를 만나고 온 기분이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찌 알고..!!

이 글은 시를 가르치는 것이 전혀 무의미하지 않다고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듯했다.

 내일 아이들에게 이 부분을 읽어줘 볼까?

지금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너희도 언젠가는 겪게 될 거라고.

내가 너희에게 해독제를 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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